1. 근황
사무실 책상 위에는 지원림 저 <민법강의>와 양창수, 김재형 공저 <계약법>이 있다. 참고용으로 가져다 놓은 책인데 그리 참고할 일이 많지는 않다. 그외에는 검토한 계약서 서류들과 노트북, 모니터, 키보드가 있고 펜과 업무용 노트가 있다. 오늘 아침에 사들고 온 커피도 있다.
지난주 화요일부터 출근했으니까 이제 출근한지 일주일이 넘었다. 일은 아직까진 무난하다. 그렇게 어려울 것이 없다. 사람들도 괜찮다.
이 회사에 입사하기 직전에 최종 면접을 본 다른 회사에 합격하길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어제 불발됐다. 만약 그 회사에 입사해야했다면 먼 지역으로 이사갔어야 하는거라 부담이 있기도 했지만, 하고 싶은 산업군의 회사여서 합격한다면 가고 싶었는데 이리 되어 조금 아쉽다. 지금 내가 있는 자리나 조건이 더 또렷하게 두드러진다.
그래서인가 생각이 많아진다. 이 회사에서는 아마 1년 정도 다닐 것 같다. 이 회사는 엔터테인먼트 회사인데, 나는 사실 이 업계에 큰 관심이 없다. 다만 집에서 가까워서 지원한 회사다. (집에서부터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다) 1년 뒤에는 행정고시를 쳐야하나, 박사과정을 준비해야하나 하는 생각도 있다. 혹은 정말 하고 싶은 산업군으로 이직을 할 수도 있겠다. 다 일단 시간이 흘러야 하는 일이다.
주말에 알바를 하면 효능감이 오를까도 싶지만 그게 내 커리어나 발전에 무슨 소용이 있나 싶다. 그렇다. 효능감의 문제다. 상대적으로 쉬운 업무들만 처리하다보면 이 회사에서 별로 배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고 오히려 내가 소진 또는 낭비될 것 같다. 아직 일주일 정도 근무했지만은 벌써 10개에 가까운 계약서를 검토했으니까 이런 예감이 그리 잘못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2. 생각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에도 이런 때가 있었다.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하면서 진짜 하고 싶은 걸 위해 가만히 숨죽여 기다려야하는 때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때 책도 많이 읽고 영화도 많이 보고 생각도 많이 하면서 내면을 조금씩 쌓아갔었다. 그 때 단단하진 마음의 덕을 이후에도 봤다. 그러니까, 그로부터 다시 10년이 지난 지금 비슷한 조건에 놓인 것이다.
하지만 그 때 나는 참 쓸쓸했었다. 지금도 그 때와 비슷한 감각이다. 고요한 바다에 혼자 떠 있는 사람 같다. 저 멀리 지나가는 배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쓸쓸함이 파도처럼 도래하고 있다. 어쩔 수 없다. 그저 지금으로부터 향후 10년을 위해 다시 내면을 다지는 1년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수 밖에. 조용히, 물에 잠기는 감각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