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와 동시대에 살고 있는 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책을 읽다 마음에 드는 구절이 나오면 밑줄을 긋는다. 근데 구절 단위가 아니라 책이 통째로 마음에 들면 어… 밑줄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그어야 할 지 막막해 진다. 펜을 든 손이 줄과 줄 사이를 와리가리한다. 김훈의 책은 제게 그런 갈등을 주곤 합니다.
<자전거 여행>과 <칼의 노래>에 이어 세 번째 읽는 김훈의 책이다. 한 작가의 책을 세 권 읽는 동안 느낀 심경 변화는 연인을 만날 때의 그것과 비슷하다. 처음 읽을 땐 ‘뭐 이런 게 다 있지?’했다. 좋은 의미로. 처음 보는 문체, 표현, 통찰에 소름이 돋는데 그 소름이 너무 내 취향. 두 권째 읽을 때도 감탄스럽긴 했지만 그저 감탄만 한 것은 아니고 작가에 대해 나름대로 파악하기 시작했다. 세 권째 읽을 땐 기분 좋은 익숙함이 느껴졌다. ‘그래 바로 요런 문장이지’하는 즐거움. 아직 읽지 못한 책이 많으니 다음엔 어떤 심경 변화를 느낄 지 기대됩니다.
신작 <공터에서>에는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에 걸쳐 일제 강점, 6∙25 전쟁, 베트남 전쟁을 겪은 한 가족이 등장한다. 아버지의 죽음을 시작으로 과거와 현재, 아들들의 이야기와 아버지의 이야기를 오가며 서술된다. 내용을 한 줄로 정리하자면(불가능한 일이지만) 아버지로 상징되는 ‘부모세대의 가난과 전쟁 후유증’에서 벗어나려는 아들들의 발악, 정도겠다. 이렇게 밖에 소개를 못하는 내 뇌와 손가락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게 전쟁은 실체 없는 뜬구름이다. 원래 가진 뜻만큼 충격적인 울림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이런 소설이 필요하다. 소설을 읽으면 전쟁 아래서 난 목숨이나 진 목숨이나 그 무게감이 얼마나 가벼운지 욱신욱신 느껴진다. 종종 수치스럽기도 하다. 나는 무슨 천운으로 저 개 같은 시대를 비켜갔을까. '어휴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당대에 나고 진 목숨들을 생각하면 어딘가 답답해 진다.
참고로 주인공으로 나오는 두 아들의 이름은 '마장세'와 '마차세'다. 맏이로 태어나서 장세, 둘째라서 차세. 나는 이 불성실한 작명이 굉장히 마음에 듭니다. '니들 이름처럼 삶은 원래 대충대충 건성건성이란다'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물론 장세와 차세 중 누구 하나 그렇게 살진 못한다.
P10. 마동수의 마지막 의식은 죽음이 이끄는 썰물에 실려서 먼 수평선 너머로 흘러갔다가 다시 밀물에 얹혀서 이승의 해안으로 떠밀려 오기를 세 번 거듭했다. 숨이 끊어지기 전에 혼백이 먼저 육신을 떠나서 멀어졌고 다시 몸속으로 돌아왔다.
마동수의 마지막 의식은 시간의 파도에 실려서, 삶과 죽음 사이를 왔다 갔다 하다가 세 번째 썰물에 실려 저편으로 아주 건너갔고, 다리가 오그라졌다.
김훈이 묘사의 장인인건 소금을 먹으면 짜고 똥을 싸면 개운하다는 사실만큼 당연하니 부연해서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김훈은 추상적인 개념이나 느낌을 자연물에 빗댄다. 죽기 전 의식이 가물가물 한 것을 밀물과 썰물에 빗댔다. 후반부에 임신을 새벽에 비유해 ‘몸속의 어두운 바다에 새벽의 첫 빛이 번지는 것처럼 단전 아래에서 먼 동이 텄다’고 쓴 부분은 책 전체에서 내게 가장 아름다운 비유다. 죽음도 태어남도 자연의 하나로 치환시키는 방식은 김훈이 기본적으로 가진 '꽃잎 흩날리는 벚나무 아래에서 문명사는 엄숙할 리 없다'는 가치관과도 잘 어울린다.
P46. 터져 나오는 울음과 울음을 누르려는 울음이 부딪치면서 울음이 뒤틀렸다. 입 밖으로 새어 나온 울음이 몸속에 쟁여진 울음을 끌어냈다. 몸 밖의 울음과 몸 안의 울음이 이어져서 울음은 굽이쳤고, 이음이 끊어질 때 울음은 막혀서 끽끽거렸다.
잘 때도 얕은 수면과 깊은 수면, 꿈을 꾸는 수면 등 여러 수면이 모여 하룻밤의 수면을 만들 듯, 울음도 터져 나오는 울음과 그것을 누르려는 울음, 몸 속 깊은 곳의 울음 등이 복합적으로 모여 한 사람의 울음을 만드나 보다. 수면은 뇌파로 분석한다지만 울음을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P83. 저녁 어스름에 난데스까의 네온사인이 켜졌다. 점멸등 네온사인은 난데스까, 난데스까, 하면서 깜박거렸다.
이런 위트 너무 좋다. 난데스까, 난데스까, 라니. 사랑스런 아재여라.
p93. 계곡과 능선이 눈에 덮이고 달빛이 스며서 죄는 보이지 않았다.
책 전체에서 가장 좋아하는 문장. 피 반죽과 시체 위로 눈이 내린 장면에 대한 묘사다. 문장에서 감춰진 슬픔과 잔인함은 읽는 이의 깊은 곳에서 울컥울컥 솟는다. 하지만 김훈의 가치관엔 위계가 있어 인간의 비극도 자연 아래 평화롭게 덮인다.
P142. 해가 떠오르면 남태평양의 빛은 일사각에 따라 연안에서 원양으로 전개되었다. 연두는 아침에 맹그로브 숲에서 깨어나 해가 숲 위로 오르면 군청색으로 바뀌어 원양으로 나아갔다. 빛이 닿는 자리마다 색이 열려서 꽃들은 원색으로 피어났고, 군청색이 다하는 수평선 너머에서 빛은 하얗게 들끓었다. 바람이 먼 대륙으로 건너간 날에 열대의 바다는 고요해서 새들의 울음소리가 먼 섬에 닿았고 등대의 풍향계는 수평선 쪽으로 고정되었다.
세상을 이렇게 바라보고 묘사할 수 있는 사람과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사실 이렇게 몇 문장 옮겨 적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싶습니다. 모든 문장이 다 좋은데. 책 뒷편에 작가 후기가 있다. 김훈 작가 후기의 장점은 짧다는 것. 에필로그나 프롤로그가 길면 왠지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을 듣는 것 같아 기분이 영 별롭니다. 김훈은 작가 후기에 '지난 몇 년 동안, 늙기가 힘들어서 허덕지덕하였다. 의료비 지출이 늘어났다. 지금은 조금씩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 썼다. 김훈 아자씨, 책 안 내도 되니까 제발 건강하셔유(내주시면 더 좋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