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빵떡씨 May 27. 2017

<윤식당> 윤여정인 이유

'음식도 못 하는 여자'가 식당 사장이 된 이유

부엌에서 홍차를 타고 있었다. 거실 tv에서 <윤식당> 시즌1 마지막 방송이 나왔다. 평소처럼 '연예인 놈들 돈 받고 휴양지 가서 호사로구나' 생각하며 티백을 담갔다 뺐다 담갔다 뺐다 했다. 와중에 윤여정이 호사를 증명하듯 스노클링을 하기 시작했다. 개헤엄 치듯이 얼굴을 물 위에 내놓고 팔다리를 휘적거리는데, 그 모습이 어딘가 이질적이었다. 뭐랄까 대하드라마에서 삼성 전자 에어컨 ppl 보는 듯한 기분.                                                  

우리집 거북이가 배부르면 저러던데

티백을 거의 사골처럼 우리며 곰곰 생각했다. 윤여정이 올해 일흔하나다. 내가 스노클링 하는 일흔한 살 여자를 본 적이 있나. 아니. 그래서 스노클링하는 윤여정이 신기해 보였다. 다른 일흔한 살들이 잘 하지 않는 것들도 윤여정에겐 자연스러웠다. 의자 놔두고 바닥에 쪼그려 앉기, 동그란 썬글라스 끼기, 짧은 반바지 입기, 영어공부 하기, 이서진이 시키는 대로 하기. 이대로 윤여정 피규어 시리즈 내도 되겠다. 윤여정은 일흔한 살 할머니의 선택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합니다. 젊어보이려고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자기 맘대로 하는데 그게 몹시 잘어울릴 뿐.

 '젊게 사는 노인들'은 미디어 소재로 종종 쓰인다. 그들은 주로 찢어진 청바지, 염색 머리(주로 브릿지), 스니커즈, 원색 티샤쓰 같이 본인이 생각하는 온갖 젊음의 상징을 두르고 있다. 그 상징도 현재가 아니라 세기말 즈음의 젊음의 상징이어서 되려 '나는 트렌드 업그레이드가 20세기에서 멈춘 노인이다!'라고 외치는 느낌. '~했삼?'같은 기묘한 유행어도 섞어 쓰면 금상첨화. 카메라 앞에서 "청춘은 60부터"같은 멘트 한 번 날리고 '마음만은 20대'라는 자막까지 달면 아침마당이나 생생정보통에 편집 없이 내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젊게 '사는' 노인이라 했지만 이런 영상에 젊은 태도나 가치관이랄 건 딱히 없다.

윤여정은 옷 잘입어 젊어 보이는 거 아니냐,는 말도 옳은 소리긴 한데 그 뿐만은 아니다. 윤여정은 정유미를 칭찬하면서 "쟤는 굉장히 침착한 애더라고", "그건 유미한테 배운 거야"라고 말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빌어먹을 장유유서 때문에 한 살이라도 어린 놈은 동급으로 안 쳐주는데 윤여정은 누구든 벗, 동행인, 협력자의 개념으로 대한다. 사람을 대할 때 이상과 이하가 없다. <꽃보다 누나> 찍을 때 남긴 "내가 처음 살아보는 거잖아, 나 67살 처음이야"라는 말은 어느 젊은이의 어록 사전에 등재될만 합니다.      

                                             

유미에게 얼굴을 배우고 싶습니다

윤여정이 영화 <인턴>에 나오는 할아버지 처럼 자상한 느낌은 아니다. 잘 늙은 노인은 KFC 할아버지처럼 닭도 고아주고 푸근하게 생겼을 것 같은데, 윤여정은 그렇진 않다. 날카롭고 직설적이다. 그래서 윤여정을 보면 잘 늙은 건지 잘 늙다 만 건지 아리까리합니다. 윤여정은 좋은 거든 나쁜 거든 자기 나이에 정해진 클리셰를 따르지 않는다. 그냥 윤여정 대로 산다.

윤여정 말대로 '음식도 못하는 여자'를 데려다 식당을 차린 의도가 여기 있지 않을까. 나영석은 KBS 출신이라 그런지 '화합' 같은 고리타분한 메시지를 좋아하는데, 윤여정처럼 나이에 매이지 않고 스스로에 충실해서 사는 캐릭터를 통해, 윗 것은 아랫 것을 가르치고 아랫 것은 윗 것에게 빌빌대는 진짜로 고리타분한 화합 말고, 휴먼 바이 휴먼으로의 화합을 보여주고자 한 게 아닐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