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책
불모지와도 다름없던 국내에서 2000년대 중반 콘솔용 소프트웨어 회사를 호기롭게 창업하며 가장 아쉬웠던 점은 참조할만한 조언이나 텍스트의 부재였습니다.
아주 오래 전 비디오게임의 연대기를 다룬 번역서라도 들여다보며 나름 참조할만한 내용을 찾던 기억이 납니다.
MS, Sony, Nintendo와 모두 2nd Party 계약을 통해 타이틀을 출시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늘 뚜렷한 지침이 될 만한 가이드 없이 시행착오의 연속을 반복적으로 체험하며 약 10여년의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 주말의 대미를 함께하는 책, [피, 땀, 픽셀]은 그런 의미에서 30,40대의 저를 돌아보는 시간을 만들어 줍니다.
저자 제이슨 슈라이어는 게임 웹진 ‘코타쿠’의 뉴스 에디터로서 이 책을 쓰기 위해 2년 동안 약 100여명의 비디오게임 개발자 및 경영진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정된 트리플 A급의 상업적인 성공을 이룬 비디오게임의 탄생에 얽힌 에피소드와 그 과정에서 참여자들의 심리적인 변화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리한 내용을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는 책입니다.
특히 헤일로의 번지스튜디오가 개발하고 최근 한글화되어 블리자드의 베틀넷을 통해 국내에도 서비스되기 시작한 데스티니의 전작에 대한 탄생 비화가 실려있어 반갑게 봤습니다.
Xbox의 초기 출시의 동시발매 타이틀로 대작반열에 이름을 올린 헤일로의 개발사 번지가 MS와 결별하고 다시 독립 스튜디오의 길을 걷기 시작하며 후속작으로 데스티니를 출시하기 까지의 내부 변화의 모습이 리얼하게 담겨 있습니다.
상업적인 이해관계로 얽혀있는 회사라는 실체와 그 속에서 원하는 바를 프로젝트에 투영하고 싶은 게임 크리에이터들의 갈등과 타협의 세세한 스토리는 그 자체로 한편의 드라마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에 없는 가상의 세상을 창조하고 피조물로서 살아 움직이는 듯한 게임 캐릭터를 만들어 나가는 크리에이터들이 겪는 창작의 고통을 여실히 들여다 볼 수 있기도 합니다.
누군가가 즐기기 위해 선택하는 게임이 세상에 탄생하기 위한 과정이 이토록 어렵고 힘들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산고를 겪고 세상에 나온 게임이 오랫동안 예술적 산물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에 보람을 느끼며 오늘도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비디오 게임 프로젝트에 몸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치열한 창작의 순간들을 마치 현장감있는 영화를 보듯이 세세하게 묘사한 본문 내용을 읽다보면 누구라도 예전에 즐겼던 게임들과 그 게임을 즐기는 자신을 추억하게 될 것 같습니다.
많을 때에는 5~60명 남짓한 개발팀과 작은 아이디어로 시작해서 정식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숱한 불면의 밤을 지나 불안과 희열이 교차하는 출시에 이르던 시간을 생생하게 기억나게 하는 책입니다.
아직도 유저들이 즐기게 될 게임을 고통스러운 창작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 나가고 있는 분들이라면, 외로운 항해에서 만나는 등대처럼 참조가 될 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