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17년 12월 25일 월요일 | 날씨: 연휴라 세상이 아름다움
*오늘의 일기는 꽤 슬픔 주의
기자단 수료식이 있었다. 대학생 때 기업이고 기관이고 서포터즈니 기자단이니 하면서 돈 몇 푼 쥐어 주고 대학생들을 착취한다고 욕을 욕을 했는데 그걸 내가 몇 개월 간 운영했다. 음 아주 보람찼다.
대학생을 상대하는 건 클라이언트를 대하는 것과 좀 다른 일이었다. 아메바처럼 시키는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너네한테 돈을 주는데!'라는 갑질과 '그렇다고 때려칠 것까진 없잖아...'라는 을질을 적당히 혼용해야 했다. 대학생들에게 기자단은 직장이 아니고 또 여차하면 관둘 수 있는 패기와 젊음이 있기 때문에 나는 그 여차를 막기 위해 월급 받아 가며 존나게 잔대가리를 굴려야 했다.
아무튼 크게 나쁠 것 없던 기자단 운영이었다. 가끔 어느 블로그에서 긁어와 어미만 바꾼(그 어미조차 제대로 바꾸지 않아 '했어요'와 '했다'가 섞인) 기사를 제출할 때 빼곤 괜찮았다. 아 물론 텍스트가 인기가요 카메라 워킹처럼 정신없이 날아오고 좆 같은 이펙트가 좌상향에서 번쩍 우하향에서 번쩍 등장하는 영상을 월말 콘텐츠로 받기도 했지만 그것 말곤 정말 괜찮았다. 강사를 초빙한 날 여덟 명이 지각해 두 명을 앉혀 놓고 강의를 하기도 했지만 뭐 그것 말곤 괜ㅊㅏㄴ...
그렇게 수료식이 왔다. 나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출 만큼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기자단 애들이 잘 참석하는지 보기만 하면 내 모든 기자단 업무는 끝이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의 예상 대로 저는 그 쉬운 일을 해내지 못하는데...
수료식 시간이 가까워지자 세상 모든 불행이 기자단 학생들에게 닥쳐 지각자가 속출했다. 친척 분의 갑작스러운 병환부터 핸드폰 분실까지 지각 사유도 아주 겹치지도 않게 다채로웠다. 두 학생만이 제 시간에 도착했고 나는 조금 울컥하는 심정이 되었다.
20분 정도를 더 기다려 두 명의 학생이 더 왔고 학생보다 스태프가 두 배 더 많은 수료식이 시작됐다. 포토그래퍼가 사진에라도 학생이 좀 많아 보이도록 나보고 학생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덕분에 나는 좌 클라이언트 우 상사를 거느리고 앉아 세상 팔자 좋게 수료식을 관람했다.
아무튼 모든 일의 마무리가 그렇듯 우리의 수료식도 훈훈함과 좋은 말씀과 좋은 경험이었습니다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기자단 학생들도 돌아가며 기자단을 마친 소감을 전했다.
- 아 좋은 경험이었고, 좋은 분들 만나서 즐거웠습니다!
- 저도 재미 있게 했고,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아요.
- 저는... 음 끝나는 자리니 쓴 소리 좀 하겠습니다.
(?)
- 기관의 SNS 운영 제 1 원칙은 기관장의 무관심입니다. 저희가 만든 콘텐츠가 이해가 좀 안 되시더라도 요즘 젊은이들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하고 이해해 주셨으면 좋았을 것 같고.. 그리고 기자단 담당자님도...
(???)
- 좀 더 저희와 소통해 주셨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콘텐츠가 안 올라간 적이 있는데 이유도 말씀 안 해주시고... 그런 점이 좀 아쉬웠습니다.
(?????)
나는 측두엽에 싱크홀이 생긴 것처럼 할 말을 잃었다. 그래... 내가 그런 적이 있었지... 정말 바른 말을 하는... 용감한 친구구나... 그래.. 내가 잘못했지 암... 근데 지금 여기 클라이언트가 있고.. 내 상사도 있는데 굳이 여기서..나한테..응? 빅엿을...응? 내가 그렇게 잘못했나...?... 아니야... 그래도 저 친구 입장에선 그럴 수 있지... 친구...?... 나보다 쟤가 나이가 많은데...?... 나는 어린 나이에 이렇게 고생을 하는데 쟤들은 대학생의 허울을 쓰고 저렇게... 아니야... 지금 어리다고 봐주길 바라는 거니...?... 응... 좀 봐주지... 아니야... 그럴 수 있지... 나도 다음부터 잘 하면 되지... 근데 내게 다음이 있을까...?
나는 두 인격의 다툼 속으로 침전하는 기분이었다. 그 날 뒷풀이는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이 흐릿하다. 자라나는 씨발, 아니 씨앗들에게 고기를 구워 맥이며 많이 드세요... 제가 구울 게요... 수고 하셨어요... 같은 말들을 했던 기억이다. 얘들아.. 함께 해서 미안했고 다신 보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