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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열한 시는 두려워

by 빵떡씨 Sep 25. 2017

날짜: 2017년 9월 23일  ㅣ  날씨: 가을볕이 피부에서 타닥타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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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여주인공들은 장거리 통근을 했음에 틀림없다. "오늘도 화이팅, 아자아자!" 같은 멘트 없인 생활이 불가했던 걸 보면 알 수 있다. 나도 장거리 통근인이다.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위장에 얹는 느낌으로 아침을 먹고 6시 59분 당고개행 급행을 타러 나간다. 종점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앉아서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엉덩이에 욕창 생길 때까지 앉아서 갈 수 있다. 지하철에서 졸도했다가 일어나서 회사 도착하면 9시. 

11시. 아침 먹은지 5시간이 지나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내 꼬르륵 소리는 남들의 그것과 달리 매우 스페셜한데, 고등학생 때 내 짝꿍이 엎드려 잠을 자다가 내 꼬르륵 소리를 듣고 일어나 미닫이 문 열리는 소린 줄 알았다 할 정도다. 또 어떤 년이 꼬르륵 소리의 이름을 꼬르륵이라고 지었는지 모르겠지만 내 꼬르륵 소리는 그런 귀염성 있는 꼬르륵이 전혀 아니고 그르륵이나 더러럭 정도다. 나만 알고 싶은 내 위장의 사운드를 사무실 사람들이 다 알게 될까봐 11시만 되면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꼬르륵 소리를 막기 위해 일단 물을 마신다. 그리고 배에 힘을 준다. 인형을 끌어 안아 밖으로 새는 소리를 막아 본다. 하지만 꼬르륵 소리는 위장을 울림통 삼아 몸 안에서 공명을 일으키는 소리기 때문에 막아도 소용이 없다(근거 없음). 소리를 상쇄하려 쿠ㅎ울럭쿨럭 거리지만 헛기침 소리가 꼬르륵 소리에 화음을 넣어 조금 더 조화로워질 뿐이다. 최후의 방법으로 탕비실 커피과자를 먹는데, 절대 닥치는대로 쑤셔넣으면 안 되고 '안 먹어도 그만 먹어도 그만인 과자를 맛이나 볼까'라는 느낌으로 조신하게 쑤셔넣어야 한다. 아무도 나한테 신경쓰지 않지만 난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타입이기 때문에 그렇다.

며칠 동안은 아예 집에서 견과류 한 통을 가져와서 꼬르륵 소리가 날 기미만 보여도 먹었는데 그것 때문에 설사 존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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