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시를 추구했으나 결국 귀여운
스무 살 초반, 우리는 모이기만 하면 섹시함에 대해 토론했다.
우리 과 여자는 인기가 없었다. 남자들은 미대, 음대, 간호대, 교대 등 각종 여초 과의 콜을 받아 스케줄러를 돌리지 않으면 관리가 안 될 만큼 바쁘게 미팅을 하고 다녔는데, 우리는 약속이 없었다. 그래서 떨거지처럼 남아 어떻게 하면 섹시해질 수 있는가를 연구했다.
연구 결과에 대해 몇 가지 공유해 보자면, (동일한 미인형의 얼굴임을 가정했을 때) 섹시하기 위해선 키가 커야 하며, 볼륨감이 있어야 하고, 목소리 톤이 낮고 차분해야 한다. 이 밖에도 앞머리가 없을 것, 속옷을 세트로 맞춰 입을 것, 향수를 쓸 것, 건강해 보이는 화장법을 배울 것 등등 줄줄이 많지만 이 이상은 기밀사항이다.
난 앞서 기술한 주요 세 가지 항목에서 모두 표준 미달이었다. 성장발육이 왕성한 시기에 공부를 너무 많이 한 탓에 키와 가슴으로 가야 할 영양분이 다 뇌로 가버린 듯 157cm 37kg의 저체중 단신은 아무리 짧게 입어도 야하지 않았다. 노출을 해도 볼 게 없었다. 그냥 귀여웠다. 목소리 톤도 높고 애기같이 말하는 버릇까지 있어 섹시와는 거리가 멀었다.
우리는 서로를 채찍질 해가며 섹시해지고자 노력했다. 내가 귀엽게 굴면, 친구들은 "야 최굴굴 네가 마흔까지 귀여울 수 있을 거 같아? 섹시해지라고!" 하며 단도리를 시켰다. 그럼 난 또 거기다 대고 "흑, 나는 글렀어. 먼저가. 늬들 먼저 언니가 되렴." 하며 우는 시늉을 하곤 했다.
그런데 여전히 키는 작고, 볼륨은 없고, 방심하면 애교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마는 그 상태 그대로 정말 마흔이 되어버렸다. 섹시하고 싶어 안달났던 그때가 가장 섹시했다는 걸 실감하는 이 마흔의 아줌마는 이제 막 깊어지기 시작한 주름을 세며 실낱같은 귀여움마져 사라지는 날을 기다리는 중이다.
*철없던 시절의 이야기니 재미로 봐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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