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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떡씨 Jul 19. 2021

근황

빵떡 팀장 1일 차

빵떡은 언젠가 '팀장이라는 직급은 '숨을 왜저렇게 쉬냐'는 이유만으로도 욕을 하고 싶'다고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시절 빵떡은 정말이지 그랬다. 팀장의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겠으나 아무튼 싫었고 그의 마음이 이해가 안 가는 바는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싫었고 '이해해보자, 받아들여보자'는 생각이 낄 틈도 없이 싫어서 그저 점점 멀어지고만 싶었다.


다행히 빵떡은 이직에 성공했고, 신입 시절의 기억은 어린 시절의 불우한 추억처럼 '그땐 그랬지'라며 희미하게 웃어 넘길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이직한 회사에서 빵떡은 벌써 2년 가까이 재직 중이다.


어느 날, (사건은 보통 의미심장한 '어느 날'과 함께 시작된다.) 대표가 회의실 11C로 빵떡을 불렀다. 회의실 11C는 그냥 회의실이 아니다. 빵떡의 회사는 15층인데 굳이 11층에 있는 회의실(빵떡의 회사는 공유오피스다)로 부른 것은 어떤 은밀한 이야기를 하겠다는 것이다. 빵떡은 긴장이 돼 약간 오줌이 마려운 기분이 들었다. 아랫배를 붙잡고 간 회의실 11C에는 빵떡의 매니저와 그 매니저의 매니저, 그리고 대표가 있었다.


셋을 본 빵떡의 중추신경은 그대로 백스텝을 밟아 다시 사무실로 올라가라고 아우성쳤다. 그 셋이 모여있다는 건 확실히 좋은 징조가 아니다. 무엇보다 그들의 눈이 밝게 빛나고 있음이 가장 두려웠다.


빵떡은 방광과 중추신경의 영향을 받지 않은 척 자연스럽게 회의실에 들어갔다. 사실 회의실에 들어간 후의 일 - 그들의 환상적인 빌드업과 몰아가기 - 에 대해 상세히 쓰고 싶었으나 빵떡에게 그때의 일은 마치 기억에 없는 듯 가물가물했다. 그저 대표의 한 마디에 불현듯 정신이 들었을 뿐이다.


"빵떡... 팀장해라."


그때부터였을까. 빵떡의 다리가 달달 떨리기 시작했다.

"제게 거절할 권리가 있나요..?"

"아니."

왜 그때 '팀장이라는 직급은 '숨을 왜저렇게 쉬냐'는 이유만으로도 욕을 하고 싶'다는 문장이 떠올랐을까. 쓴 지 2년도 더 된 문장이 하필 그때...


빵떡은 바로 그 팀장이 된 것이다. 진절머리쳐 마지않던 팀장이. 그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잘못된 선택을 하신 걸 수 있습니다." "저를 뭘 믿고!" "회사가 망할 지도 몰라요..." "지금 다 제게 속고 계신 겁니다!!" 빵떡은 방광과 중추신경과 눈물샘을 동원해 여러 방면으로 호소했으나, 모든 질문에 '잘 이해하지 못했어요'라고 답하는 기가지니 같은 답답한 반응만 돌아왔다.


대표는 이 상황이 그저 즐거운 듯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빵떡이 괴로운 기색을 보일 때마다 손뼉을 치며 '재미있는 직원일세'라는 듯 웃었다. 마조히스트인가.. 아니 본인의 고통을 즐기는 게 마조히스트인가. 아무튼 정상은 아니라고 빵떡은 생각했다. 정상이었다면 애초에 창업 같이 무시무시한 걸 하지 않았겠지...


빵떡은 억울했다. 팀장이 되면 무슨 일을 하는 지도 잘 몰라서 뭐가 싫다고 구체적으로 말할 수도 없었다. 4세 아이처럼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다며 찬 회의실 바닥에 누워 뿌에엥 뿌에에에엥 떼라도 쓰고 싶었다. 빵떡은 정말이지 더이상 진지해지고 싶지 않았다. 삶에서 지금 정도의 진지함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팀장이 되면 매사에 얼마나 더 진지해져야 하는 것인가. 하지만 회사는 그런 것은 알 바 아니었다.


직장 사기단.. 아니 직장 동료들에게서 풀려난 빵떡은 울화가 치밀어 다시금 다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빵떡은 사무실로 돌아가며 생각했다. '이제 팀원들은 내가 숨만 쉬어도 싫어할까?' 몇 년이 지난 지금에야 빵떡은 그 시절의 팀장님을 이해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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