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1.18 주일설교 전문
요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많이 외우는 구절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에 대해서 우리는 정말 이 구절을 기록했던 요한의 의도대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저마다 이 구절을 자기 생각에 맞춰서 해석하고 있는 것일까요?
오늘날 '진리'라는 단어에 대해서 사람들은 쉽게 어떤 공식이나 법칙처럼 받아들입니다. 마치 "1+1=2"라는 식의 변하지 않는 수학 공식 같은 것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진리라는 단어도 우리가 교회에서 계속해서 반복해서 들었던 '구원의 공식' 쯤으로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이 오셨고, 십자가에서 내 죄를 다 짊어지고 돌아가셨고, 그렇게 피 흘려서 내 죄가 눈보다 더 깨끗하게 씻어졌으니, 나는 구원받았다.’ 이것이 요한복음에서 이야기하는 진리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진리는 이런 공식이 아닙니다. 구약에서부터 진리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성경 저자들은 "1+1=2"와 같은 수학적 공식을 염두하고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그 단어의 사용을 살펴보면 항상 관계 속에서 사용되었으며 그 진리라는 단어 안에는 '참됨', '신실함', '성실함', '변하지 않는 한결같음', '믿을 만함' 등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에서도 그 의미는 계속 이어집니다.
요일1: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이 말씀에 나와 있듯, 성경에는 '진리를 행한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만약 진리가 수학 공식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면, 도대체 진리를 어떻게 '행할' 수 있겠습니까? 즉, 진리는 '성품'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그것을 행한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처럼 신실하게, 거짓 없이, 진실하게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하나님은 진리이시다"라는 고백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와의 관계에서 약속을 지키시고, 신실하시고, 우리를 속이지 않는 '믿을만한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을 삶으로 경험했기 때문에 그 하나님에게 "당신은 진리이십니다"라는 고백을 하는 겁니다.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8장 32절을 다시 읽어봅시다.
요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우리는 그 동안 이 진리를 마치 알라딘의 요술램프처럼 생각했다는 겁니다. 주문을 외우는 것 처럼 힘들 때마다 '예수 피!', '십자가!' 하고 외치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마치 자동판매기에서 커피가 나오듯 구원이 뚝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진리를 취급하는 것은 이방인들이 자신들의 신에게 도움을 얻기 위해 수리수리마수리 같은 주문을 외우는 것과 대체 무엇이 다른 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을 고작 주문을 잘 외워야 복을 주는 식의 미신적인 수준의 잡신으로 만들어 버리는 행위입니다.
다시 하지만 진리는 수학 공식이 아닙니다. 진리를 아는 것은 약속을 지키시고 신실하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알아가는 것이 바로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공식처럼 때론 주문 처럼 이해하고 외워왔기 때문에 그 부작용으로 이 공식을 잘 알아야 구원받는다고 이해했고, 그렇게 구원받는 것을 단순히 죽어서 천국가는 것으로 이해해왔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을 보십시오. 그들에게 구원은 죽어서 가는 어떤 곳이 아니라, 지긋지긋한 노예 생활에서 해방되며 동시에 하나님을 만나는 여정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을 위해 어떤 공식을 외우거나 주문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믿은 것은 하나님이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맺었던 약속대로 행하실 것을 믿었고, 그 하나님이 신실하게 그 일들을 진행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이것이 진리였고 구원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일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진리를 배워야 합니다. 성경 공부해서 머리에 채우는 지식이 아닙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내 삶속에서 경험하는 것입니다.
나의 계속되는 실패에도 절대 포기하지 않으시는 그분의 '사랑', 아브라함부터의 언약을 나에게 까지 이어서 행하시는 그 ‘신실함’, 등. 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 자체가 진리입니다.
그리고 진리를 배운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먼저 그 신실한 사랑(진리)을 보여주셨으니, 나도 그 사랑을 따라 하는 것이 진리를 배우고 알고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날 조건없이 사랑하셨 듯, 나도 이웃을 조건 없이 사랑하며, 하나님이 나에게 그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고 변치 않으시듯 나 역시 이웃에게 신실하고 정직하게 대하는 것이 진리를 배우고 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나를 연구하면 정답을 알게 된다가 아니라, 나의 신실한 삶과 인격을 신뢰하고 따라오라는 초청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겁니다.
오늘 수많은 기독교인이 이 진리를 단순하게 공식처럼 생각하고, 예수 피, 십자가 이런 것을 외우고 기도하니까 아무 변화가 없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 진리를 공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기만 혼자 열심히 기도하고, 성경 보고, 예배당 가면 다 되는 줄 착각합니다.
그들의 열심인 신앙생활에는 '이웃'이 들어올 자리가 없습니다. 이웃에게 진리를 행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은 안타깝지만 하나님에게도 진리로 다가가는 법을 모르게 됩니다.
이런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저는 빌라도와 비슷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빌라도와의 대화가 요한복음 18장에 등장합니다.
요18:37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 18:38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는다." 즉, 진리에 속했다는 것은 예수님의 삶 속에서 관계를 맺으며 배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창녀와 세리들과 식사를 할 때, 함께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예수님이 부정하고 가난한 자들과 친구가 될 때에 함께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 죄인을 위해 왔다며 죄인들을 찾아갈 때에 함께 찾아갔던 사람들이 바로 진리를 알고 진리에 속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연스럽게 예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진리는 이것이다. 저것이다. 설명하지 않아도 그들은 진리를 압니다.
그런데 빌라도는 묻는 겁니다. "진리가 무엇이냐?" 그는 여전히 이 진리를 어떤 공식처럼, 예수님이 강의를 해주면 배울 수 있는 지식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침묵하실 뿐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성경 공부로 배우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의 삶에 예수님과의 접점이 없는데 어떻게 진리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낮고 천한 곳에 오신 예수님, 가난한 자들과 죄인들의 친구가 되신 예수님은 지금 '낮은 곳'에서 진리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빌라도는 높은 권력의 자리에서 사람들을 억압하며 불의한 재판을 하고 있으니, 예수님의 삶과 맞지 않습니다.
마치 라디오 주파수를 맞춰야 그 방송을 들을 수 있는 것 처럼, 예수님은 낮은 곳에 있는 데 빌라도는 높은 곳에서 주파수를 맞추고는 예수님에게 진리를 묻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예수님이 말씀하셔도 빌라도는 그 소리를 들을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진리를 듣는 것은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오늘 교회는 예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까? 저는 솔직히 의심을 합니다. 마치 빌라도처럼 진리를 묻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삶처럼 낮은 곳에서 주파수를 맞추는 삶을 살아내면 자연스럽게 그 진리가 들릴 것인데, 우리는 자꾸 빌라도처럼 성경 공부를 통해서 지식으로 진리를 묻고 있는 중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예수님은 "진리에 속한 자는 내 목소리를 듣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빌라도는 진리로 예수님을 이해한 것이 아니라 그냥 자신의 생각으로 예수님을 이해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을 수 없다.” 딱 여기까지 입니다. 빌라도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진리는 아닙니다.
막5:7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진리가 예수님의 정체를 맞추는 거라면, 귀신도 진리를 알고 있는 존재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귀신이 예수와 함께 할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은 그 신실하고 정직한 태도로 살아 갈 힘이 없기에, 진리를 결코 알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빌라도와 귀신은 예수님에 대해 정답을 맞힐지는 몰라도, 진리를 소유할 힘은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유하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렇게 말합니다. "진리를 알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진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진리를 얻으셨기 때문에 자유로울 수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한번 보십시오. 그분은 당시 종교인들이 목숨처럼 여기던 안식일 법을 어기고 밀 이삭을 잘라 드셨습니다. "부정한 자와 접촉하지 말라"는 율법의 문자를 넘어, 손가락질 받던 세리와 창녀, 죄인들의 식탁에 앉아 친구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식처럼 외우는 진리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진리를 아셨기 때문에 율법의 조문을 넘어서는 참된 자유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실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문자적으로 율법 조문이나 종교적 관습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영혼을 살려내는 사랑이라는 것을 진리를 통해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 진리를 알기 때문에 그 당시 사람들이 진리라고 믿었던 그 율법들을 자유롭게 해석하실 수 있었던 겁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배운 참된 진리가 예수님을 두려움 없는 파격적인 사랑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진리와 자유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진리라고 믿고 있는 교회의 규칙들과 성경 구절들을 지킨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그 당시의 바리새인과 서기관처럼 행동하지 않고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동성애는 안 돼. 성경에 써 있어." 그러면서 우리는 너무 쉽게 한 사람의 인생을 무시하고 조롱하거나 죄인 취급합니다.
"십일조는 무조건 드려야 해. 성경에 써 있어." 그러면서 우리는 기계적으로 십일조를 내면 나머지 9에 대해서는 함부로 사용하고 욕심부립니다. 심지어 더 많은 십일조를 내기 위해 불법을 행하고 사람들을 착취하면서도, 십일조만 내면 하나님이 좋아하실 것이라는 이상한 진리를 믿고 있습니다.
"주일 예배는 무조건 드려야 해. 성경에 써 있어." 그렇게 우리는 안식일을 지킬 수 없는 환경에 놓여있는 사람을 이해하기는 커녕, 믿음이 없다고 쉽게 정죄하고 그들의 삶을 돌아보지도 않고 판단해버립니다.
"이것은 교리에 어긋나고, 저것은 성경에 써 있고..." 이런 식으로 배운 진리들은 다시 말하지만, 빌라도와 귀신들이 알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에 불과합니다. 이 지식은 진리가 아니라, 오히려 진리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지도 모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과의 관계를 통해 참된 진리를 듣고 배우는 성도님이 되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그렇게 나를 찾아오신 예수님과의 관계 속에서 진리를 배우길 기도합니다.
우리가 낮은 곳에서 예수님처럼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예수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그분의 진리를 배울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을 따라 사십시오. 세리와 창녀들, 고아와 과부 등. 버림 받은 사람들에게 거리낌 없이 다가가 온몸으로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면 좋겠습니다. 죄인을 위해 오셨다는 예수님처럼, 그들의 겉모습이나 조건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님의 신실하신 진리로 그들에게 다가가는 자유로운 성도님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그렇게 배운 진리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 것입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참된 자유가 무엇인지를 보고 듣게 될 것이고,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것이라 저는 믿습니다.
피라미드가 자연스러운 사회 속에서 출애굽만이 자유가 무엇인지를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21세기에 모두 자유롭고 완벽한 체제에 살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참된 자유가 무엇인지를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진리를 아는 사람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부디 진리를 아시고, 자유롭게 되는 성도님이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