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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야플리(야근플레이리스트)

by 빵떡씨

날짜: 2017년 9월 20일 | 날씨: 일교차 이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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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사는 팀마다 다른 클라이언트를 맡는다. 그래서 클라이언트 일정에 따라 팀의 일의 양이 정해진다. a클라이언트가 행사랄지(랄) 기념식이랄지(랄) 10주년이랄지(랄) 할 땐 a클라이언트를 맡은 팀이 바쁘고 b클라이언트가 할인이랄지(랄) 런칭이랄지(랄) 이벤트랄지(랄) 할 땐 b클라이언트를 맡은 팀이 바쁘다. 그래서 야근 하는 날도 팀마다 다르다. 야근 비평준화는 직장인들의 인성에 악영향을 미치는데, 일찍 퇴근하는 팀은 눈썹을 살짝 치뜨고 볼을 혀로 부풀리며 야근 하는 팀을 한껏 능멸하고 야근 하는 팀은 실핏줄이 우뚝 선 눈으로 쏘아 보며 '그러고도 너의 씨드라이브가 무사할 것 같니?'라는 살인예고를 한다.

알다시피 어느 회사도 그러지 않고 그럴 정신도 없다. 그냥 정신 차리면 다른팀은 가고 우리밖에 없다.
"오? 우리밖에 없네? 노래 듣자 대리야"
"뭐 틀어드릴까요"
"왜 그런거 있잖아 좀 흥얼흥얼할 수 있는거. 버즈,, 김경호, 야다 이런거 있잖아"
"그건 흥얼거리는 게 아닐텐데요"
"아우 좀 틀어봐앙"
첨언하자면 팀장님은 앙탈을 부릴 때 '미운 우리 새끼'에 서 박수홍 엄마가 "쟤가 왜 저럴까앙~"할 때와 비슷한 목소리가 난다. 그때마다 티나지 않게 비웃는 게 여간 스릴 있는 게 아니다.

손쉽게 흥얼거릴 수 있는 김경호의 '금지된 사랑'을 틀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플레이 리스트가 넘어감에 따라 팀장님과 대리님은 잔잔하게 흥얼거리기도 하고 80년대생 남아들의 우심방을 터칭하는 후렴구를 쿵작쿵작 따라 부르기도 했다. 그러고 있자니 대학생 때 늦게까지 팀플을 했던 게 생각났다. 그때나 지금이나 젊고 여유로운 느낌을 주고자 했으나 그냥 망할 일이 안 끝나서 그러고 있던 거였다.

"왜 안 부르세요"
"고음에서 부를 거야"
"제가 부를 건데요"

-사이좋게 흥얼흥얼-

"우리 임창정 노래 같은 것 좀 듣자"
"지금 듣고 계신 게 임창정 노래에요"

팀장님의 야플리는 소주한잔을 거쳐 보고싶다로 이어져 이미슬픈사랑에서 절정을 이루고 나에게로떠나는여행으로 마무리 됐다. 대리님이랑 팀장님 다 노래를 잘 하진 않는 것 같아서 기뻤다. 혹여나 같이 노래방에 가도 혼자만 창피하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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