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_<그 개와 같은 말>

이미 알고 있지만 직접 견디는 건 생각보다 더 어렵기 때문이다.

by 빵떡씨

고등학생 때 내 친구 동생이 <위기탈출 넘버원>을 무지하게 봤었다. 그걸 보며 어린 나이에 생과 죽음이 얼마나 가까운지 깨달았는지 점점 안전과감증이 되어갔다. 인형을 갖고 놀면 인형 털이 장기적으로 폐에 쌓여 죽을 수도 있다는 걸 보고 인형을 죄 갖다 버리기까지 했다. 유년의 좋은 친구들을 버릴 만큼 방송국 놈들의 어거지 프레임은 강력했다. 친구 동생이 하루하루 얼마나 과해지는지 친구에게 호외처럼 들었다. 자기 방에 비상식량을 쌓아두는 것까지 듣고 졸업을 해버려서 그 다음에 어떻게 됐는지는 듣지 못했다.

임현의 단편소설집 <그 개와 같은 말>의 ‘가능한 세계’에 걔 같은 애가 나온다. 글은 아이의 일기 형식이다. 아이는 자신이 미래를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중간중간 나오는 내용으로 미루어 아이의 아빠가 뇌종양으로 죽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아이는 미래에 대해 언제나 걱정한다. 스스로 테러리스트가 될 미래, 아빠를 따라 뇌종양으로 죽을 미래, 교통사고로 뇌수가 다 빠질 미래, 주차장이 무너질 미래, 존속살인범이 될 미래. 그런 말들은 아이의 엄마를 ‘잘도 아프게’ 했다.

아이의 일기는 학교를 빠지거나 선생님께 상담을 받는 등의 내용으로 채워진다. 그렇게 10여년를 쓴다. 10년 후 미래에서 아이의 엄마는 우울증 진단을 받는다. 그리고 아이가 엄마를 혼자 내버려 둔 어느 날 엄마는 자살한다. 이야기의 끝에서 알게 되듯 사실 이 일기는 아이가 미래를 예상하고 미리 써 놓은 일기다. 혹시 자신이 죽는다면 슬퍼질 엄마를 위해 남기는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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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서 아이는 가능한 가장 나쁜 세계를 생각했다. 아빠가 뇌종양으로 갑자기 아이를 떠난 것처럼 자신도 그럴 수 있다, 엄마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커져버린 탓이다. 그래서 아이의 미래는 자꾸만 슬펐다.

아이만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도 두루 비슷한 슬픔 사이에 유난히 신경 쓰이는 슬픔이 있곤 한다. 누군가에겐 가난이 그렇고 누군가에겐 지구 반대편의 전쟁이 그렇다. 나에겐 ‘과거’가 그렇다. 내게 과거는 원래 내 것이었는데 덜컥 빼앗긴 선물 같다. 지난 날의 즐거움이나 같이 있던 사람들, 그때만 할 수 있었던 이야기, 분위기 같은 것들은 아무리 떼를 써도 다시 주지 않는다. 그래서 옛날에 찍은 사진들을 잘 보지 않는다. 참 좋았는데 이젠 다 소용없음을 기념하는 인증샷 같아서.

모든 것들이 다 과거가 돼버린다고 생각하면 손톱을 똑똑 뜯으며 어딘가를 서성서성 걷고 싶은 기분이 된다. ‘이게 다 추억이지’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속없다 생각하다가 이내 많이 슬퍼진다. 오지 않은 불행을 걱정하는 건 빌리지 않은 돈을 미리 갚는 것과 같다던데. 과거를 다시 불러올 수 없다는 이유로 슬퍼하는 건 어떤 종류의 멍청함일까.

과거라는 이유로 나의 많은 것들이 필요 이상으로 슬퍼지는 날이면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어릴 때 신장이 안 좋아서 병원에 자주 입원했었다. 간호사 언니들이 막 입원 100일 축하도 해줬던 기억이다. 병원에 하도 자주 가서 그땐 다들 감기만 걸려도 병원에서 휠체어 타고 다니는 줄 알았다. 병원에 오래 있었다는 것만 기억 나고 수술을 했던 기억은 없었는데 언젠가 엄마가 수술한 날 이야기를 들려줬다.

쬐끄만 내가 수술대에 앉아 있고 엄마가 내 손을 잡고 있었다. 엄마는 수술 잘 받을 수 있지? 나오면 뭐 사줄까? 같은 수술을 앞둔 딸을 위해 해줄 수 있는 말들을 했다. 나는 작은 주먹으로 눈가를 꼭꼭 누르면서 짬뽕을 사달라고 했다고 한다. 엄마는 그 째까난 게 그러고 무서운 걸 참고 있는 걸 보니 가슴이 미어지더라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난 어린 놈이 참 씩씩한 게 지금보다 낫구나 싶었다. 그 후에도 그 얘기는 내 머릿속에 오래 남아있었다. 근데 곱씹어 볼수록 내가 아니라 거기 서있는 여자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내 손을 잡고 있는 30대 초반의 여자. 외할머니네 액자에서 본 새까만 머리의 여자. 그녀는 생각보다 너무 젊었고 생각보다 머리 숱이 많았고 생각보다 어리바리했고 생각보다 너무 가슴 아파했다.

그녀의 모든 게 다 좋아 보였다. 안절부절 하는 모습까지. 혹시 엄마가 그런 것들을 그리워 할까봐 조금 불안했다. 나 때문에 잃어버렸다고 말한다면 모르는 척 해야 할까. 어떻게 해도 엄마에게 다시 줄 수 없는 것들이니 미안해 해야 할까. 그런 생각들을 한 후로는 새까만 머리를 한 젊은 엄마의 사진을 잘 쳐다보지 않는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다…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과거는 과거고 지금의 나를 살아야 한다… 그럭저럭 심정을 편안하게 해주는 말들. 나도 안다. 그럼에도 슬픈 이유는 아이의 말대로 ‘이미 알고 있지만 직접 견디는 건 생각보다 더 어렵기’ 때문인가 보다.

<그 개와 같은 말>에 나오는 이런저런 슬픔들은 결국 내 것을 돌아보게 한다. 슬픔은 유년의 경험과 현재의 고민, 미래의 불안 같은 것들이 겹겹이 쌓인 패스츄리 빵 같아서 한 켜씩 찬찬히 넘겨 보면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게 되기도 한다. 물론 슬프지 않은 것이 가장 좋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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