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소설을 읽었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 오랜만에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기분이다. 초장부터 '이 책은 희망에 대한 책입니다'라고 선언하는 건 책에 실례겠지만, 이 책이라면 희망의 실추된 명예(?)를 회복시킬 수 있을 것 같아 실례를 무릅쓰고 선언해보았다. 언젠가부터 희망은 철 지난 유행어처럼 아무도 입밖에 꺼내지 않게 되었다. 나 역시 불운한 누군가를 놀릴 때나 "희망을 가져!"라고 했지, 진심으로 그 뜻에 공감한 지는 오래되었다. 하지만 이 300페이지의 희망을 읽으면서는 거부감이나 비아냥거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김연수는 이 책을 통해 왜 희망을 가져야 하는지, 그 희망은 어떤 모습인지 이야기해준다. 친절하고 끈기있고 납득할 만하게.
<이토록 평범한 미래>는 단편 소설집이다. 여덟 권의 단편을 엮었다. 단편들이 모두 하나의 달을 향하고 있다. 그 달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책은 '미래를 기억하는 일'에 대해 반복적으로 말한다. '"과거는 자신이 이미 겪은 일이기 때문에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데, 미래는 가능성으로만 존재할 뿐이라 조금도 상상할 수 없다는 것. 그런 생각에 인간의 비극이 깃들지요.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오히려 미래입니다."' 우리가 지금 하는 생각, 내리는 결정은 과거에 기반한다. 과거가 원인이고 현재가 결과가 되는 인과관계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책에서는 거기서 비극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오히려 현재가 가져올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살아 있는다면 누리게 될 아주 평범한 미래.
책에는 가족에게 버림받고, 병으로 자식이 죽고, 친척들이 엄마를 정신병자로 모는 등 '죽을 이유가 되는' 과거를 가진 사람들이 나온다. 그들은 과거를 명백히 겪었기 때문에 과거를 기억한다. 그래서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고 죽고자 하고 죽이고자 한다. 하지만 그들이 미래를 기억한다면 어떨까. 살아있어도 늘 행복하지만은 않겠지만 늘 불행하지도 않을 것이다. 어느 날은 평온하게 지나갈 것이고 어느 날은 날씨가 좋을 것이고 어느 날은 꽤 많이 웃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햇볕이 따뜻하고 바람이 부는 어느 날에는 살아있어서 좋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이런 평범한 미래를 기억한다면 그들의 선택은 달라질 수 있다.
책 사이에는 김연수의 글씨체로 인쇄된 편지가 끼워져 있다. '달을 바라볼 때마다 지금 걷는 사람을 생각합니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달까지 걸어갈 수는 없겠지만, 달까지 걸어가는 사람인 양 걸어갈 수는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달까지 걸어가는 사람인 양 걷는 사람의 발은 달에 닿아 있습니다. 멈추지 마시길, 계속 걸어가시길.' 삶이 시작과 끝으로 이루어져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나 과정으로 살다가 과정으로 죽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도착지를 정하는 게 아니라 방향을 정하는 것이다. 사는 동안 어느 방향으로 걸을 것인지. 그리고 그 방향은 늘 평범한 미래를 향해야 한다.
책의 마지막 해설 부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은정은 인생에 KO패를 당한 이후에도 그다음이 있음을 알게 된다. 삶에 완전히 패배했다는 것은 더이상 살아갈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제 다른 방향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다른 방향으로 살 수 있음을 믿는 것, 지치지 않고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기억하는 것, 그걸 희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김연수는 '어떤 이야기를 쓸까', '어떤 말을 할까' 고민하다가 소설의 역할을 생각했던 것 같다. '소설이 할 수 있는 역할을 해보자', 그렇게 생각한 것 같다. '이 순간을 살라'는 말이 격언처럼 통하는 시대다. 하만 그러기엔 이 순간이 지옥인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겐 차라리 미래를 위해 살라는 말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 모든 걸 얻기도 하고 모든 걸 잃기도 하고 아무것도 얻지 않기도 하고 아무것도 잃지 않기도 하는 아주 평범한 미래를 위해 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