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18년 1월 28일 일요일 | 날씨: 추위가 재난급
우리 회사 클라이언트 중에 출판사가 하나 있다. 얼마 전에 마케팅에 대한 책을 쓴 저자의 마케팅 강연을 진행했었다. 참가자를 10명 밖에 못 받아서 어떤 기준으로 참가자를 뽑아야하나 이것 참 난감해 하고 있었는데 강연 신청자가 4명 뿐이어서 곤란함이 싹! 가셨다. 마케팅 강연이 마케팅이 안 돼서 신청자가 없는 건 노홍철 없는 노홍철 팀 만큼 의미심장했다.
이럴 때 회사가 위기를 면하는 좋은 수단은 바로 신입사원이다.
"빵떡이 광고홍보학과 나왔으니까 주변에 마케팅 강연 좋아하는 사람 많지? 공짜로 보여준다고 하고 좀 이렇게 좀 오라고 해봐아? 응?"
논리적인 듯하면서 아무 논리가 없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저 '해→봐↗아?'의 악센트가 너무 무서웠다. 눈썹까지 살짝 치켜뜨며 "해애→봐↗아?"라고 하면 정말 어떻게든 해야 할 것 같은 조급함이 드는 것이다.
그날 오후 내내 우정을 팔아가며 참가자를 구했다. 수 많은 '안 사요'가 답으로 돌아왔고 그럴 때마다 팀장님의 '해→봐↗아?'를 떠올리며 이 악물고 살길을 찾았다. 그렇게 네 명의 지인과 우리 회사 인턴들이 참여하는 빵떡씨 지인 파티가 개최됐다.
지인 파티는 논현동 카페에서 열렸다. 나는 회사에서 팀장님 차를 타고 출발했다. 그런데 카페에 다 와 갈 때 쯤 신사역 사거리에서 러시아워에 걸렸다. 20분 동안 15미터를 가는데 정말 문명의 이기가 그렇게 좆도 쓸모 없이 보일 수가 없었다. 팀장님은 처음엔 위기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위트로 웃어 넘기는 시니어의 모습을 견지하고자 하셨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10분 만에 초조함으로 제 정신이 아니게 되었다.
"하아 이거.. 빵떡이라도 뛰어서 가야 하나...?"
나는 6개월의 짬으로 팀장님의 말이 불순물 1도 없는 백퍼센트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제.. 제가 뛰어서 가보겠슴다..!"
"아하이 참 위험한데에..."
하면서도 그는 날 잡지 않았고 난 팔차선 도로를 듬성듬성 뛰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차에 살짝 부딪힐까 하는 영특한 생각을 하다 보니 도로 건너편에 와 있었다.
그렇게 겨우 제 시간에 강연 장소에 도착했다. 카페 입구에 앉아 마블퓨쳐파이터를 하는 수령님 닮은 아저씨를 지나 제빨리 클라이언트의 안색을 살피고 팔차선을 뛰어 온 충성심을 열심히 어필했다. 충성충성 하다보니 팀장님과 지인들이 속속 도착했다. 7시가 조금 넘어 참석자가 모두 도착하자 카페 입구에 있던 수령님이 앞에 나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아... 저분이 강사셨구나...
"아.. 저는 사실 이 강연 뭐 하는 건지 뭐.. 누가 오는 건지도 모르고 왔어요..."
?
"예 뭐... 아무튼 강연 시작 해보겠습니다"
아무튼 강연은 시작됐고 수령님은 시종일관 햄버거 먹고 싶은데 버섯 전골 집에 끌려온 아이 같은 표정으로 아무튼 강연을 이어가셨다. 그리고 내 카톡은 지인들의 불만으로 민원 접수처가 돼 있었다.
'시발 너무 웅얼거려서 기가지니도 못 알아듣겠다'
'양 볼에 델리만쥬 쳐넣고 말 하는 것 같다'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쓸모 없는 강연 1위로 손색이 없다'
'충격...! 또 충격..!! 건방진 태도에 반전은 없어... 의도한 것 아닌 진짜 건방진 것으로 드러나!'
나는 그들이 마지막 남은 인류애를 끌어모아 조금만 더 버텨주길 청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고
"저예산으로 어떻게 마케팅을 해야 할까요?"
"저는 저예산으로 해본 적 없는데요"
같은 마리 앙투아네트도 인성으론 왕비 자릴 내줄 만한 답변으로 강연을 마쳤다.
나는 마케팅이라는 것에 대해 급격히 혼미해진 느낌이었다. 마케팅 강연이 마케팅이 안 되고... 지인으로 머릿수를 채우고.. 마케터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사진을 찍고.. 영상을 편집하고.... SNS에 올리고... 팔차선 도로를 건너고...볼에 델리만쥬를 쳐넣고.... 이게 다 무슨 짓.. 이라는 생각을 하며 클라이언트가 저녁으로 사준 장어를 꼭꼭 씹어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