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퐁_좋은 사람 되기

by 빵떡씨

란 가능한 걸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물론 개인이 의지를 갖고 구체적으로 '좋은 사람'이란 무엇인지 정의를 내리고 실행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란 걸 안다. 하지만 의지를 가져보기도 전에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이라는 생각부터 든다면 좋은 사람 되기는 정말 요원한 숙제가 되는 것이다.

이를 테면 이런 상황이 있다. 의자에 앉아 있다. 길게 연결 되어 서너 명이 앉을 수 있는 의자다. 근데 옆에 앉은 새끼가 다리를 존나게 떤다. 그 바운스가 의자를 통해 나한테까지 전해져 골이 울릴 판이다. 이때 "거 새끼 다리 존나 떠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저기 죄송한데 다리 떠는 것 좀 멈춰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무표정하게 핸드폰을 꺼내 단톡방에 '옆에 앉은 새끼가 다리 존나 떨어서 골 개울린다 ㅅㅂ'라고 자판을 톡톡 치는 사람이 있다. 말하자면 나는 세 번째 류의 사람이다. 스스로 그런 사람인 걸 못마땅해 하면서도 그냥 그렇게 산다.

'나도 두 번째 류 정도의 사람이 되고 싶다...' 생각 하다가도 '뭘 또 그렇게 까지...'로 금방 돌아선다. 나는 그런 비자기계발적인 생각이 들 때마다 이게 다 스무 살 때 박민규 책을 너무 열심히 읽어서 그렇다 하며 살았다. 박민규의 책을 요약하자면, <지구가 있고, 그보다 큰 태양계가 있고, 그 태양계가 좆만해 보일 만큼 큰 갤럭시가 있는데, 그 갤럭시의 입장에서 보자면 인류는 파리가 손 비빌 때 나오는 먼지 같은 건데, 문화며 문명이며 학살이며 독립이며 개혁이며 전쟁이며,,, 먼지 주제에 왜 이런 것들을 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정도겠다. 그런 책들을 너무 감명 깊게 읽은 나는 한 톨의 먼지가 된 기분으로 대부분의 일에 임했다. 물론 박민규는 스무 살짜리가 게으름을 변명할 때 자신의 책을 들먹일 줄은 몰랐겠지만 실제 박민규의 뜻이 뭐였든 난 나대로 읽었고 읽은 대로 컸다.

회사에 다니면서부터는 그런 생각을 멈춰보려 노력했다. '이게 다 뭐하는 짓...'이라고 생각하다가도 '아니야 열심히 해보자'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하지만 신입사원에게 일이란 '내 딴엔 열심히 했는데 항상 어딘가 부족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열심히 하거나 말거나 일은 일대로 어그러질 때가 있다. '신입은 원래 실수하면서 배우는 법'이라고 쿨하게 말해도 돌아서면 '더 잘 할 수 있었는데'라는 찐따 같은 미련은 내 단전 쯤에 돌탑처럼 쌓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돌탑이 덜그럭 덜그럭 거리며 버거운 존재감을 드러낼 쯤, 박민규의 <핑퐁>을 다시 읽었다.

무제-1 복사.jpg 박민규 이제 그만 놀고 책 좀 내줬음 좋겠다


<핑퐁>을 요약하자면 조물주가 만들어 놓고 깜빡, 했다 해도 믿을 만큼 찌질한, 가난과 학교폭력과 뭐 그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갖춘 두 중학생이 핑퐁을 치는 얘기다. 핑퐁핑퐁핑퐁핑퐁 하면서 삼라만상을 생각하고 역시 이게 다 뭐 하는 짓일까,로 끝나는.

어쩌라는 걸까? 그리고 그 사이는 전부 빈 공간이 아닐까, 라는 게 내 생각이야. 즉 너와 나 같은 인간들은 그냥 빈 공간이란 얘기지. 그렇지 않을까? 즉, 보이지 않는 거야. 멀리서 보면 그저 아무것도 없는 캄캄한 공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이렇게 존재해. 그럼 우린 뭘까? 보이지도 않고, 아무 존재감 없이 학살이나 당하고... 영문도 모른 채 이렇게 나란히 앉아 있고... 뭐 그래서 서로에게 의지하기도 하지만... 실은 우리도 200km는 떨어져 있는 탁구공과 같은 게 아닐까? 또 그 사이는 역시나 비어 있는 게 아닐까? 왜일까... 말하자면, 어쩌라는 걸까?

보이지도 않는 존재들인데, 왜 이렇게 노력해야 하는 걸까? 이토록 힘든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가 뭘까? 우주 대부분인 빈 공간들이... 어떤 노력을 한다고는 볼 수 없잖아. 그런데도 이것은 우연일까? 이곳에 존재하고, 서로를 견제하고, 진보와 발전을 거듭하고, 자원을 이용하고, 구분하고, 차별하고, 우월해지고, 뺏고, 차지하고, 죽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살기 위해서? 이렇게 빈 공간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수많은 물음표에 대한 (내가 이해한) 박민규의 대답은 이거였다. 하늘에서 굽어본들 개미 좆만하게 보이는지라 신께서 도저히 보우할 수 없는 인류는, 그래서 그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대의도 없고 운명도 없고 존재할 명분은 더욱 더 없는 우리는 서로에게 서로밖에 없다. 그 중에 핑퐁을 함께 쳐 줄 누군가라도 있다면 그것으로 삶은 계속될 수 있다. 새로운 2교시를 함께 맞이할 수 있다.

핑퐁을 쳐 줄 누군가가 있다면 좋은 사람도 될 수 있는 걸까, 라고 묻는다면 먼저 좋은 사람이 돼야 핑퐁을 쳐 줄 누군가가 생기는 게 아닐까, 라는 재수 없는 의문에 의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역시 좋은 사람 되기는 요원한 일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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