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인생에 사람이 한 명 들어오면 그 사람만 오는 게 아니다. 그 갑절로 뭔가가 붙는다. 나는 이 생각을 할 때마다 365mc 광고의 지방이를 상상한다. 지방이처럼 인생에 뭔가가 덕지덕지 붙는 상상. 누군가를 인생에 들인다는 건 이런 무게감을 감당한다는 뜻이지만, 실제로 경험하기 전에는 어느 정도의 무게감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예상보다 훨씬 무거워 한 발짝도 떼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나는 그런 상상을 하면 아득히 숨이 막힌다. 그렇게 될 것을 늘 경계한다. 그래서 가벼워지기도 했으나 외로워지기도 했다.
6/2
오랜만에 <일종의 고백>을 들었다. 엄청 좋다는 생각을 했는데, 어떤 점이 엄청 좋은가 하면, 가사가 20대의 마음 그 자체인 것처럼 느껴졌다.
'사랑은 언제나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또 마음은 말처럼 늘 쉽지 않았던 시절
나는 가끔씩 이를테면 계절 같은 것에 취해
나를 속이며 순간의 진심 같은 말로
사랑한다고 널 사랑한다고 나는 너를
또 어떤 날에는 누구라도 상관 없으니
나를 좀 안아줬으면
다 사라져 버릴 말이라도
사랑한다고 날 사랑한다고
서로 다른 마음은 어디로든 다시 흘러 갈 테니'
6/3
이렇게 있다 보면 죽고 싶은 마음과 죽기 싫은 마음이 왔다갔다 한다. 죽는 것은 내 소관이 아니지만, 그래서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종종 죽기 싫다는 생각이 집착적으로 들 때가 있다. 영원히 존재하면서 세상의 아름다움과 괴로움을 전부 목격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럴 때면 자려고 누웠다가 심장이 두근거려 일어나 앉는다. 왜 가끔 그렇게 집착적인 마음이 들까 생각해봤는데, 아마 정이 들어서 그런 게 아닐까. 세상과 이 세상 속 나에게 미운 정, 고운 정이 너무 들어서 떠난다고 생각하면 눈물부터 나는 것이다. 졸업식 때 학교에 남고 싶어서 눈물이 나는 게 아니라 그저 정이 들어서 눈물이 나는 것처럼. 역시 정이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6/4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과정에 대해 들었다. 애벌레는 번데기 안에서 몸통에 날개가 돋고 다리가 생기는 식으로 나비가 되는 게 아니라고 한다. 애벌레는 번데기 안에 들어가면 하나의 세포만 남기고 다 녹아 없어진다. 애벌레 액체 스프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비라는 생물은 하나의 세포에서부터 아예 새로 만들어진다. 과거의 나를 완전히 죽이고 나서야 새로운 성충이 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만이 새로운 무언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6/5
나는 짠 하고 어떤 일이 벌어지길 기대하고 있다. 갑자기 새로운 인생이 뚝 떨어지길 바라고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기적이여 일어나라...' 하는 생각을 한다. 동시에 스스로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원래 알면서 안 하는 게 더 나쁘다고 했다. 탄식처럼 "나는 글러먹었어..."라는 말이 나왔다. 효석이 옆에서 쿠키런을 하다가 자동반사처럼 "나는 애저녁에 글러먹었음"이라고 했다. 나는 내가 왜 글러먹었다고 생각하는지 설명했다. 그걸 들은 효석이 말했다.
"너는 이제서 그런 생각 하냐? 난 맨날 해. 어떤 사건이 터져서 날 구원해 주기를 맨날 바래. 그래서 복권 사잖아."
"음... 너도 참 글러먹었다... 근데 내가 더 글러먹은 건, 나는 글러먹었지만 안 글러먹은 척 한다는 거야. 뭔가 있는 척, 제대로인 척. 너는 누가봐도 글러먹었잖아."
"기분이 썩 좋진 않네."
"엄마, 아빠는 우리를 잘 키워주셨는데 우린 왜 이렇게 됐을까."
"인간적으로 부모님은 건드리지 말자."
"...그래."
6/6
이야기가 좋은 이유는 현실이 아니어서다. 현실은 놀랄 만큼 아무 의미도 없다. 하지만 이야기에는 의미와 재미, 감동이 다 있다. 현실에선 빅나티의 노래 가사처럼 이길 수도 질 수도 없는 그렇고 그런 내일이 시작될 뿐이다.
6/7
시간이 많아서 좋아하는 것들을 다시 보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봤다. 말할 때마다 제목을 더듬거려서 진짜 좋아하는 게 맞냐는 얘기를 듣지만 진짜 좋아한다. 나의 강력한 추천으로 친구들과 같이 이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다들 이게 왜 좋냐고 의아해했다. 이 영화의 모든 장면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당황스러운 반응이어서 왜 좋은지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이번에 다시 보면서 '이래서 좋아하지' 싶었던 부분을 적어보았다.
- 츠네오가 조제 집에서 밥 먹는 장면
- 조제가 <신기한 구름>을 낭독하는 장면. 조제와 츠네오의 관계가 어떻게 될 것인지 암시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신기한 구름>은 실제 사강의 작품이다. 이 영화를 보고 사강 소설을 많이 읽었다.
'언젠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 거야. 베르나르는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다시 고독해지고. 모든 게 다 그래. 그냥 흘러간 1년의 세월이 있을 뿐이지.'
- 츠네오가 조제의 유모차를 끌고 달리다가 언덕에서 구르는 장면. 조제가 '저 구름도 집에 가져가고 싶어'라고 말할 때 나오는 bgm이 좋다.
- 조제와 코지의 관계
- 서퍼 두 명이 조제와 츠네오의 사진을 찍어주는 장면
- 츠네오의 동생이 츠네오와 통화하면서 "형, 자신이 없어진 거야?"라고 웃으며 말하는 장면. 옛날에 봤을 땐 "형, 지쳤어?"라고 번역이 됐었다. 나는 옛날 번역이 더 좋다. 조제와의 관계에 서서히 지쳐가는 츠네오의 상태를 가볍게, 하지만 콕 집어서 말해주는 장면이다.
- 물고기 모텔에서 조제의 대사.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눈 감아봐. 뭐가 보여?"
"그냥 깜깜하기만 해."
"거기가 옛날에 내가 살던 곳이야."
"어딘데?"
"깊고 깊은 바다 속. 난 거기서 헤엄쳐 나왔어."
"왜?"
"너랑 세상에서 가장 야한 섹스를 하려고."
"그랬구나. 조제는 해저에서 살았구나."
"그곳은 빛도 소리도 없고 바람도 안 불고 비도 안 와. 정적만이 있을 뿐이지."
"외로웠겠다."
"별로 외롭지도 않아.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냥... 천천히 천천히 시간이 흐를 뿐이지. 난 두 번 다시 거기로 돌아가진 못할 거야. 언젠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난 길 잃은 조개 껍질처럼 혼자 깊은 해저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겠지. 그것도... 그런대로 나쁘지 않아."
- 조제가 이별 선물로 츠네오에게 <SM king> 잡지를 주는 장면
- 이별 후 조제가 생선을 굽는 뒷모습
영화 내내 '우리는 헤어지고 흘러간 시간만 남겠지만, 그것도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아'라는 정서가 깔려 있다. 어떤 위로는 참 슬프다. 어떤 슬픔은 참 위로가 된다.
6/10
후각은 대단하다. 방금 옆자리 여자에게서 나는 향을 맡고 초등학생 때 다니던 미술학원을 떠올렸다. 미술 선생님에게서도 비슷한 향이 났던 것 같다.
6/13
미운 사람은 그냥 사랑해버리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 얘기엔 공감이 되지 않았지만,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이라고 생각해보라는 말에는 어느 정도 수긍이 됐다. 영화 주인공의 행동 뒤엔 뭔가 사연이 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 기사의 주인공보다 소설이나 영화 속 주인공을 쉽게 미워할 수 없는 이유가 그 때문인 것 같다. 그 사람에 대해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다는 걸 늘 전제하면 어떤 행동도 그렇게 밉지 않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좆 같이 구는 인간에겐 그런 전제를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들었다.
6/16
지속성에 대해 생각한다. 깊어지고 짙어지려면 지속하는 기간이 필요한데, 일이나 관계를 어떻게 지속할 수 있을까. 전엔 재능에 관해 생각했다. 어떤 일에 내가 재능을 가졌는가. 하지만 지금은 재능이 허상에 가깝다고 느낀다. 가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라지고, 지속성 없이는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그래서 재능보다는 지속성을 원하는 편이 훨씬 현실적이다.
일 혹은 관계를 지속하려면 안 좋은 상황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해나갈 동력이 필요하다. 좋은 상황에선 뭐든 지속할 수 있다. 적절한 대우를 받고, 사람들이 날 인정해주고, 성장한다고 느끼고, 좋은 사람과 함께 하고, 적절히 통제 가능한 문제들이 주어지고... 그럼 뭐든 계속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충족되는 상황은 거의 없다. 늘 무언가 어긋난다. 그럴 때도 내가 지속해 나갈 수 있는 일은 뭘까, 놓지 않을 사람은 누굴까. 나는 이에 대해 힌트를 찾을 수 있을까.
6/18
종종 그림을 그린다. 지금은 취미 정도지만, 10대 때 그림은 내게 중요한 소재였다.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중학생 때까지 미술학원에 다녔다. 화가나 디자이너, 미술 선생님, 큐레이터처럼 그림과 관련된 뭔가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고등학생 때 공부에 전념하겠다는 명목으로 학원을 그만 두고, 미술과 상관 없는 전공을 택하면서 점점 그림에서 멀어졌다. 생각해보면 절실하게 그림을 그리고 싶은 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냥 그림으로 정했으니 열심히 했던 것 같다.
그림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학원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종종 선생님이 도와주셨다. 명암은 이렇게 넣는 거야, 구도는 이렇게 잡는 거야 라고 설명하면서 내 그림을 고쳐주셨다. 그럼 아 그렇구나 하고 이어서 그리면 되는데, 나는 무슨 고약한 심보인지 내 그림에 손 대는 게 짜증이 났다. 그래서 선생님이 그린 부분을 싹 지우고 내가 다시 그렸다. 그것 때문에 선생님한테 몇 번 혼난 기억이 난다. 스스로 고집이 없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또 이런 일화를 생각하면 아주 없는 건 아닌가보다.
6/20
조직에 최선을 다하는 것과 매몰되는 것은 다르다. 내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그 역할이나 조직에 매몰되면 안 된다. 매몰된다는 건 조직에서 주는 인정, 조직에서 나의 위치, 조직 내 사람들과의 관계 등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해서 조직이 내 세상의 전부가 되는 것이다. 그럼 조직에서 인정 받을 땐 한없이 좋았다가 그렇지 않을 땐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진다. 내가 소속된 조직이 작고 제한적인 집단임을 인지해야 한다. 워라밸과는 다른 얘기지만, 아예 상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조직에서 분리되는 시간이 있어야 한 발 떨어져서 볼 수 있으니까.
6/23
주짓수를 배운지 3주 째다. 배운 게 있다면, 주짓수는 본능적으로 움직이면 당하기 쉽다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잡혔다고 목을 조르면 도리어 내 팔을 꺾일 수 있고, 오른발이 앞에 있다고 오른발 먼저 움직이면 원하는 만큼 멀리 못 가게 된다. 그래서 본능을 따르지 말고 배운 걸 생각하며 움직여야 한다. 살다 보면 주짓수처럼 움직여야 할 때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6/25
연애 하고 싶다... 아니 하기 싫다... 누군가와 지독히 얽히고 싶다... 아니 누구와도 엮이기 싫다... 사랑이 충만하고 싶다... 하지만 번거롭긴 싫다... 남자랑 뒹굴고 싶다... 아니 인간과 부대끼고 싶지 않다... 나는 욕망과 귀찮음의 굴레 속에서 고요히 몸부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