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서유기>부터 <섬총사>까지
강호동은 귀엽다. 큰 덩치와 약간의 폭력성에서 나오는 모순적인 귀염성이 있다. 사투리까지 써서 더 귀엽다. 요즘 넓은 닭벼슬 같은 머리를 빨강파랑으로 염색했다, 아이보리로 염색했다 하는데, 작은 미용실 의자에 꽉 끼어서 염색 받는 걸 생각하니 너무 귀엽다. 물론 강호동은 큰 의자에서 편히 염색을 받았지만 상상을 해보자면 그렇다는 뜻이다.
요즘 예능에도 많이 나온다. 내가 알고 있는 프로그램만 네 개다. 인기순으로 정렬해 보면 <아는형님>, <신서유기>, <한끼줍쇼>, <섬총사>다. <아는형님>과 <신서유기>가 20대에게 핫한 반면에 <한끼줍쇼>와 <섬총사>는 인터넷에서 그리 많이 회자되진 않는다. 물론 <한끼줍쇼>와 <섬총사>가 비교적 최근에 시작했고, <아는형님>이 처음에 얼마나 재미가 우웩이었는지 떠올려 보면, 초반에 노잼이라고 성장 가능성을 무시해선 안 되긴 하다. 하지만 <신서유기>처럼 처음부터 재미있을 수도 있는 거다. 나는 왜 이런 차이가 있을까 곰곰 생각해 보았다. 프로그램의 흥망이 한 명의 MC에 의해 좌우되진 않는다. 하지만 내 번뜩이는 생각으론, 강호동의 포지션이 프로그램의 재미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사실 강호동 자체는 어느 프로그램에서나 한결같다. 1.호통치기 2.감동짜내기 3.귀여운짓하기 4.주도권잡기를 쉬지 않고 번갈아가며 한다. <스타킹> 때 버릇을 아직도 못 버리고 에잉 쯔쯧. 하지만 각 프로그램에서 맡는 포지션에는 차이가 있다.
<아는형님>에선 소싯적 그랬듯 여전히 '통'이다. 하지만 바지사장 같은 느낌. 한참 어린 민경훈과 김희철에게 맥을 못춘다. 둘 다 진실로 위아래가 없는 건지 몰라도 민경훈은 강호동에게 날아차기도 하고 그런다. 호동이 아포... 서장훈도 '귀여운 척 하지 마요', '저 형 또 왜저래애'하며 행여나 강호동이 활개 치는 꼴을 못 보고 계속 쿠사리를 맥인다. <아는형님>에서 강호동을 보고 있자면 이빨 뿐 아니라 배알까지 빠진 호랑이를 보는 듯하다.
<신서유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여긴 김희철처럼 크게 미쳐서 강호동을 물어 뜯는 동생들은 없지만 그렇다고 강호동을 봐주지도 않는다. 안 웃기면 안 웃고 짜증나게 하면 짜증낸다. 작가 말에 따르면 막내 송민호가 강호동과 가장 캐미가 좋다고. 무조건 맞춰주는 막내보다 할 말 다 하는 막내가 강호동과 더 좋은 시너지를 낸다. 강호동은 게임에서도 약자에 가깝다. 동생들은 다 아는 플레이스테이션이나 스타크래프트, 오버워치 같은 건 하나도 모르고 마피아 게임은 거의 고자 수준으로 못 한다. 그것 때문에 계속 놀림 받는다.
<한끼줍쇼>에선 조금 다른 포지션이다. <한끼줍쇼>는 강호동, 이경규가 투톱으로 진행하고 게스트가 두 명씩 나온다. 게스트들이 주로 하는 일은 강호동에게 맞장구 쳐주기. 강호동이 지나가는 애들이나 외국인을 붙잡고 말도 안 되는 인터뷰를 해도 말릴 사람은 이경규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전개는 어쩐지 낯이 익다. 권력 관계에서 더 높은 선배 이경규가 후배 강호동을 지적 하는 건 옛날부터 너무 많이 봐왔다. <한끼줍쇼>의 권력은 아주 일정하게 이경규>강호동>>>>>게스트 순이다. 예능에서 회사의 수직구조를 보는 느낌.
<섬총사>는 사실 포지션보다도 보급형 <삼시세끼>라는 느낌이 더 큰 문제긴 하다. 강호동도 자신들을 <삼시세끼>의 바보 버전 <바보세끼>라고 말한 적이 있을 정도. <섬총사>는 고정 MC인 강호동, 김희선, 정용화와 게스트 한 명이 함께 나온다. 보고 있자면 가관인데, 모든 출연자들이 강호동의 진행에 따르고 강호동의 코드에 맞춰 웃는다. 그래서 언뜻 죽이 착착 맞아 보이지만 강호동 머리 속에 있는 식상한 시나리오 대로 흘러가는 것 뿐이다. 으쓱해진 호동이는 예능 그림을 만들겠다고 카메라 감독에게 찍어라, 빠져라 소리 지르며 소싯적 호통 개그를 소환해 낸다. 하지만 이제 강호동이 군림해서 호통 치고, 거기에 다른 사람들이 쩔쩔 매는 그림을 재미 있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건 강호동만 재미있다.
나의 명석한 분석을 종합해 보자면, 강호동의 캐릭터가 권력자의 모습에서 벗어날 때 프로그램이 좀 더 재미있어진다. 출연자 사이의 관계가 수평적이고 다양해야 강호동 본인과 다른 출연자들의 캐릭터가 더 풍성해진다. 캐릭터 끼리의 상호작용에서 생기는 예측 불가능한 재미도 더 많아진다. 그래서 강호동은 방송에서 자신을 막대하는 동생들에게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무튼 대통령이든 연예인이든 권위에서 탈피해야 하나보다.
호동이를 친구로 봐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