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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떡씨 Oct 28. 2021

실망시켜드려 죄송합니다.

어느 연예인의 SNS를 본다.


'실망시켜드려 죄송합니다.'


많이 본 문장인데, 새삼 말맛이 낯설다.


실망시켜드려 죄송합니다... 실망시켜드린다는 건 뭘까. 실망은 본인이 하는 거지 누군가 시켜줄 수 있는 걸까. 예컨대 우리집 근처 카페에 잘생긴 아르바이트생이 일한다. 난 주말마다 그를 보러 카페에 간다. 그런데 어느날 그 알바생이 나오지 않았다. 난 실망한다. 그럼 실망의 원인은 그 알바생일까 나 자신일까.


얼핏 보면 알바생이 나오지 않아서 내가 실망한 것이니, 알바생이 나를 '실망시켜드렸다'고 보이지만, 애초에 알바생이 나올 거란 기대를 한 건 나다. 그 기대가 근본적인 원인이다. 누가 뭘 하든 실망의 원인은 나다.


그러니 그 연예인은 '실망시켜드려 죄송합니다' 보다는 '나는 마약을 한 질 나쁜 범법자입니다. 저와 상종하지 않는 게 당신 인생에 좋습니다.' 정도로 쓰는 게 낫지 않을까.


나는 왜 오늘따라 유난히 '실망시켜드려 죄송한' 사람들을 변호하고 나서는 것일까. 어떤 포인트에 유난히 신경이 쓰이거나 열불이 난다면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그 포인트에 뭔가가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내가 유난히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있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그러다 '아니, 누가 기대하래? 왜 지들이 맘대로 실망한 거에 내가 죄송해야 돼?' 하고 돌연 급발진해버린 것이다.


난 유난히 남들의 기대와 실망에 좌지우지되는 사람이다. 어느 날은 컨디션이 좋지 않아 PT를 빠지게 됐다. 가장 걱정된 건 내 운동 루틴이 깨지는 것도 아니었고, 살이 찌는 것도 아니었고, 날아가버린 PT 1회분 돈도 아니었다. PT 선생님이 내게 실망할까봐 걱정되었다.


가족도 아니고 연인도 아닌 PT 선생님조차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걸 깨닫자 마자 기분이 아득해져버렸다. PT 선생님의 실망까지 신경쓸 정도면 얼마나 주변 사람들의 실망을 신경쓰며 살아온 것일까.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착각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들이 실망하지 않는 바운더리 안에서 선택한 것일 거다. 많은 식당 중 남들이 '중국집이 아니라면 실망스러울 것 같아...'라고 말하면 난 그 안에서 간짜장 정도를 선택한 것이다.


난 격주로 본가에 내려간다. 나머지 격주엔 남자친구를 만난다. 한 번이라도 "아 이번 주는 나 혼자 있고 싶어"라고 한 적이 있을까. 없다. 격주의 루틴을 어기면 어느 한 쪽이(잘하면 두 쪽 다) 실망할 테니까. '이번주에 보는 줄 알았는데...'. 그 애정에 기반한 기대를 나는 져버릴 수가 없다.


남들을 실망시키며 살고 싶다. 그보다 남들의 실망에 신경쓰고 싶지 않다. 가까운 사람의 실망에도 신경쓰고 싶지 않다. 샌님처럼 살아온 나는 강한 반항심을 느낀다. 이번주 주말에라도 '혼자 있고 싶습니다. 찾지 말아주세요. 실망스러우셔도 하는 수 없네요.'라고 문 앞에 써붙일까. 내일 회사에 나가 '팀장 노릇은 조금 힘들게 되었습니다. 실망스러우셔도 하는 수 없네요.'라고 말할까.


아마 할 수 없을 것이다. '역시.. 난 어쩔 수 없이 그런 사람이지'. 나는 스스로에게 실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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