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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떡씨 Apr 23. 2022

2022년 4월 일기 모음

4/12

뭘 해도 마음이 충분하지가 않다. 충분히 즐겁지 않고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래서 돌아보면 어느 하나에도 충분히 몰입하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지금 딱 먹고 싶은 음식이 떠오르지 않아 빵이나 아이스크림을 주섬주섬 먹다가 입만 버릴 때처럼.


4/13

이별하는 순간을 생각하면 왜 나는 아주 무정한 사람이나, 반대로 아주 이해심 많은 사람으로밖에 상상이 되지 않을까. 위악이나 위선을 부리지 않고 그냥 나인 상태로 그 순간을 맞는 것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런 순간엔 뭔가를 뒤집어쓰고 싶어 진다. 그 순간을 지나기 좀 더 쉬운 무언가가 되려고 한다. 모든 순간에 자기 자신인 것은 너무 어렵다.


4/14

<금쪽 같은 내새끼> 보면서 느낀 점. 1) 인간은 유년기부터 청소년기까지 부모(나 가까운 지인)에게 받은 절대적인 사랑으로 거의 평생을 살아간다. 힘들 때 다시 일어서는 힘도, 비난에 휘둘리지 않는 힘도 다 여기서 나온다. 2) 기침은 현상이고 몸 안의 바이러스가 본질적인 원인인 것처럼, 사람의 잘못된 행동도 행동은 현상이고 본질적인 이유는 따로 있을 때가 많다. 보통 부모들은 현상만 바로 잡으려고 한다. 3) 본인의 기질이나 애착 유형을 알고, 가까운 사람에게 이를 알려주는 건 매우 중요하다. 법으로 정해야 한다.


4/15

내 삶에는 주요 이해관계자들이 있다. 부모, 연인, 친구. 이들 사이에 우선순위가 있긴 하지만 모두 소중하다. 그래서 나는 이들에게 내 시간과 에너지를 적절히 분배하려고 애쓴다. 그래서 나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별로 없는데, 나로서는 꽤 중요한 부분을 양보하는 것이다.


나의 이해관계자들은 그만큼 만족하고 있을까?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다. 그들은 모두 나의 무심함과 시간을 더 써주지 않음에 대해 입을 모아 서운해 한다. 그럼 나는 재능 없는 일을 붙잡고 노력하는 사람처럼 진이 빠진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명민한 나의 친구는 '너는 전제부터 글러먹었다. 이해관계자가 뭐냐. 그리고 무슨 일하는 것처럼 리소스 분배를 하고 앉아있냐. 그런 것들이 다 너의 지인들에게 느껴지는 거다. 책임감으로 시간을 떼어주고 있다는 게.'라고 말한다.


나는 평생토록 잘하지 못할 일임을 느꼈다.


4/16

아프면 세상을 느끼는 감각이 달라진다. 몸에 닿는 것들을 더 선명하고 날카롭게 느껴진다. 바람이나 몸에 전체적으로 내려앉는 그늘 같은 것들이.


해가 닿는 곳은 좀 더 몽롱하게 보인다. 취한 사람처럼 '아유 집인 줄 알았아여...' 하며 가지런히 신발을 벗고 양지바른 곳에 모로 눕고 싶어진다.


나도 세상도 느리고 무력한 느낌을 받으며, 인류의 평균 에너지가 이 정도라면 문명은 아직도 청동기 시대에 머무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4/17

상실했다는 감각은 무례하게 찾아온다. 목도리에 남은 냄새를 맡을 때, 점심에 먹은 덮밥이 맛있다는 얘기를 할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달을 때. 수신 동의한 기억이 없는 마케팅 메시지처럼 불쑥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어떤 말들은 거의 물리적으로 느껴질 것 같은 아픔을 준다.

"너도 예전엔 분명 나를 좋아했던 것 같은데..."


이런 문장이 주는 느낌은 어떤 계절이나 날씨에 잠시 커졌다가 시간이 지나면 작아진다는 걸 안다. 하지만 아직 시간이 충분히 지나지 않았고 나는 문장의 영향권 안에 있어서 가끔씩 하던 일을 멈춘다. 관계가 끝날 때마다 늘 나를 슬프게 하는 건 답하지 못한 마음이다.


다른 상실과 다르게 연인을 상실하는 것은 함께 할 미래의 상실이면서 함께 한 과거의 상실이기도 하다. 심야 영화를 보러 손 잡고 걸어 가던 길의 상실이고, 바닷가 가까운 숙소에서 함께 듣던 파도 소리의 상실이고, "하나도 안 웃긴데?" "웃기거든" 하며 어깨로 서로를 툭툭 밀던 어느 오후의 상실이다. 그게 지독히 싫어서 이렇게 오래 걸린 것일까. 나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을 발라낼 수 없어서 그냥 통째로 잃어야 하는 몇 년. 그 후엔 더듬거리며 상실의 모양을 추측하느라 밤이 가고 낮이 가는 하루하루.


4/18

한껏 루즈해진 스스로가 꼴보기 싫을 때 읽으면 좋은, 임경선 작가의 <태도에 관하여>


- 의미? 그런 건 원래 없다. 세상의 모든 의미는 내가 직접 만들어가는 것이다.

- 일이 내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탓하기 전에 내가 먼저 일의 가능성에 기회를 줄 생각을 해보면 안 되는 것일까.

- 영감이 떠오르든 말든 일단 정해진 시간에 책상에 앉는 사람만이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 결국 열심히 한 것들만이 끝까지 남는다.


나는 성실한 사람이지만 한계까지 스스로를 밀어붙이는 사람은 아니다. 꼭 하얗게 불태워야 하는 건 아니지만, 애매하게 열심히 하면 보람도 배움도 애매하게 반절 정도만 얻는 느낌이다.


늘 '이게 다 무슨 의미야...' '이 일을 한다고 즐거울까, 나랑 잘 맞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열심히 하기 싫어서 이런 생각으로 합리화한 걸 지도) 주춤주춤 내뺄 각을 잡는다. 그러느라 일에도 사람에게도 충분한 기회를 주지 않은 게 아닐까.


4/21

고등학생 때 논술 수업을 들었다. 학교 재량활동 같은 거였다. 외부에서 초빙한 논술 선생님이 오셨는데 3시간 수업에 1시간은 자기 자랑을 하던 분이셨다. 그래도 나는 제대로 된 글쓰기 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그 수업이 좋았다. (나머지 두 시간 동안 해주신 수업 내용이 좋기도 했다.)


선생님의 자랑 중에는 학원 한 번 안 다니고 카이스트에 간 딸 자랑이 3할 정도였다. 선생님은 딸에게 늘 한 가지 당부를 한다고 하셨다. "이기적으로 살아라."


그러니까 진짜로 본인에게 이득이 되는 게 뭔지 생각하며 살라는 뜻이었다. 남들은 안 챙기고 반칙하면서 살면 당장은 득이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아무도 내게 도움을 주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내게 진짜 이득이 되는 일이 아니다. "이기적으로 (하지만 현명하게 판단해서) 살아라."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에 가끔 선생님의 그 말이 떠오른다. 무엇이 나에게 득이 되고 무엇이 해가 될까. 쉬운 결정이 아니라, 회피하는 결정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진짜 날 위한 결정은 뭘까. 때로는 그게 뭔지 모르고, 때로는 알면서도 하지 못한다.


4/22

에세이보다는 소설이 좋다. 에세이는 무슨 얘기로 시작하건 '그래서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로 끝나지만, 소설은 '그래서 그랬다고 합니다. 그냥 그랬다고요.' 정도로 끝난다. 그냥 그렇게 돼버렸다는 이야기는 위로가 된다.


4/23

코로나 확진으로 격리 6일 째다. 며칠 단절되어 지내다 보니 인생에 대해 약간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정확히 설명하기 어렵지만, 이제까지 내가 세상에 끼어서 세상이 굴러가는 데 일조한다고 생각했던 게 모두 착각 같은 느낌이다. 격리된 사람들 모두 이와 비슷한 기분을 느꼈을까. 그 후에도 다시 씩씩하게 세상에 합류해 살아가는 모두가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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