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용 소프트웨어의 장기적인 투자와 육성
올해 IT 업계를 돌아보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일을 꼽으라면 저는 개인적으로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이 떠오릅니다.
우리나라가 국민 PC 보급과 초고속 인터넷 그리고 PC방 열풍 등으로 인해 조성되었던 초기 IT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이라는 과거의 기억에 머물러 있는 동안, 해외 기업들이 장기 투자를 통해 얼마나 큰 격차로 앞서가고 있는가를 여실히 느끼게 해 주는 이벤트였습니다.
당장 상업화가 답보되지 않는 분야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가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투자 환경에서 스타트업의 대담한 도전들을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는 한계를 느끼게 됩니다.
해외 시장에서 먼저 불어오는 트랜드에 따라 한 발 늦게 휩쓸려 쫒아가다보니, 선점 효과를 통해 시장으로 주도하기 보다는 메이저 시장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조류에 속해 있는 것에 안주하는 경향이 만연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가까운 중국이 스스로 보유하고 있는 거대 내수시장을 통해 충분히 실험가능한 다양한 상업적 시도들이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고 그 중에서 일부는 세계 시장을 리딩할 정도로 성과를 내고 있는 것과 비교가 됩니다.
드론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DJI나 VR 하드웨어와 응용 소프트웨어 등을 보면, 중국은 이제 더이상 기술적인 변두리나 저가 저사양의 오명에서 벗어나 오히려 세계 시장의 상업적인 동향을 주도하는 중심 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중국의 발전은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지만, 종국에는 하드웨어를 견인하는 높은 기술력의 응용 소프트웨어가 같은 속도로 그 수준을 높여나갔기에 가능합니다.
서구 국가에서 학업을 마친 우수 인력들이 거대 시장이 뒷받침되고 있는 중국에서 스타트업을 창업하여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융합되는 새로운 분야의 다양한 시도를 지속해 온 결과가 단기에 큰 성과로 나타나고 있는 예를 우리는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수출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국내 IT 업계의 아이콘과도 같았던 삼성의 대표 스마트폰 모델인 노트7이 발매 후 발열과 폭발로 비행기 탑승조차 거부당하고 끝내 단종을 맞게 된 올 해는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던 IT 강국이라는 자부심에 걸맞는 위상이 극도로 위축되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드웨어만으로 견인하는 국가 경쟁력이 쉽게 좌초될 수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습니다.
만약 삼성이 무선 통신의 근간이 되는 OS와 제반 기술 분야에 보다 지속적인 투자를 선행했다면, 하드웨어의 위기상황을 상쇄하는 위험 분산의 효과를 가져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자율주행차의 경우에도 선도 기업들이 일반도로 시험 주행 기록을 착실히 쌓아가며 상용화의 문턱을 넘어서도 있는 올 해, 아직도 테스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며 큰 격차로 뒤떨어져서 따라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자율주행차의 기본 데이타가 되는 도로 정밀 지도나, 시험 주행이 가능한 법규 마련 등까지 감안하면 그 격차는 더욱 더 커 보입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미래 경쟁상황에서 우리나라 기업의 경쟁력을 가져갈 수 있는 IT 분야가 무엇인가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들 수 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기초적인 응용 소프트웨어 분야에 장기적은 안목으로 투자하고 세계시장 문호를 두드리는 시도가 그리 많지 않다는 현실에 놀라게 됩니다.
작은 시도를 쌓아가고, 그 과정에서 얻은 시장에서의 경험치가 지속적인 투자와 병행될 때만 응용 소프트웨어의 세계 시장 진출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의 IT분야에 대한 진흥 정책도 화제성이 높고 해외 시장에서 불어오는 트랜드에만 관심을 집중할 것이 아니라, IT 산업의 기초를 이루는 응용 소프트웨어 분야에 장기적인 육성과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글로벌 시장에서 100대 소프트웨어 기업을 하나 조차 보유하고 있지 않는 상황에서, IT 업계가 국가 기간 산업으로 세계 시장에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벗어던져야 할 것입니다.
만시지탄이지만 지금이라도 응용 소프트웨어 분야의 장기적인 투자를 통해 글로벌 IT 시장에서의 착실한 성공 방정식을 쌓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지금도 해외 시장에서의 성공을 꿈꾸며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어려운 도전을 이어나가는 몇몇 국내 기업이 있다는 사실을 응원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