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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떡씨 Aug 09. 2021

일 하지 않는 일

주말에 가장 적극적으로 한 일

일요일. 인스타그램의 탐색 탭을 세 시간 동안 들여다 봤다. 올림픽 관련된 각종 밈과 유튜브의 짧은 영상을 더 짧게 만든 짤이 끝없이 피드에 떴다. 인스타그램은 퍽치기처럼 뇌에 단타로 치고 빠지며 세 시간 정도는 우습게 빼돌렸다.


그쯤 되면 일깨움의 자아가 수줍게 고개를 든다. '이 씨발 또 SNS질이지.' 수줍은 것 치고 꽤나 터프한 자아다. 일깨움의 자아도 내성이 생겼는지, 처음엔 30분 만에 등장하더니, 이제는 세 시간 정도 지나야 등장한다.


나는 피로감과 부채감을 느끼며 핸드폰을 내려 놓았다. '난 몇 시간씩 SNS나 뒤적거리는 사람이 아니야..' '그럼 어떤 사람인데..?' 곧 드라마 주인공처럼 '나다운 게 뭔데?'라고 물을 것 같아 몸을 벌떡 일으켜 잡생각을 떨쳐냈다.


하지만 정말이지 나는 SNS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다. 유튜브를 몇 시간 동안 들여다보면서도 나는 줄곧 '재미 없네..' '볼 게 없네...' 하는 생각을 한다. 나는 할 일이 '없는' 주말이면 차라리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는 편이다. '그럼 왜 생판 모르는 사람이 짜파게티 10개 끓여 먹는 영상을 20분이나 봤는지 설명해보시지..'라는 날카로운 질문이 들려오는 듯하다. 답변하자면 오늘은 할 일이 '있는' 주말이었기 때문이다.


주중에 하지 못한 잔업이 남아있었고, 그걸 주말로 미뤘다. SNS를 뒤적거린 건 그 일을 최대한 유예하기 위함이었다. 운동처럼 생산적인 일을 하며 미룰 수는 없었을까? 그럴 수는 없다. 그런 본격적인 활동을 하려는 순간 '어? 너 지금 뭐해..? 일해야지! 운동이든 뭐든 일 끝내고 해야지!'라는 내면의 소리가 들려온다. 그럼 나의 몸뚱이는 '그렇지..? 그럼 운동은 일 끝내고 하고.. 유튜브 이거 딱 10분짜리 영상만 보고 일할게..'라고 응수한다. 그때부터 '이것만 보고..'의 매직이 시작되어 토요일 오전에 할 일을 일요일 저녁까지 미루게 된다. 경이롭고 한심하다.


누군가 주말에 뭐했냐고 물어보면 주로 아무것도 안 했다고 하지만, 나는 적극적으로 '일 안 하기'를 한 것이다. 적극적인 일 안 하기란, 1) 마음에 계속 '해야지...'라고 품고 있는다. 2) 일 안 하는 시간에 특별히 다른 일을 하진 않는다. 3) 스트레스는 스트레스 대로 받는다. 이 세 가지를 충족시키는 일이다.


모순적인 사실은 실제 할 일은 대단히 많거나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2~3시간 정도면 할 수 있는 일이고, 또 막상 노트북 켜고 일을 시작하면 나름 집중해서 한다. 그래서 일을 끝내고 나면 이 일을 하지 않기 위해 그토록 발악하며 미뤘던 것이 허무할 지경이다.


나도 회사 생활 초반에는 '후딱 끝내버리지 뭐'라는 생각으로 몇 시간 투자해 미리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주말을 즐겼다. 하지만 약 2년간 일 미루기는 내 생활에서 나도 모르게 야금야금 진행되었다. 그리고 최근 들어 정도가 급격히 심해졌다. 왜일까.


청소하기라든가 운동하기 같은 건 귀찮긴 하지만 '에이 해버리지 뭐' 하면 손쉽게 해내는 류의 일이다. 조금 미룬다고 해서 스트레스를 크게 많이 받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회사 일은 그렇지 않다. 이건 판도라의 상자다. 이걸 열면, 해결해야 할 문제와 예견된 스트레스, 부정적인 피드백, 자존감 하락 등이 튀어나올 거고, 난 그 사실을 잘 안다. 짧지 않은 회사 생활을 통해 내게 학습된 부정적인 경험이다.


정작 상자를 열고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면 크게 능력 밖의 일이 아님에도, 상자를 여는 것 차제가 하기 싫은 일이 되었다. 일하는 내모습을 상상만 해도 부정적인 감정이 떠오르면서 몸이 '아 모르겠고 일단 싫어, 무조건 싫어' 하는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긍정적인 경험이 더 많아야 그 일을 하고 싶게 되는 건데, 그런 조직생활은 7세에 유치원 졸업하며 같이 졸업했다.


자 원인을 알았고 이제 해결책이 나올 차례다. 그러나 내겐 해결책이 없다. 알았다면 오늘 세 시간씩 핸드폰을 쳐들여다보지 않았을 것이다. 계속 왼쪽으로 누워 있었더니 아직도 왼쪽 어깨가 아프다. 이 아픈 감각을 기억하며 스스로를 또 어르고 달랠 뿐이다. 저번주에도 후회했잖아... 이거 금방하고 놀면 훨씬 재밌어. 저번주에 글도 썼잖아, 기억 안 나? 일 딱 두 시간만 하자, 응?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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