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을 병들게 하는 그것! (2)

리더는 사라졌고, 리더의 말투만 남았다

by Chloe C


판단은 없고, 문장만 남는 보고서의 구조



“이거 그냥 이대로 써도 되죠?”

“맞는 내용이죠?”

“이 수치는 어떻게 나온 거예요? “

”이거 수치 너무 작으니 이렇게 조정할게요! “


일을 하다 보면 연쇄적으로

이런 질문이 메신저 혹은 전화로 날아든다.

그것도 빨리 답하라는 압박까지 있다.


표면적으로는 정중한 확인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실린 건 **의심도, 요청도 아닌 ‘책임 회피’**다.


놀라운 건, 이 질문이

이미 완성된 보고서를 읽은 뒤에 던져졌다는 점이다.



수치도, 이력도, 스토리라인도 이미 반영돼 있었다.

문제는 그것을 읽지 않은 채 다시 물어온다는 것.

아니, 어쩌면 애초에 읽을 의지가 없었던 것일지도...


단순한 무성의함이라 생각했던 이 패턴은

몇 달, 몇 년을 반복하면서 하나의 조직 언어가 되었다.


판단은 피하고, 표현은 부드럽게.

지시와 요청의 경계를 흐리고, 책임의 출처를 모호하게.



이 말투는 리더의 언어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리더의 바로 아래,

보고서를 정리하는 ‘취합자’에게로 전염되었다.


“포맷만 맞춰주세요.”

“글틀만 대충 잡아주세요.”

“제가 보기엔 괜찮은 것 같은데, 올려봐도 될까요?”


판단은 피하고, 일은 아래로 흐르게 만든다.

그리고 그런 언어는

취합자 실무자 다른 부서로 번지며

조직 전체에 퍼진다.



리더는 어느 순간부터

실체가 아닌 화법으로 존재하게 됐다.

그가 지시한 내용보다

그가 남긴 말투가 더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이 감염은 보고서 하나하나에 배어들고,

결국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보고서만 쌓인다.



메신저에서 마주한 어떤 실무자의 톤을 듣고

문득 생각했다.


“이 말투… 어디서 들어봤더라?”

“그 말, 몇 달 전 임원 회의에서 누가 했던 거지?”

“그때 정리해 주던 실무자가… 지금 이 말 그대로 하고 있네.”


조직은 리더를 닮는다.

그리고 더 정확히 말하면,

리더의 무책임한 말투를 그대로 닮는다.



더 안타까운 건,

그 말투를 따라 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본인이 이미 병들었다는 걸

자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저 ‘그렇게 하는 게 안전하니까’,

‘이게 윗사람이 원하는 방식이니까’.


이렇게 오늘도,

판단 없는 보고서가 생성된다.

이전 04화조직을 병들게 하는 그것!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