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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굴굴 Dec 10. 2023

시누이가 여섯인 게 서러운 순간

내 아들이 아프다

12년 전, 겁도 없이 누나가 여섯인 막내아들에게 시집을 가겠다고 예비시댁에 인사를 다녀왔다. 그때 광주가 그렇게 먼 도시라는 것을 처음 알았고, 내가 많은 사람과 부대끼고 나면 앓아눕는 체질인 것도 알게 되었다. '이거 괜찮을까?' 싶었지만 이미 산비탈을 굴러내려 가는 돌덩이마냥 나의 사랑은 멈출 수가 없었다.


결혼 후, 명절과 행사로 시댁에 다녀오는 날이면 이런 선택을 한 나를 똥멍충이라 자책했다. 수련회 같은 2박 3일 명절 끝엔 참았던 눈물이 터지기 일쑤였고, 눈치 보는 남편에게 복수랍시고 며칠씩 내 수족이 돼라 강요했다.


어느덧 10년이 흘러 절대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았던 시댁행도 다 큰 조카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낄낄댄다거나, 여섯 시누들과 눈에 불을 켜고 내기 포커를 친다거나, 시어머니와 싹퉁바가지 주인공을 함께 욕하며 드라마를 신나게 본다던가 하는 등 육체적 고단함을 상쇄할 즐거움을 찾게 되면서 점차 할만해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다녀와 아프지도 않았고 눈물도 나지 않았다.


내 아들이 힘들어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를 닮아 예민하고 체력 약한 아들은 제사로 4박 5일 손님을 치르는 동안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서 잠도 푹 못 자고, 화장실도 편히 못 갔다. 별것도 아닌 걸로 사촌 형아와 싸우면서 마음고생까지 했다. 실시간으로 그가 시들어가는 게 보였다. 결국 마지막날 밤 열이 오르고 컹컹 기침을 하며 내 품에 안겨 이 사람들은 언제 집으로 돌아가냐고 묻는데 오랜만에 눈물이 찔끔 났다.


가족이 많고 화목한 것은 분명 복이다. 하지만 그 이면엔 겪어본 사람들만 아는 고생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나는 이제 인이 박여 괜찮지만 아들이 고생하는 것을 보니 대가족에 시집온 것을 후회하던 그때가 다시 떠올랐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일이 지나면 또 우리는 다음에 만날 날을 기다릴 거야. 그때까지 밥 많이 먹어두자. 그땐 아프지

말고 더 재밌게 놀아야지." 하며 발갛게 열이 오른 아이를 안고 다독여 주었다.

엄마로서 속상한 건, 그리고 아들에게 미안한 건 많은 가족을 만들어준 게 아니라 저질체력을 물려준 거니까.








*대문 사진출처: bing 이미지 크리에이터로 제작했습니다. 우리 아들이 아닙니다. 그림입니다:)

*본문 그림은 제가 직접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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