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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떡씨 Aug 04. 2019

[글로그 22] 퇴사일기, 드디어 써봅니다.

똥맛 카레인 줄 알면서도 먹어야 하는 것이다. 혹은 카레맛 똥이든가.

 "범인은 관성이지"

대학생 때, 카페에 엉덩이라도 살짝 걸치면 연애 얘기를 조잘거리던 때, 남자친구랑 헤어지고 싶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고 보면 좋은데 없어도 못 살 것 같지는 않다는 얘기를 하던 때, 어른의 연애처럼 쌉쌀하고 중독적인 아메리카노가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그런 얘기를 하던 때. 내 얘기를 듣던 한 친구가 귀에서 나는 피를 닦으며 해준 말이다.


내가 남자친구를 사귀던 관성 때문에 헤어지고 싶어도 헤어지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그 때 처음 알았다. 사는 데에도 관성이 작용한다는 것을.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났다. 그 동안 몇 번의 관성을 끊기도 하고 끊지 못 하기도 하면서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관성도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생각하기를 멈추고 그저 묵묵히 뭔가를 해야 할 때 관성은 도움이 됐다. 당장 일을 지속할 에너지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을 때, 그럼에도 일을 해내야만 할 때 나는 관성에 의지했다. 어제도 이 일을 했고 그제도 했고 몇 달 전에도 했다는 이유가 내일도 이 일을 하는 이유가 돼주었다.


관성에 의해 구르던 물체는 땅과의 마찰력이라든지 공기 저항이라든지 중력이라든지 하는 힘에 의해 자연스럽게 구르기를 멈춘다. 혹은 벽에 부딪히거나 누군가 씨게 걷차버리는 '갑작스러운 사건'에 의해 멈추기도 한다. 내 관성이 멈춘 경우 후자였다. '갑작스러운 사건'에 의해 회사에서 우리 팀은 전원 퇴사를 했다. 나에게 이 사건은 잘 나가던 운동선수의 인대 파열 같은 느낌보다 뭘 처넣었는지 짜고 쓰고 매운 팬케이크 위에 재를 떨어뜨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이미 망한 것을 깔끔하게 망했다고 단정지어주는 사건이었다.


나는 몇 달 전부터 이 회사 생활이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망했다는 걸 느꼈다. 잘해보고자 하는 의욕이나 일에 대한 애정이 (특별히 어디에 쓴 기억도 없는데)모두 소진되었다. 그렇다고 툭 털고 회사를 나올 수 없었다. 그것이 내가 제 발로 구렁텅이를 찾아 들어가는 일이 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이 곤경에 처하는 것과 내 멍청한 선택으로 곤경에 처하는 것은 달랐다. 후자는 극심한 자책에 시달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짤길 바랐다. 퇴사 후 불행이 찾아와도 회사 탓을 할 수 있도록. 선택할 용기도 없고 적응도 못해서 하염없이 불평만 하던 세월이었다.


다시 팬케이크의 예를 들자면, 나는 들인 재료가 아깝기도 하고 다음에 만든 팬케이크가 더 맛있으리란 보장도 없어서 짜고 쓰고 매운 팬케이크를 그냥 먹고 있었던 것이다. '맛있다... 이연복 셰프의 손맛이 느껴진다..' 하고 세뇌를 하면서. 그러다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팬케이크에 재를 쏟은 것이다. 이제 이 팬케이크는 명명백백하게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되었다. 나는 짐짓 아쉬운 척하며 포크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사건'은 내 관성에 제동을 걸었고, 내가 퇴사할 수 있는 명분이 되었다.


나는 회사와의 관계가 연인 관계와 닮았다고 항상 느낀다. 퇴사를 하면서 이 생각에 더 강한 확신이 들었다. 남자친구와 헤어질 때 드는 생각과 퇴사를 하면서 드는 생각이 소름끼치게 닮았기 때문이다.

'이 남자보다 더 좋은 남자 만날 수 있다고 확신해?' '여기보다 좋은 회사 갈 거라고 확신해?'

'이 남자가 날 좋아해주긴 하잖아' '월급은 따박따박 나오잖아'

'계속 사귀면 마음 아플 필요 없을 텐데' '계속 다니면 고민할 필요 없을 텐데'

연인도 회사도, 설사 나중에 후회한다고 해도 지금은 한순간도 더 지속할 수 없다고 느낄 때 나는 모든 걸 그만두곤 했다. 이 '한순간도 더 지속할 수 없음'은 다분히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느낌이다. 좆 같은 기분이 꽉 차 이성적으로 재고 따질 여지도 없다. 알러지 반응처럼 몸이 거부한다. 퇴사하기 일주일 전부터 회사에만 가면 배가 아팠는데 이것도 일종의 거부반응이었던 것 같다. 덕분에 엄청나게 쾌변하긴 했다.


하지만 퇴사 후 쾌변처럼 상쾌하지만은 않았다. 나는 실제 처한 상황보다 더 많이 불안해 하는 편이어서 며칠 쉬는 동안 금새 조급해졌다. 이유는 대게 그렇듯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나는 어디에도 소속돼 있지 않다는 섬뜩한 자유에 익숙해지기 위해 아침에 눈을 뜨면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몇 가지 생각을 반복했다. '퇴직금으로 몇 달은 버틸 수 있다'든지 '아직 어리다'든지 '중고신입으로 들어가도 나쁘지 않다'든지. 그럼 '정말 그렇지. 너무 애쓰면서 살지 않아도 돼'하는 생각이 들면서 불안은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스스로를 속이는 것은 의외로 쉽다.


쉬는 동안 불안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토익학원이라도 등록하고 동분서주 회사를 알아봤냐 하면 그것 역시 아니다. '한 달은 놀아도 된다'는 실오라기 같은 명분을 붙잡고 불안에 떨며 밤새 넷플릭스를 봤다. 항상 완벽하게 놀지도 못 하고 완벽하게 열심이지도 않아 내 인생은 언제나 엉거주춤한 자세다.


기묘한 이야기 시즌 세 개를 해치우고 기묘한 기분이 되어 버린 새벽. 문득 '조직에 다시 들어갈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조직에 들어간다는 게 무엇인지 모를 때에는 입사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신입 때는 하루에 여덟 시간, 혹은 그 이상을 어딘가에 오롯이 헌납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니체는 인생의 3/4 이상을 원하지 않는 일에 보내는 사람을 '노예'라고 했다. 이제는 그 의미를 안다. 그런 마음으로 다시 구직을 해야 한다. 카레가 똥맛이 난다는 걸 알면서도 먹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혹은 카레맛 똥이던지.


장기가 아프기 전엔 장기의 존재를 감각하지 못하는 것처럼, 살아있다는 느낌 역시 훼손되기 전엔 갖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회사에 들어가고 나서야 내 시간에 대한 통제력이라든가 의견과 행동에 대한 자유가 내게 있었음을 알았다. 다시 조직에 들어가게 된다면 최대한 덜 훼손되는 곳으로 가고 싶은데 그런 것은 입사 전에는 알 수 없겠지.


+퇴사로그 8.4

퇴사한 날. 며칠 동안 요실금 걸린듯 비를 잘금잘금 흘리던 하늘이 우루루웅!! 하고 시원하게 비를 쏟아낸 금요일. 버스를 타고 동네를 지나가는데 재활용 독려 문구가 보였다. '재활용해!' 라는 명령문보다 '후손에게 물려줄 작은 실천?'이라는 의문문을 통해 무엇이 작은 실천인지 읽는이로 하여금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하는 현명한 카피였다. 답을 모르는 사람을 위해 작게 정답을 적어 놓는 센스도 있지 않았다. 궁서체 폰트를 통해 진지한 마음으로 권하는 것임을, 초록과 빨강의 혼용을 통해 크리스마스적인 훈훈한 느낌을 표현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존나 묘하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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