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가 조금 더 무거워진다는 것.
내년도에 대학 강의를 하나 맡아줄 수 있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 제안이 성립된다면, 나는 소위 말하는 '시간강사'가 되는 것이다. 언제나 나보다 더 먼저 나의 미래를 염두에 두시는 나의 선생님께서 해주신 제안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속으론 내심 놀랐었지만,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나는 내 감정을 내색하지 않고 '네, 알고 있겠습니다.' 정도의 대답을 드렸었다. 선생님은 잘 모르실 것이다. 내가 그 제안을 받고 얼마나 마음이 기쁘게 어지러웠는지를, 돌아오는 지하철을 타자마자 그 소식을 엄마에게 카톡으로 알리며 얼마나 스스로 뿌듯해했는지를 말이다. 그 늦은 밤, 나의 부모님은 행복하고 들뜬 마음에 지하철 역까지 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셋이서 함께 집으로 걸어가는 내내 엄마 아빠는, 믿어지지 않는다며, 행복하다며, 너의 삶을 이끌어주는 좋은 인연들에 항상 감사해야겠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었다. 이미 안정된 직업을 갖고 있는 내가, 새로운 직업 하나 더 갖게 되는 것이 첫 직업을 가지게 되었을 때 만큼이나 엄청 기쁜 일이겠느냐만은, 그날 나는 대학에서 강의를 한다는 사실보다, 그 사실에 마냥 행복해하는 내 부모님의 모습에 한없이 기쁘기만 했다.
선생님의 제안에 놀랐고 설렜던 것은 사실이지만 분명 그때의 내 감정은 '기쁘게 어지러운 감정'이었다. 이때 '어지러움'의 연유는 내게 부여되는 사회적 역할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내가 이 사회에서 갖는 파이가 커지면 커질수록, 내가 책임져야 할 삶의 무게가 더 무거워진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삶의 무게가 한없이 가볍고 가벼워서 이 사회에서 내가 갖는 파이가 조그마하고, 내게 부여되는 사회적 역할이 쥐꼬리만 하면 또 그건 그것대로 분통스러워할 나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언제나 이런 '도전'과 '변화'의 순간 앞에서는 일단은 조금 망설여도 지는 것이 나라는 사람인가 보다. 그럼에도 난 안다. 이 망설임이 새로움을 향한 도전과 변화를 그르치게 할 만큼 농도가 짙은 망설임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나는 기꺼이 해내고 또 다음 단계로 나아가리라는 것을.
결과적으로 내게는, '대학 시간강사가 된다'는 것의 의미나 가치가 내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 드릴 수 있는 한 가지 방법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나의 오래고 영원한 꿈은 내가 대학 강단에 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부모님이 내 곁에서 오래오래 건강하게, 행복하게 사는 삶이니 말이다. 두 사람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수만 있다면야, 그 방법은 내가 시간강사가 되는 것이든 무엇이든 상관없는 것이었다. 내게는.
선생님께서는 오늘 내가 다음 학기에 맡을 강의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들을 알려주셨다. 강의명, 강의의 지향, 해당 강의의 강사가 나여야 하는 이유 등에 관련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문제는 강의 요일과 시간이었다. 이미 짜여 있던 나의 여타 일정들로 인해, 강의를 개설할 요일과 시간의 조율이 수월하지 않았다. 이 조율을 위해 몇 차례 선생님과 메시지를 주고받는 동안, 나는 괜스레 내가 선생님께 누가 되는 것은 아닌가 싶어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제가 꼭 강의를 하지 않아도 되니 부담 갖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이야기까지 했었으니, 혹자는 나라는 사람을 참 바보 같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굴러 들어온 복을 찬다고 말하려나. —지난 8월, 꽤나 바라고 있었던 좋은 제안이 외부로부터 들어왔었지만, 제안처에서 나를 필요로 한다고 말한 특정 기간에 절친한 친구의 결혼식이 있어, 망설임 없이 그 제안을 거절한 적이 있었다. 그 통화 장면을 눈앞에서 목도한 엄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바보가 따로 없다며, 자신 같으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런 기회를 발로 뻥 걷어차냐고 혀를 찬 적이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나는 싱긋 웃었다. 그 제안이 안 아쉬웠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 제안을 거절한 것에 대한 후회는 하지 않는다. 내겐 오랜 벗의 결혼식에서 직접 쓴 축사를 읊어주는 것이 지금도 여전히 더 중요하다. 언젠가 우리 둘의 인연이 설령 끝나는 지점이 온다고 해도 말이다. 이 일에 있어서 만큼은, 그 제안과 나의 인연이 닿지 않았을 뿐인 것이다. 내 것이 될 제안이 애초에 아니었다, 이렇게 생각하면 아쉬운 마음도 후련해진다.— 어쨌든, 굴러 들어온 복을 또 찰 뻔한 발언을 했던 나였음에도, 선생님은 내 입장을 끝까지 배려하여 내 시간에 맞춰 강의 일정을 정하고 끝내 강의를 맡겨주셨다. 바로 이런 게, 나와 인연이 깊이 닿아 있는 제안, 끝내 내 것이 될 제안,이라고 난 생각한다. 나는 사람과 사람 간의 인연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물, 동물, 식물 등과 같은 존재와 존재 간의 모든 인연은 다 이런 원리에 의해 움직인다고 믿는다. 부러 애써서 무얼 이루어내려는 것이 오히려 독이 될 때가 많고, 흘러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두는 것이 오히려 복이 될 때가 많았다.
선생님께서는 책임 있게 강의를 맡아보라고 하셨다.
당신이 이것저것, 안팎의 일들로 인해 하루하루 시간이 한없이 부족하기만 한 이때, 마침 내가 졸업을 해주어 강의를 맡길 수 있게 돼, 정말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는 말씀과 함께.
그럴까, 정말이지 내가 당신께 '다행'이 될 수 있을까.
내 모든 망설임은 이제 이 글에 묻고, 내일부터는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그 '다행'이 기필코 되기 위한 길을 부지런히 찾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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