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찬란한 파랑

천 개의 파랑(2020), 천선란, 허블

by 윤정원

1.

2021년, '천 개의 파랑'을 비롯하여 몇 권의 책을 전자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던 적이 있다. 전자책으로 책을 잘 읽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그때 빌렸던 책들 중 탁월한 몰입감과 재미를 안겨준 책 두 권 덕분에, 나는 소설을 전자책으로도 읽는 즐거움,을 처음으로/제대로 알게 되었다. 한 권은 정세랑의 '지구에서 한아뿐', 그리고 다른 한 권이 바로 천선란의 '천 개의 파랑'이다. 상대적으로 분량이 적은 '지구에서 한아뿐'을 먼저 읽고, '천 개의 파랑'을 곧장 이어 단숨에 읽었던 기억이 난다. '천 개의 파랑'이라 하면, 나는 불현듯 그날 그 순간의 느낌, 인상, 분위기 같은 것들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특히, '파랑파랑! 새-파랑!' 했던 책 표지의 색감이 머릿속에 물감처럼 가득 풀어진다.


2.

올해 지난 5월, 경험 삼아 경마공원을 한번 가보자는 HH의 말에, HR와 함께 우리 셋은 과천 "대공원 옆에 자리 잡은 경마공원"(53)엘 갔다. '천 개의 파랑' 속 투데이가 생각났고, 투데이가 겪어낸 삶이 궁금했다. "'제2의 꿈의 나라'라는 별칭"(53)은 아니었지만, '렛츠런 파크'라는 별칭으로 시리즈 '오징어게임' 속 경마공원과 같은 음울한 이미지를 벗어나고자 하는 곳. 실제 그런 노력 때문인지 그곳엔 가족 단위의 사람들이 많았고, 어린 아이들이 달리는 말과 기수를 구경하려 트랙 가까이 가득 서 있었다. 그뿐 아니라


치킨을 먹으며 여러 경마지를 훑어보고 있는 연인

헤드셋을 끼고 맥북으로 무언가 작업을 열심히 하고 있는 여자

돌도 안 지난 듯해 보이는 아이를 데려온 부부


등, 참 생경한 모습들을 쉽게 둘러볼 수 있었다. 4호선 경마 공원역을 내리자마자 내가 보았던 무수한 할아버지들은 2030존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다. 경마공원에서 영유아를 동반한 가족고객이나 이색적인 분위기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싶은 2030 고객을 위해 2030존을 별도로 만들었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그런 광경들이 신기했던 것도 잠시, 몇 개의 경주를 실제로 보고 난 뒤, 경기 쉬는 시간 동안 실내에서 생중계를 해 주는 부산 경마공원의 경기 장면을 보고 나는 이내 자리를 뜨게 되었다. 초반에 경기를 보며 생애 처음으로 경마 베팅을 해 보는 경험은 흥미롭기도 했다. 기수들의 몸무게는 대개 45킬로 내외라는 것과 조교사의 나이가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 정도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라운드가 지속되며 내가 경마 베팅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쉽게 알아차리게 되면서, 나는 두 친구의 흥미가 떨어지게 될 즈음을 마음속으로 조용히 기다리곤 했다. 큰 경기 중 하나였던 스포츠조선배 7라운드가 끝나고 서울마사회 주관의 8라운드를 기다리면서 TV화면으로 보게 된 부산 경기 장면은 그런 내 마음에 더 큰 불을 지폈달까.

경기 시작과 동시에 채찍질을 마구 해대는 기수의 끝없는 손놀림. 이를 비추는 카메라의 워킹. 일순간 나의 반려견 얼굴이 떠오르면서 동시에 가슴이 저릿해진 나는 오늘 나의 경험은 이것으로 되었다 싶어 H 둘에게 이제 슬슬 가자는 이야기를 꺼내었다. "말은 영리해서 탈"이니까, "조금만 더 멍청했어도 됐을 텐데 개나 고양이만큼이나 인간과 너무 가까이 지낸 탓에"(212) 많이많이많이, 많--이, 아프고 힘들 것만 같아서. 실제로 말은 채찍질을 당할 때, 사람과 비슷한 고통을 겪는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채찍질 횟수를 줄이자는 자성적 목소리가 내부에서도 꾸준히 나왔던 모양인데, 그날의 그 기수는 왜 경주 초반부터 무수한 채찍질을 했던 걸까?


3.

그 저릿한 경험 이후, 독서 클럽을 계기로 이번에 다시 한번 읽게 된 종이책의 '천 개의 파랑'.

"너무 빠르니까요, 조금 느려도 되지 않을까요?"(164)라며 느림을 긍정하고 응원하던, 느릴 수밖에 없는 은혜 옆에서 같이 휠체어를 타 주던 소방관은 일찍이 세상을 떠났다. "삼차원의 우리가 일차원의 말에 상처받지 말자"(179)며,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배려'(180)를 보여주며 귀갓길을 같이 걷던 주원마저 다른 차원으로 결국 떠났다.(떠난 듯했다.) 홀로 유일한 차원에 남은 은혜는 그 벼랑 끝에서 운명처럼 '투데이'를 만난다. 달리지 못하는 말이 되어 간다는 이유로 죽음을 앞두고 있는 투데이. 관절이 망가진 투데이와 척수성소아마비로 두 다리를 쓸 수 없는 은혜. 은혜에게 투데이는 곧 자기 자신이었고, 삶의 실낱같은 희망이었으며, 더는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오늘(TODAY)', 나아가 오늘 하루의 "군더더기 없는 행복"(360)이 아니었을까.

은혜만큼이나 투데이를 살리고 싶어 하는 '콜리'는 말한다. "투데이를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고, 행복만이 유일하게 아픈 과거를 이길 수 있으니까(233). 그런 콜리를 구원하고, 은혜와 콜리가 원하는 투데이의 행복을 함께 이뤄주고픈 연재는 서진, 복희, 지수, 민주와 함께 "세상에서 가장 우스운 경마"(289)를 준비한다. 투데이와 콜리가 파트너로서 함께한 마지막 경주. 콜리는 자신의 부서짐으로 투데이의 행복을 완성시켰다. 나는 비단 그것이 투데이만의 행복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소설 전체를 돌아보면, 그것은 투데이의 행복이자, 은혜의 희망이었으며, 보경의 다시 흐르는 시간이었고, 연재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은 인간의 이기(利己)로 투데이처럼 수명을 다한 경주마들을 단숨에 버리고, 순수한 선의가 아니라 경쟁에서의 우위를 득하기 위해 인간 기수를 휴머노이드 기수로 교체한다. 낙마라는 위험 속에서 같은 종인 인간을 구원한다는 가치는 아마도 저 너머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버림받는 말보다야 그렇게라도 위험 속에서 구제되는 인간의 위상이 더 나은 걸까. 어쩌면 은혜는 그렇게라도 구원받지 못한, 즉 철저히 박탈당한 인간으로서의 슬픔을 내내 경험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천 개의 파랑 속에, 세상의 끝에 머무르던 은혜를 끝끝내 구원해 준 존재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그 존재로 말(투데이), 휴머노이드(콜리)와 같은 비인간 존재뿐만 아니라, 연재. 연재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천 개의 파랑'이란 자유, 행복, 희망, 사랑 등과 같은 우리 삶 속 모든 찬란의 언어적 함의를 상징하는 기표(signifiant)이다. 요즘, 내 삶의 파랑이 무엇인지를 애타게 찾고 있는 나. 그러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내가 그것을 '애타게 찾을 필요가 있나' 하는 자문이 든다. 내 삶의 파랑은 애타게, 찾아야 할 대상은 아니라는 생각. 애타게 찾자고, 너무 빠른 속도를 내려다보면 내 삶 가까이에 놓인 무수한 파랑들을 놓치고 말 것 같다는 생각.

그래, "우리는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349) "너무 빠르지도 않고, 너무 느리지도 않게. 세상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 등속운동을 유지하며"(10). 나도 내 삶에 놓인 천 개의 찬란한 파랑을 들여다보며 세상을 너무 빠르지도 않고, 너무 느리지도 않게 달려 보고 싶다. 나의 속도에 맞추면서. 어차피 이 주로는 나만 달릴 수 있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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