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앞두고 쓰는 에세이
"아들이 마흔이 되면 제사를 물려주거라. 그전까지는 너의 일이다."
시어머니에게 무당이 말했다.
세월이 흘러 그 아들이 드디어 마흔이 되었다.
아들의 아내는 짐짓 괜찮은 척했지만 속으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12년간 외면해 온 그 일이 결국 내 일이 되었구나 하면서...
고민을 길게 하는 성격은 아니라 바로 준비를 시작했다. 심플한 제기와 큼지막한 교자상을 구매하고 집 어디에 두어야 할지 고민하는 그녀를 보고 아들은 흐뭇해했다. "제사음식은 주문하면 되니 걱정할 것 하나 없어." 라며 선심 쓰듯 말하는 그에게 아내는 고마운 마음 한 톨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될까?” 하며 주저하는 척도 조금 해두었다.
새해 전날, 철없는 올케가 걱정이 된 시누들은 바리바리 명절음식을 싸들고 서울까지 올라왔다. 과연 그녀는 차례 딱 한 시간 전 느릿느릿 일어나 무려 30분간 화장을 하고 나와 모두를 긴장케 해했다. 그리고는 6명의 시누들 앞에서 쿨하게 B사 사골국 두 봉지를 까 냉동만두와 냉동떡을 넣고 3분 만에 떡국을 끓여 내었다. 양심은 있었는지 대파를 조금 썰어 넣었다. 당일 아침에 배송 온 차례음식과 시누들이 준비해 온 음식을 차곡차곡 그릇에 옮겨 담았다.
상이 차려졌다. 향이 없어 인센스 스틱을 꽂고 무드 촛불조명을 올린 차례상은 기가 찰만큼 아기자기했고, 희한하게 정갈했다. 다 같이 절을 올리고 상에 차려진 음식을 맛있게 먹고 기분 좋게 헤어졌다.
'그래, 웃으면 되었다.' 시어머니는 많은 말을 삼키기로 했다.
다시 추석이 돌아왔다. 첫 단추를 잘 끼운 며느리는 자신있게 또 준비를 할 것이다. 그녀만의 방식으로, 그녀가 할 수 있는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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