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같이 먹는다는 것

내 아이가 꼭 알았으면 하는 말 4 [식구]

by 최리원

"난 예전에 이모랑 삼촌이랑 짜장면 먹어 봤어."


요즘 아이가 말문이 터지면서 생각하게 하는 말들을 자주 한다. 한번은 "난 엄마랑 아빠를 좋아해."라고 하길래, "왜 엄마 아빠가 좋아?"라고 되물었던 적이 있다. 그러자 한참을 생각하다가 "사랑하니까."라는 말을 하였다. 그 순간 '맞다. 사랑하니까 좋아하는 거지. 좋아하니까 사랑하는 거고.' 크게 깨달은 적이 있었다. 좋아하고 사랑하는 이유를 물은 내가 한없이 작아졌던 날이었다. 아무튼 어른인 나에게 찰나의 깨달음을 주는 말들을 자주 하는데, 'OO이랑 ##을 먹어 봤어.' 하는 말도 그런 류의 말이었다.


아이는 신생아였을 때부터 잘 먹었다. 모유도 분유도 가리는 것 없이 잘 먹었고, 이유식을 시작하고 나서도 가리지 않고 잘 먹어서 먹이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브로콜리, 버섯, 당근 등 야채를 가리는 경우가 없었고, 초콜릿, 젤리, 사탕 등 간식류도 후다닥 먹어치웠다. 심지어 홍삼향이 나는 사탕과 젤리도 즐긴다. 무엇보다 돼지고기를 정말 좋아하는 아이다. 그래서 무엇을 먹을 때마다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를 주로 한다. 포도맛 젤리가 좋다는 둥, 고기는 참기름에 찍어서 먹어야 한다는 둥, 삼촌은 안 좋아하는 브로콜리를 잘 먹을 수 있다는 둥, 어린이집에서 오이를 잘라서 먹어봤다는 둥 별의별 이야기를 한다. 그러다 근래에는 '아빠랑 돼지갈비 먹어 봤어.' '할머니 집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었어.' '삼촌은 고기 좋아해.' '할머니 집에 빵 사서 가자' 등처럼 먹을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어느 누군가를 꼭 언급하곤 한다. 대수롭지 않게 듣다가 어느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가 우리를 식구라고 생각하는구나.'


국어사전에서는 식구를 '한 집에 살면서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이라고 일컫고 있다. 이러한 뜻풀이에 따르면, 식구가 되려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만 한다. 첫 번째는 '한 집에 살 것'이고, 두 번째는 '끼니를 같이 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나에게 식구는 한 집에 살고 끼니를 같이 먹는 '남편과 아들'이 된다. 그런데 시댁 가족들과 친정 가족들을 일컬을 때에도 '시댁 식구들', '친청 식구들'이라고 부르면서 식구로 인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첫 번째 조건은 식구라는 말을 아우르기에는 적합하지 않을 것 같다. (물론 '한V집'이 아니라 '한집'으로 붙여 표기한다면 첫 번째 조건이 통상적으로 사회에서 일컫는 '식구'를 가리킬 수 있을 듯하다. 이건 다른 이야기이기에 여기에서 그만하는 게 좋겠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스스로 되물었다. 친정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뭘까? 왜 친정아빠는 김치를 손으로 찢어먹는 걸 좋아할까? 시아버지가 최근에 맛있게 드셨던 음식은 뭘까? 시어머니가 밥보다 빵을 즐기시는 이유는? 그러면서 함께 밥을 먹으면서 그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잘 모르겠지만, 최근 '츄러스'라는 과자에 푹 빠져 마트를 돌아다니며 사 먹는다고 했다. 아빠는 어릴 적 할머니가 포기김치를 손수 찢어준 기억이 좋아 칼로 잘라서 먹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고, 시아버지는 몇 년 전 우리와 함께 떠났던 제주에서 먹었던 돈가스가 정말 맛있었다고 하셨다. 또 시어머니가 밥보다 빵을 즐기시는 건 단맛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잇몸이 안 좋으셔서 부드러운 걸 찾는다고 하셨다. 이런 생각들을 계속하다 보니, 식구라는 건 단순히 밥을 같이 먹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의 생각과 감정들을 주고받는 사람인 것 같았다. 아이가 무언가를 먹을 때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떠올리는 이유가 바로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고스란히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 식구란 <1) 끼니를 같이 하면서 2) 생각과 감정을 나누는 사람>이 될 것 같다. 한 집에 살든 살지 않든, 혈연관계이든 그렇지 않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식구가 아닐까?


최근에 시댁 부모님께서 직접 키우신 감자를 가져왔는데, 그 감자로 그림책 모임 멤버 두 명과 전을 부쳐 먹었다. 그때 한 멤버가 자기는 감자를 정말 좋아한다고 말했다. 삶은 감자, 구운 감자, 찐 감자 할 것 없이 모든 감자 요리가 맛있다고 했다. 고구마를 좋아하는 사람은 봤어도 감자를 좋아한다면서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그래서 인상이 깊었던 걸까. 감자 요리를 해 먹을 때마다 그 멤버가 생각났고, 감자를 챙겨 멤버에게 가져다주었다. 너무나 고마워하면서 오늘 저녁에 바로 감자를 해 먹어야겠다고 말하는데, 내가 더 기분이 좋아졌었다. 며칠 뒤, 다른 멤버 한 명이 고모네 텃밭에서 감자를 캐었다면서 감자순이(?) 멤버에게 감자를 주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 그들도 나의 식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식구가 별건가. 내 아이처럼 무언가를 먹으면서 누군가를 생각하고, 그 누군가의 말과 표정들이 자연스레 떠오른다면 충분할 것 같다.


아이가 자라면서 앞으로 자기 식구들을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 혈연으로 맺어진 식구 말고도 자신의 감정과 생각들을 진심으로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또 내 아이도 누군가의 진정한 식구가 되기를 바란다.


같이 먹는 소중함을 알고, 나눠 먹는 즐거움을 느끼기를.



가리는 것 없이 정말 잘 먹는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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