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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떡씨 Aug 14. 2019

[글로그 23] 좋은 글을 쓴다는 것

그 작문 시간에 나는 굶어 죽길 바라던 자아와 처음 조우했다.

11시 정도에 일어나 창문 앞에 쭈구려 앉아 식빵을 뜯어 먹거나 소세지를 뜯어 먹거나 혹은 그 둘을 같이 먹고 양치를 하고 침대에 잠깐 누웠다가 세수를 하고 또 침대에 잠깐 누웠다가 머리를 감고 말리고 구부리고 집을 나선다. 주로 회사에 다니는 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을 보러 간다. 해보니 점심 시간에 맞춰 친구 회사 앞에 가 있는 건 꽤 즐거운 일이다. 특히 나를 처음 발견했을 때의 표정을 보는 건 행복하기까지 하다.


무해한 그들을 만나고 집에 와 에어컨을 키고 눕는다. 더위에 녹은 몸을 재생성 하기 위해 젤리 같은 것을 씹으면서 넷플릭스의 바다를 항해한다. 저녁엔 청소를 하거나 책을 읽는다. 퇴사 후 하리라 다짐했던 것들은 하고 있는가 하면, 퇴사 전에 못 했던 것들은 퇴사 후에도 할 리 없다는 게 지금의 깨달음이다.


이런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뭔가 까먹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글을 꽤나 오래 안 썼구나' 싶은 것이다. 회사에 다닐 때보다 시간은 더 많아졌는데 글은 더 조금 쓴다. 슬프거나 화가 나면 글이 잘 써진다. 감정은 글의 주된 동기가 된다. 그래서 회사 욕에 미쳐 돌던 때엔 부글부글 끓는 감정의 용암탕을 어쩌지 못해 글로 썼다. 뭘 부신 것도 아니고 악을 쓴 것도 아니니 상당히 셰익스피어적이고 젠틀한 분풀이었다.


요즘의 마음이라면 뭐랄까 누굴 죽이고 싶지도 않고 뭘 폭파시키고 싶지도 않다. 이런 심정으로 지내다 보면 '이렇게 평화로운데 글 같은 것을 써서 무얼하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화를 내지 않고서는 쓸 말이 없는 사람이 된 걸까. 나는 시간이 많기도 하고, 누워있을 동안 생각할 거리가 필요하기도 해서 글에 대해 고민해 보기로 했다.


회상 1. 화염방사기

대학생 때 교양 수업으로 글쓰기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교수님은 수업 첫 시간에 학생들의 글쓰기 수준 및 성향을 테스트 한다며 작문을 시켰다. 문항이 여러 가지였던가 한 가지였던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의 질문만은 정확히 기억난다. <Q. 시청 앞에 비둘기가 엄청나게 많다, 이 비둘기 때문에 민원이 장난이 아니고 비둘기 똥은 더 장난이 아니다, 비둘기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내용이었다. 나는 소설식으로 답을 작성했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시청은 나이 드신 분들을 '비둘기 미화원'으로 고용한다. 비둘기 똥도 처리하고 노인 일자리도 창출한다는 명분이었다. 하지만 노인들이 하기엔 일이 고됐고, 작업 환경도 좋지 않았다. 비둘기 미화원 중에는 60대의 아주머니가 한 분 계셨다. 아주머니는 아들이 한 명 있는데 아들은 다리가 불편해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비둘기 미화원 일을 계속 한다. 아들은 어머니가 힘든 일을 하는 게 마음이 편치 않다. 하지만 자신 대신 어머니라도 일을 해야 하는 걸 알기에 어머니를 말리지 못한다.

어머니는 여느 날처럼 주차장에서 비둘기 똥 치우는 작업에 열중하고 계셨다. 그런데 너무 열중한 나머지 차가 오는 걸 보지 못해 사고를 당한다. 소식을 들은 아들은 괴로워한다. 그러다 이 모든 잘못은 어머니도, 운전자도, 본인도, 시청도 아닌 비둘기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아들은 화염방사기를 짊어 지고 시청으로 가 비둘기들을 전부 통구이로 만든다.>


교수님은 신성한 작문에 이런 장난을 친 것이 화가 나 학생과 일대일 면담을 했다. 하지만 정작 학생의 표정은 장난스럽지 않고 신성하기까지 한데...

"학생은..."

교수님은 생각이 많은 얼굴이었다. 어렵게 입을 뗀 그는

"화가 많네요..."

라는 말을 했다. 태양인이라는 소린가... 잠시 한의원에 온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사회에 불만이 많고... 그게 마음에 화로 남은 것 같아요. 글이 좀 경직되어 있기도 하고... 정신을 릴렉스 할 필요가 있어요. 글이나 일상에서 멀어져서 놀기도 하고...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아요."

수업 째면 F 주실 거면서 무슨 여행을 가라고 해요... 교수님은 사이코패스 진단을 내린 의사처럼 조금 거리를 둔 채 나를 독려해 주셨다. 나도 뭔가 환자가 된 기분으로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화가 많다니. 당시엔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중얼거렸다. 나는 주로 온순하고 쭈굴거리는 타입이어서 화가 많다는 소린 또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동시에 뜨끔하기도 했다. 내겐 분명 그런 구석이 있었다. 당시 쓰던 글들이 주로 '뭔가가 잘못되었다'거나 '부조리하다'거나 '이래선 안 된다'는 심각한 투였다는 걸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내 자아 중에 화가 많은 자아가 있고 그 친구는 평소엔 억눌려 있다가 글을 쓸 때 튀어나오는 것이었다.


좀 뜨끔했지만 나는 다시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하며 생각을 떨쳐냈다. 지금은 온순하면서도 과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그땐 상반되는 자아를 모두 갖고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나아 보이는 온순한 자아가 내 유일한 자아이길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자아는 억압할수록 글에서 드러나게 되었다. 그 작문 시간에 나는 굶어 죽길 바라던* 자아와 처음 조우했다.

(*최은영 <내게 무해한 사람> 인용)


회상 2. 자꾸 바뀌는 입장

'삼촌은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을 순간조차 블루지한 템포에 영혼을 맡긴 채 불행에 대한 체념도 외면도 아닌, 비비킹의 대표곡처럼 인생의 '스릴'을 생각하면서 그 시간을 통과할 줄 알았던 소년이었다고. -김금희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이런 문장을 읽으면 하늘을 봤다가 문장을 봤다가 다시 하늘을 봤다가 문장에 줄을 긋는다. 나는 삶에 대해 이러한 태도를 갖는 인물을 동경한다. 삶에 일어나는 불행한 사건에 대해 좌절하지 않고 허무주의에 빠지지도 않으면서 그저 '스릴'이라고 담담하게 여길 수 있는 태도. 내가 언제나 추구하지만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태도다.


이런 문장을 읽고 나면 나도 왠지 불행을 스릴 정도로 여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착각 상태에 있을 때는 걱정이 줄고 삶에 너그러워진다. 동동거리던 일에 대해서도 '미리 걱정해서 무엇할까!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는 입장이 된다. 이런 상태에서 글을 쓰면 글 역시 여유로운 내용으로 쓰인다.


하지만 문장의 약발은 길지 않아서 며칠 후면 다시 불행에 동동거리고 삶을 닦달하는 원래의 상태로 돌아온다. 그럼 그 때 쓰는 글은 지난번과는 완전 반대의 내용이 된다. 나는 너무 불행하고.. 고생하고... 못 살겠고 하는 내용이 되는 것이다. 그럼 나는 한 사람임에도 완전히 모순되는 글들의 주인이 된다. 아직까지 누가 이 글과 저 글이 너무 다르다며 컴플레인을 건 적은 없지만, 모순되는 글이 계속 쌓이는 것은 그렇게 유쾌한 일은 아니다. 들키지 않은 거짓말이 느는 기분과 비슷하다.


하지만 정과 반 사이에는 합이 있고, 내 입장 차이도 어느 지점에서 타협 비슷한 것을 볼 수 있었다. 방법은 어떤 입장에 있을 때든 '한 순간의 생각'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다. 그럼 조금 객관적인 글을 쓸 수 있다. 덜 일희일비 하고, 대신 왜 이런 마음이 드는지 들여다볼 여유가 생긴다. 알랭드 보통의 <불안>이라는 책에는 왜 사람들이 불안해 하는지에 대해 나와있다. 그 책을 본다고 요만큼이라도 덜 불안해지는 건 아니지만, 불안한 감정에 노예처럼 끌려 다니던 때와는 달리 '이러저러해서 불안하구나' 하는 감정에 대한 관찰과 분석이 가능해진다.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이 된다고 여겨도 좋다. 사는 데에도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된다.


그러니까 정리를 해보자면, 내 경험상, 좋은 자아와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을 가지면 괜찮은 글을 쓸 수 있다. 이 사실을 희미하게 깨닫고 나서는 좋은 글을 쓰려고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좋은 자아나 객관적인 태도 같은 건 너무 멀고 아득하기 때문이다. 조기축구 회원이 메시보다 못 찬다고 절망하지 않듯이 비슷한 이유로 나도 크게 낙담하지 않았다. 내 자아에 맞는 조금 찌질하고 구깃구깃한 글을 쓰게 되겠구나 하는 직감을 했을 뿐이다. 아무튼 찌질하고 구깃구깃한 글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이런 식의 포기는 고통스럽기보다 개운해서 님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전세로그 8.14

그림은 이상한 게 시작하기 전에는 막 예술혼을 불태우고 옘병을 하면서 그릴 것 같은데 막상 시작하고 나면 어떻게든 그럴싸해 보이게만 완성하고 빨랑 마무리하고 싶어 진다. 성격이 존나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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