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이 조심스러운 요즘 아이들

내 아이가 꼭 알았으면 하는 말 5 [관계]

by 최리원

"폭염주의보던데 괜찮을까요?"


그림책 육아 모임, 일명 <그림책다방>은 크게 두 가지 활동을 한다. 하나는 부모들을 위한 모임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그림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활동. 그럴싸한 것처럼 보이지만 모임을 명목으로 예쁜 카페도 가고 맛집도 찾아가면서 각자의 욕심(?)들을 채워나가고 있다. 나머지 하나는 월 1회 아이들을 위한 활동이다. 부모의 욕심(?)만 채우기에 약간의 죄책감이 들어, 한 달에 한 번은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을 활용한 엄마표 놀이를 해 보자는 것이다. 7월의 그림책 놀이 주제는 '여름'. 함께 읽으면 좋을 만한 두 권의 책을 뽑아 관련된 놀이를 준비했다. 우리 멤버들이 픽(pick)한 책은 <노란 우산>과 <모기 잡는 책>이었다. <노란 우산>은 글 없는 그림책이다. 글 대신 음악이 있다. 색색깔 우산들의 움직임을 피아노 선율에 맞춰 풀어낸 책으로, 아이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면서 맘껏 상상하도록 이끈다. <노란 우산>이 잔잔한 분위기를 내뿜는다면, <모기 잡는 책>은 유머를 한껏 뽐낸다. (앞)표지, 속표지로 이어지는 흐름이 흥미를 자극하고, 만화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어른이든 아이든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그림책이다.


(왼쪽) 노란 우산, (오른쪽) 모기 잡는 책


우리는 두 권의 책으로 할 수 있는 활동으로 두 가지 놀이를 준비하였다. 하나는 '우산 만들기'이고, 다른 하나는 '모기기피제 만들기'이다. 요즘은 어린이를 위한 놀이 키트가 잘 구성되어 있어서 손쉽게 놀이 재료를 구할 수 있으며, 굳이 키트를 사지 않아도 다이소에 가면 웬만한 재료들을 구할 수 있어서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재미난 놀이들을 기획할 수 있다. 어쨌든 우리는 각자 재료를 구해서 동네 공원에서 놀이 활동을 하자고 약속했다. 그런데 모임 하루 전 날, 나름 비상회의(?)가 열렸다. 하필 놀이 활동을 하기로 한 날에 30도가 훌쩍 넘는 폭염주의보가 예보되었기 때문이다. 놀이 공간을 대여해 볼까도 했지만,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이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실내보다는 실외가 좋았다. 몇 번 실내 공간을 대여해서 놀이를 진행하였는데, 아이들이 꽤나 답답해했고(마스크를 꼭 써야 했기에) 결국엔 실내에서 놀이 활동을 하고 나서 근처 놀이터나 공원으로 가 뛰어노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래서 폭염주의보 예보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공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우린 순조롭게 그림책 놀이를 진행하였다. 어른 셋, 아이 넷이 충분히 앉고도 남을 정자에 옹기종기 모여 책을 함께 읽으며, 모기기피제를 만들고 우산을 만들었다. 우산을 만들고 나서는 분무기에 물을 담아 비가 내리는 연출을 하였는데, 아이들이 엄청 좋아라 했다. 미리 준비해온 주먹밥과 소시지, 옥수수, 과자, 음료를 먹으면서 본격적으로 뛰어놀기 시작했다. 무더운 날씨 탓인지 다행히(?) 공원에 온 사람들이 없었고(지나고 보니 정말 무모한 활동이었던 것 같다), 아이들은 잠시 마스크를 벗고 망아지 마냥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엄마표 그림책 활동 '우산 만들기'와 '모기 기피제 만들기'


30도가 넘는 한낮에 사람들이 없는 공원에서 마스크를 잠시 벗어던지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신나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을 계속 보고 있자니 괜히 씁쓸함이 밀려왔다. 그림책 멤버들도 사람들을 피해 다니면서 노는 게 참 안쓰럽다고 하였다. 코로나19로 많은 것들이 바뀌었는데, 그중 '관계 맺기'의 방식이 크게 바뀐 것 같다. 악수나 포옹 대신 눈 맞춤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대화를 곁들인 식사 대신 침묵이 흐르는 식사를 한 지 1년이 훌쩍 넘었다. 마스크로 인해 상대방의 표정을 쉽게 읽을 수 없게 되었고, 그러면서 만남이 조심스러워졌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가장 불쌍해진 건 바로 우리 아이들이다.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에서 생활하는 내내 마스크를 써야 했고, 손소독제와 손 씻기를 하루에도 수십 번 반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손 씻기야 자주 하면 좋지만, 마스크 쓰기는 결코 좋은 건 아닌 것 같다.


네 살인 내 아이는 말문이 트여 한창 다양한 어휘를 습득하고 구사하는 중인데, 마스크로 인해 종종 대화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마스크를 쓰고 대화를 할 때면 단어가 명확하게 들리지 않을뿐더러 표정을 쉽게 읽을 수 없어서 전체적인 대화 분위기를 놓칠 때가 간혹 있다. 엄마인 나도 이런 상황에 종종 놓이는데, 어린이집에서는 그 빈도가 더욱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대화는 '관계 맺기'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대화는 단어와 구절, 문장으로 된 문자언어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눈빛, 표정, 제스처 등 비언어적인 요소로도 이루어진다. 원활할 대화, 즉 원활한 의사소통에서 비언어적인 요소가 언어적인 요소보다 상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을 미루어보아, 마스크는 비언어적인 요소들이 오고 가는 데에 장애물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운동장에서 뛰어놀 때에도 마스크는 필수다.

한참을 뛰어놀던 아이 중 한 명이 마스크가 풀렸다며 손으로 입을 막고 우리에게 왔다. 일곱 살짜리 아이는 30도가 넘는 날씨에도 기어코 마스크를 쓰고 놀이를 이어나갔다. 땡볕에서 4시간 정도 있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배도 채우고 땀도 식힐 겸 근처 패스트푸드점에 갔다. 아이들이 허겁지겁 아이스크림, 감자튀김을 먹는데, 오늘 너무 무리한 활동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끼리 위로(?)하기를, 누군가와 접촉하는 것이 조심스러운 지금 상황에서 우리 아이들이 잠깐이나마 누군가와 살을 부대끼고 땀을 흘리면서 또래 혹은 형누나, 나아가 어른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결론을 맺었다.


우리가 컸던 어린 시절과 지금 아이들이 크는 시절을 비교할 순 없을 것이다. 시간도, 환경도, 상황도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네 아이들과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놀이터를 다니고, 아래층에 가서 밥을 얻어먹고 여러 가지 과자를 한 데 모아 나눠먹을 수 없는 오늘날 현실이 조금 안타깝긴 하다. 당분간은, 아니 코로나19 상황이 끝난다 하더라도 몇몇 아이들과 조금은 프라이빗(?)한 장소에서 모여 놀고, 과자는 각자의 용기에 나눠 먹어야 할 것 같다. 그러면서 관계를 맺는 방식도 달라질 것이다. 그 방식이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아이가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세계를 넓혀나가기 위해서는 어른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부분은 그림책 멤버들과 함께 치열하게 고민해 봐야겠다. 늘 드는 생각이지만, 좋은 엄마 혹은 좋은 어른이 되기란 참 힘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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