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한 것에 대하여_<도시의 흉년>

저자 박완서/출판 세계사

by 빵떡씨
브런치엔 책 정보 찾는 게 없는 걸까 있는데 내가 등신이라 못 찾는 걸까. 아무튼 사진으로 대체.

고등학교 가정책 표지엔 어떤 일관성이 있었다. 1학년 땐 윷놀이 하는 가족, 2학년 땐 소풍가는 가족, 3학년 땐 식사하는 가족. 활동 종목만 바뀌었지 엄마, 아빠, 아들, 딸 4인 구성의 화목한 가족이라는 건 변함이 없었다. 가정책을 구부려 판치기를 할 때마다 화목한 가족의 모습을 가슴에 새겼다.

오늘날에도 모든 가정의 화목함은 무탈해 보인다. 자식에 대한 사랑도, 부모를 위하는 마음도, 두루두루 안녕함도. 그런 건재하는 것들에 이의를 제기하는 건 왠지 불경해 보인다. 박완서의 <도시의 흉년>은 그 불경스러운 것에 대한 책이다.

요약하자면 주인공 '수연(나)'의 시점에서 본 공사다망한 가족 이야기다. 수연은 할머니, 엄마, 아빠, 언니, 쌍둥이 오빠(수빈)와 함께 산다. 엄마가 6.25 전쟁 때 뚜쟁이 일로 떼돈을 벌어서 수연이 6살이 될 즈음 집이 굉장히 부유해진다. 수연과 수빈은 좋은 학교에 들어간다. 언니는 법관한테 시집을 간다. 3년 내리 가정책 표지를 장식하기에 손색이 없다. 하지만 무엇이든 드러나게 곪는 것보다 안에서 곪는 게 더 심하게 썩어 문드러지는 법이다.

수연의 할머니는 쌍둥이 남매는 세상 없어도 상피 붙는다며(근친상간을 말한다) 수연을 난 자리에서 죽였어야 한다고 한다. 수연은 그 등쌀에 6살 때까지 이모집에 살지만 후에 집에 돌아왔을 때도 할머니는 여전히 수연을 꼴 뵈기 싫어한다.


아무리 가벼운 상관이라도 서로 상처를 맞비벼대는 것 같은 새로운 고통을 주고받고야 말았고 제각기의 상처를 더욱 싱싱하게 하고야 말았다. 일정한 대상을 놓고 반복해서 늘 새삼스러운 열정으로써 미워할 수 있을 만큼 씩씩하고 집요한 점에 있어서 할머니와 나는 가장 닮은 사이였는지도 모른다.


수연의 엄마는 졸부다. 그래서 대대로 부자인 집들이 으레 가진 인맥, 학식, 가풍, 교양 같은 걸 평생 부러워한다. 그 부러움을 자식으로 해소하기 위해 비정상적인 열성으로 바라지를 한다. 그건 자식들의 바람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식욕 없는 입 앞에 "먹어라, 먹어"하며 들이미는 먹음직스러운 음식 같은 것이었다.


자식들에게 있어서 부모들이란 얼마나 숙명적인, 얼마나 끔찍한 악몽일까.
자식들은 효도에 의해서건 불효에 의해서건 부모로부터 놓여나기를 꿈꾸고, 부모들은 효도에 의해서건 불효에 의해서건 자식들과 죽도록 연결되어 있기를 꿈꾼다.


이런 갈등은 수연이 실수로 임신을 하면서 정점을 찍는다. 엄마는 소파수술을 한 수연에게 감쪽같이 숫처녀로 만들어 준다는 영험한(?) '숫처녀수술'까지 시킨다. 수연은 엄마가 억지로 부여한 인공 순결에 끔찍한 거부감을 느낀다. 이 부분은 당시 사회가 여성에게 무엇을 기대했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제발 나의 삶을 자유롭게 하라, 그 여자 구실이라는 것으로부터


하지만 수연도 생각만 그렇게 할 뿐 엄마가 제공하는 안락함에서 정말로 벗어나려고 하지는 않는다. 돈으로 길러진 자식이라 돈 밖에선 살 줄을 몰랐다.

수연의 아버지는 가게의 바지사장이다. 남편이 기죽을까 해서 또 남들 보기에 남자가 사장실에 앉아 있는 게 꼴이 보기도 좋아서 아내가 시킨 것이다. 아버지는 그런 아내에게 진저리를 치며 절름발이 첩을 얻어 산다. 그 첩조차 아내 돈을 살살 빼서 먹여 살려야 할 만큼 무능력하다. 아무튼 집안 구석구석 콩가루가 풀풀 날리는 집안이다. 결말로 갈 수록 더 막장이니 기대해도 좋다.

망한 수채화 같은 이야기다. 잘 그리려고 덧칠 할 수록 무슨 그림인지 알아 볼 수 없게 되고, 종이는 물을 먹어 결국 찢어지고 만다. 다들 사랑해서, 잘 살아보자고 한 짓이지만 그럴수록 상황은 더 끔찍해졌다. 손주끼리 상피 붙는 일 없이 화목하라고, 자식들만이라도 대접 받고 살라고, 남편 기 죽지 말라고 다 좋은 뜻에서 그런 건데. 그러고 보면 우리가 어떤 의도를 갖든 실제로 일어나는 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 같다.

'부모의 사랑', '화목한 가족', '좋은 부모' 같은 게 보여지는 모습과 속내가 얼마나 다른지, 이 풍비하고 박산한 가족을 보면 알 수 있다. 저런 좋은 단어들로 얼마나 크고 작은 문제들을 덮고 살았는지도. 화목, 사랑 그런 걸 믿는다는 건 그 가치를 완벽히 안다는 뜻이 아니다. 그걸 실현할 능력이 있다는 뜻도 아니다. 그저 허울을 쫓는다는 뜻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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