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에게 가장 큰 위로는 뭐니뭐니 해도 취업 못한 친구다. 더 큰 위로는 취업 못 한 선배. '그래도 내가 쟤보단 낫구나'라고 생각하면 오늘이 주말 아침임을 확인하고 다시 잠드는 회사원처럼 마음이 편안해진다. 원한 적은 없지만 남의 불행으로 내 행복을 살 찌우기도 합니다.
서점에서 <다시,보통날>을 집어든 것도 이와 비슷한 불순한 이유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암벽등반을 하다 30미터 아래로 떨어져 일상의 거의 모든 것을 잃은 남자의 이야기. '어이구 저런' '역시 암벽등반은 위험해' '쟤에 비하면 난 행복하구나' 등등 사이코패스 같은 생각을 하며 책을 대강 훑었다. 사이코패스 기질에 대해 약간의 변명을 해보자면, 어릴 때부터 티비에 소년소녀가장이나 아프리카 난민이 나오면 "저거 좀 봐라 너들은 음청 행복한 거야"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불행한 이야기에서 내가 가진 행복을 확인하려는 끔찍한 습관이 생긴 겁니다.
책은 얇다. 저자가 사고 후 병원에 있으며 생각한 것들을 정리해 놓았다. 사고 전 일상에 대한 생각, 다른 환자들을 보며 든 생각. <오체불만족> 같은 데 나오는 '살기 존나 불편하지만 정신승리로 모든 걸 이겨냈습니다!'같은 걸 읽고 싶으신 분에겐 추천하지 않습니다. 그런 파이팅 넘치는 책은 아니거든요. 그보단 차분하고 소상하게 자신의 삶이 얼마나 좆됐는지 서술해 놓은 책이다.
더불어 저자는 인생의 수렁에서 바라 본 평범한 일상에 대한 감상을 적는다. 어렵지만 나름 그 심경을 추측해 보자면, 교도소 창살 너머로 꽃 한 송이를 보는 감상과 비슷하지 않을까. 사실 뭐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관성의 열차를 타고 칙칙폭폭 달린다. 보이는 것은 창문 밖으로 흐르는 풍경이 전부다. 그러다 열차가 탈선하고 내 몸뚱아리는 휭휭 날아가 근처 덤불에 메다꽂힌다. 전과 다른 것들이 보인다. 공간은 그대로인데 시점이 바뀐다. 열차에 앉아 풍경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풍경에 앉아 열차를 바라본다. 내가 탔던 것이 무궁화혼가 케이티엑슨가, 지나온 선로는 어떤 모양인가, 내가 가졌던, 가졌다고 생각했던 것은 무엇인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중요했던 것은 무엇인가.
<달의 궁전>이란 책 초반에 주인공이 자신의 삶을 자발적으로 망하게 하는 내용이 나온다. 능력이 있음에도 비경제활동인구가 되어 종국엔 쓰레기통을 뒤져 스위트콘을 득템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 삶을 보는 새로운 시점을 얻기 위해 그랬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고 우리 모두 거지가 돼야 한다는 건 아니고. 그저 이런 책들을 보며 '나는 어려운 상황에서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 볼 뿐이다. 꿈 꿔 보기론 위트와 재간을 잊지 않고 지인들이 놀랄 만큼 덤덤히 이겨내면 좋겠는데, 그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아마 "어이구 인생 이럴 줄 알았어"라며 발랑 자빠져서 울부짖는다에 내 앞니 두 개를 건다.
하지만 또 모른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처럼 '지금도 그때 다친 손이 아플 때가 있다. 특히 비가 온다거나 주먹을 꽉 쥘 때 그렇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나는 어차피 외과 의사나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지는 않을 테니' 같은 청소년 답지 않은 초연한 마음으로 살 수 있을지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만, 인생의 나쁜 순간 앞에서 난 어떤 표정을 지을지, 어떤 표정을 짓고 싶은지 생각해 보는 건 지금의 나에 대해 고민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나쁜 상황은 실제로 닥쳤을 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나쁘다. 의연하리라 생각했던 나는 생각보다 훨씬 구리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보통의 사람이다. 짜증내면 안 되는 사람에게 짜증내고, 돌이킬 수 없는 일에 미련을 갖고, 하늘을 원망한다. 그게 보통이다. 그다지 본 받을 것 없는, 불행을 맞이했을 때 보통의 사람이 취하는 반응이다. 그래서 더 응원하고 싶다. 그의 불행으로 내 행복을 돋보이게 하는 대신, 나 같은 보통 사람이 보통 날을 찾는 것을 보며 그러니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