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의 어휘력 수준은?

들어가며

by 최리원

'난 하루 동안 어느 정도의 어휘를 구사할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시국이라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고 하지만 요즘 나의 어휘력 수준은 빵점, 아니 그 이하다. 단답형의 대화, 떠오르지 않는 단어, 앞뒤가 안 맞는 문장을 구사한 지 꽤 오래된 것 같다. 그래서 한번 실험(?)을 해 봤다.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어떤 말들을 쓰는지 말이다. 대략 내가 구사하는, 아니 구사한다는 것은 너무 거창하고, 내가 쓰는 말들은 다음과 같았다.


잘 잤어? 밥 먹어야지. 밥 먹을 땐 제자리! 흘리면 안 돼. 텔레비전은 조금만 보는 거야. 뛰면 안 돼.
아랫집 아저씨가 '이놈' 한다. 젤리는 하루에 두 개만. 읽고 싶은 책 가져와서 읽자.
밖에 나가려면 마스크 껴야지. 집에 들어오면 손부터 씻자....


더 이상 나열하는 건 의미가 없는 듯하다. 대부분 시간을 아이와 함께 지내는 터라 나의 대화 수준은 네 살짜리 아이에게 맞춰져 있다. 하루에 서너 번 남편과 통화하는 시간 역시 그다지 많은 어휘를 쓰진 않는다. 밥 먹었느냐, 뭐하냐 정도의 짧은 인사 정도? 그나마 일을 할 때에는 여러 어휘를 접하는 것 같다. 글을 보고 다듬는 일을 해서 다행이지, 이것도 아니었으면 막 옹알이하는 어린아이 정도의 말만 썼을 것이다.


'문학소녀'라 표현해도 좋을 만큼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책을 많이 읽고 글을 꽤나 썼다. 중학생 때에는 문학동아리에서 수필을 주로 쓰면서 나의 일상과 생각을 적었고, 고등학생 때에는 시조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시조를 지어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각종 글쓰기 대회에 나가서 상 좀 탔었고, 경상북도 문학영재(거창해 보이지만 1년에 한 번 이벤트성으로 진행한 것)로 뽑혀 문학캠프에 참여하기도 했었다. 대학에 진학할 때에는 다들 만류하는 국어국문학과에 지원하였고, 바람대로 4년 동안 전공 수업을 들으면서 다양한 책을 읽고 많은 글들을 썼었다. 그리고 졸업 전에 한 출판사에 취직하였고, 지금까지 책을 만지고 다루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다. 이처럼 나의 인생은 책과 글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다. 그만큼 나는 어릴 적부터 글을 좋아했다.


그런데 요즘은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책과 글을 좋아하는 마음이 예전 같지 않다. 지금 내 생활의 대부분은 아이가 차지하고 있고, 아주 조금씩 남편과 시댁, 친정식구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책 읽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즐겨했던 것을 깜박 잊고 지낸 듯하다. 코로나가 대유행하면서부터 더욱 잊고 살았다.


사실 아이를 낳기 전, 아이에게 매일매일 해 주겠다고 스스로 약속했던 것이 두 가지 있었다.


첫 번째, 아침 인사하면서 좋은 말 건네기.

두 번째, 잠들기 전에 책 1권 이상은 꼭 같이 읽기.


다행히 두 번째 약속은 지금까지 잘 지키고 있다. 아이가 태어난 지 100일이 지날 무렵부터 하루에 한 권 이상은 같이 읽고 있으며, 아이도 자기 전에는 꼭 책을 읽고 자는 좋은 습관(?)이 생겼다. 그런데 첫 번째 약속은 아이가 태어나고 100일을 기점으로 지키지 못하고 있다. 조금 오글거리긴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100일 정도는 매일 아침 눈을 감은 아이를 보면서 아침 인사를 건넸다. '아가야, 오늘은 날씨가 참 좋단다. 하늘이 정말 파랗네. 새들도 기분이 좋은지 짹짹 지저귀네. 따뜻해지면 엄마랑 같이 유모차 타고 산책하자꾸나. 오늘도 좋은 생각 하면서 우리 잘 지내보자.' 이런 식이다. 그런데 요즘은 '얼른 일어나.' '일어나서 짜증내면 안 돼!' 식의 일방적인 말만 쏟아내곤 한다.


지금이라도 첫 번째 약속을 실천해 보려 한다. 한동안 책장에 꽂아뒀던 책들을 꺼내 천천히 읽고 아이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정리해 볼 것이다. 그러면서 아이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들, 아이가 자라면서 꼭 알았으면 하는 말들을 정리해서 그 뜻과 의미들을 전하고자 한다. 이제 말문이 트여 새로운 말과 단어에 유독 관심이 많은 네 살짜리 아이에게 좋은 뜻과 의미를 품은 말들을 많이 알려주고 싶다. 그리고 나 역시 잠시 잊고 있었던 말의 의미를 곱씹으면서 하루를 보다 풍성하게 채우고 싶다.


네 살짜리 아이에게 어떤 말들을 알려 주면 좋을까?

오늘부터 천천히 읽고, 깊이 고민하고, 하나하나 곱씹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