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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떡씨 May 14. 2022

2022년 4월과 5월 사이 일기 모음

4/24

"그러면 지금 슬픔이 투명도 50 정도로 깔려 있겠네"

그렇다. 정말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뭘 해도 습자지가 하나 깔린 것처럼 축축하고 답답하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크게 내쉬어야만 호흡할 수 있을 것 같다. 절대로 다시 행복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과장된 우울감을 느끼고, 나는 '너무 심하게 비약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4/25

빵집을 마감한다고 하면, '오늘도 꽤 많이 팔았군. 보람 있었어. 새로 출시한 딸기 파이가 반응이 좋아. 근데 통밀빵은 요즘 잘 안 팔리는군' 같은 생각을 하며 빵 부스러기를 청소하고, 내일의 빵을 위한 반죽을 준비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하루는 빵집이 아니어서인지 마감하기가 힘들다. 오늘 보낸 시간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무슨 의미였는지 모르겠어서 편안히 잠들지 못한다. 유튜브를 켰다가 껐다가 인스타를 켰다가 껐다가 하며 잠드는 시간을 미룬다. 그러다 지쳐 곯아떨어지는 방법 말고는 잠드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처럼. 눈을 감고 누워 하루를 내 손으로 마무리하고 보내주는 법을 모르게 되었다.


4/26

모르겠다는 말이 좋다. 모르겠다는 말이 있는 이유는 모르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다 알 수는 없다. 그러니 모르겠다는 말을 적절히 써먹자.


4/29

퇴사를 결심했을 때 중요했던 건 내가 내 인생을 망하게 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었다. 갖고 있는 걸 놓기 위해서는 용기가, 용기를 얻는 데는 확신이 필요했다. 아이유의 <분홍신> 가사처럼 내 운명을 고른다면 눈을 감고 걸어도 맞는 길을 고를 거라는 확신.


인생을 사는 태도에는 두 가지가 있다. 더 불행해지지 않으려는 태도, 더 행복해지려는 태도. 전자의 태도는 방어적이고 후자의 태도는 공격적이다. 방어적인 사람은 본인의 선택이 지금 갖고 있는 것을 상실하는 선택일까봐 걱정한다. 공격적인 사람은 본인의 선택이 지금보다 더 나아지는 선택인지에 초점을 맞춘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말은 인생에도 적용되는 것이어서, 방어만으로는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게다가 우린 늙어갈 것이니 가만히만 있어도 시력, 청력, 근력 등 모든 면에서 나빠질 것이다. 그래서 사실 인생에는 한 가지 선택지밖에 없는 게 아닐까. 확신을 갖고 공격하는 것.


4/30

내가 '미용실 1시간 전 효과'라고 이름 붙인 게 있다. 머리를 하려고 미용실을 예약하면 갑자기 지금 머리 스타일이 꽤 괜찮아서 미용실에 갈 필요가 없을 것처럼 느껴지는 효과를 말한다. '어, 이 정도면 안 잘라도 되겠는데? 괜히 예약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 효과는 모든 의사결정 상황에 적용된다. 헤어지려고 하면 '그래도 꽤 잘 맞는 구석이 있었는데' 싶고, 퇴사하려고 하면 '그래도 그렇게 나쁜 회사는 아니었는데' 싶은 것이다. 실제로 이런 생각 때문에 막판에 마음을 바꾼 적도 있다. 하지만 경험상 막판에 든 생각보다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내린 결정이 더 신뢰할 만하다.


미용실 1시간 전 효과는 이득보다 상실을 더 크게 느끼는 인간의 본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결정이든 얻는 것과 잃는 것이 있는데 결정하는 순간이 되면 갑자기 상실하는 것들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런 효과 때문에 결단을 내리기는 어려워진다. 하지만 짧은 순간 용기를 내면 장기적으로 편안하고 홀가분다.


5/1

인생은 중력 그리고 죽고 싶은 마음과의 싸움이 아닐까. 인간은 질 것을 알면서도 지기 직전까지 싸워야 한다. 싸우는 방법은 다른 곳으로 정신을 돌리는 것이다. 무엇이든 자꾸 하면서 몸을 움직이면서. 그렇지 않으면 심연의 구덩이를 흘긋거리게 된다. 고층 건물의 옥상에서 발 밑을 내려다볼 때처럼 펄쩍 뛰어내리고 싶어진다.


인생이 정말 그뿐인가? 하고 묻는다면, 뭐 잘 모르겠다.


5/2

5월에 두 가지 이별을 하며 나에 대해 느낀 점


첫 번째,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미움 받지 않으려고 한다. 마지막이니 더욱 좋은 인상으로 남고 싶어 한다. 진짜로 힘들었던 점, 진짜로 마음에 안 들었던 점이 아니라 적당히 다른 이유를 대려고 한다. 이런 욕망을 누르고 솔직하게 이별의 이유를 말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렇게 어물쩍 헤어지면 왠지 똥 덜 닦은 기분이 된다. 그래서 이번엔 좋게좋게 마무리하는 것보다 시간을 들여 진실을 얘기하는 편을 택했다. 이런 과정을 겪어야만 이별이 나에게 의미있어진다는 것을 느꼈다. 이별 후에 조금이라도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두 번째, 내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친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대학생 때 <결혼과 가족> 수업에서 애착 유형 테스트라는 걸 했다. 이 테스트는 타인과 관계 맺는 방식이 어떤지에 대한 테스트다. 나는 네 가지 타입 중 '자기 긍정-타인 부정(거부적 회피형)'이 나왔다.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성향이다. 테스트를 했을 때만 해도 '내가 그런가?'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그런데 이번에 회사와도 애인과도 이별하면서 내가 극심한 거부적 회피형인 것을 느꼈다. 거부적 회피형 사람이 많이 하는 생각은 '이걸 다른 사람한테 얘기한다고 뾰족한 해결책이 있겠어? 그냥 혼자 고민하는 게 나아'이다. 그래서 내색 않고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하고 통보한다. 다른 사람에게까지 고민을 전가하지 않는 나름의 배려라고 생각하지만, 통보받는 입장에서는 사실상 배려가 아니다.


퇴사 면담 자리에서 대표님은 "왜 문제가 아니라 솔루션을 가져왔어"라고 말했다. 퇴사는 솔루션이고, 그 전에 뭐가 문제인지부터 가져왔어야 한다는 얘기다. 나는 문제를 누군가와 공유하고 함께 해결하고 싶지 않았다. 혼자 처리하는 게 편했다. 그러느라 함께 고민했다면 발견했을지도 모르는 더 나은 선택지들을 놓쳤다. 주변 사람들이 당혹감과 무기력함을 느끼게 했다. 나는 인생 전반의 중요한 문제들을 늘 이런 식으로 처리해왔다는 걸 깨달았다. 같은 결론에 도달하더라도 그 과정이 달랐다면 나중에 후회가 덜 남았을 텐데. 나는 나의 단점을 실감했다.


누구도 스스로에 대한 이런 정보값을 알고 태어나진 않는다. 누군가와의 상호작용과 혼자 조용히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5/4

나는 목표가 있어보기도 하고 없어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느낀 점은 목표의 내용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세상을 바꾸고 싶든 환경을 보존하고 싶든 돈을 많이 벌고 싶든 상관없다. 그 목표 때문에 내가 더 살 만해지냐 아니냐가 중요하다. 목표가 있어서 아침에 더 잘 일어날 수 있고, 하루를 더 명랑하게 보낼 수 있고, 밤에 좀 더 편안히 잠들 수 있고, 삶이 더 의미있게 느껴지는지가 중요하다.


그런 목표는 '정한다'기보다 '찾는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내가 '이걸 할 거야'라고 정해도 그 목표를 이루는 과정이 고통스럽고 오히려 삶을 괴롭게 할 수 있다. 나를 괴롭게 하지 않고 내 동력이 되어주는 목표를 찾는 것은 어쩌면 내 의사와는 상관이 없다. 내가 '난 새우 알레르기를 가질 거야'라고 다짐한다고 새우 알레르기가 생기는 게 아닌 것처럼. 먹었을 때 몸에 반응이 나타나야 알레르기가 있다는 걸 알게 되듯이, 내게 맞는 목표도 그런 식으로 발견하는 것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삶의 목표는 정신적이기보다 육체적이다. 오로지 겪어봐야만 알게 된다는 점에서 노동집약적이다. 60살까지도 계속 찾아야 할지 모른다는 점에서 장기적이기도 하다.


5/5

퇴사를 하면 검소해져야 한다. 그동안 흥청망청 구독하던 서비스들을 정리했다. 왓챠.. 안녕... 넷플릭스... 안녕.. 유튜브 프리미엄... 안녕... 멜론 하나만 남기고 다 해지했다. 그래도 노래는 들어야 할 것 같아서.


시간이나 비용, 에너지 같은 리소스가 확 줄면 좋은 점은 진짜 내게 남기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알게 된다는 것이다.


5/6

퇴사를 결정하기 전 약 한 달 동안 마음 속에 뭔가가 없던 날이 없었다. 늘 어떤 무게감을 가진 무언가가 있었다. 때로는 조금 가벼워지기도 하고 때로는 숨 쉬기 어려울 만큼 무거워지기도 했다. 나는 그것을 지니고 살 수 있을 정도로 가볍게 만드는 것에 실패했다.


5/7

내겐 일기를 쓰는 공책과 필사를 하는 공책이 있다. 이런 용도의 공책은 보통 예쁘고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서 쓸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집에 굴러다니는 거 아무거나 하나 펼쳐서 쓰기 시작한다. 그럼 그 공책은 아무 공책이었다가 소중한 내용을 채우고, 매일 저녁 열어보면서 나만의 공책, 보면 설레는 공책이 된다.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이런 식으로 특별하게 만드는 걸 좋아한다.


5/8

문득, 아무 개연성도 없이 '독일 갔을 때, 교수형 집행하던 터를 구경했었는데' 하는 기억이 났다. 사실 그곳은 별로 유명하지도 않고, 을씨년스러워서 '별 거 없네'라고 생각하며 감흥 없이 지나친 여행지였다. 사진조차 찍지 않아 그곳에 간 기억은 거의 희미했다. 근데 이렇게 불현듯 생각나다니.


당시에는 별 볼일 없다고 생각했는데 왠지 기억나니 반가웠다. 겨울 코트에서 찾은 만 원짜리처럼 귀하고 기분 좋았다. '베를린 장벽을 봤었지', '박물관 섬을 구경했지' 하는 대표적인 기억들 틈에 구겨져 있던 기억. 나는 그 기억을 머리에서 한참 이리저리 굴리며 놀았다. '거기에 왜 갔었지... 누구랑 갔더라... 날씨가 어땠지... 뉘른베르크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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