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난장판이 봄날 벚꽃처럼 한창이었다
날짜: 2019년 2월 8일 토요일 | 날씨: 날씨 재미있게 쓸 수 있는 분 구함
설에 산소에 갔다. 산소에서 나무 다섯 그루를 들이받았다. 아름드리 참나무는 아니고(10년 넘은 우리의 스타랙스는 그런 저력을 내기엔 늙고 지쳤다) 아파트 단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왜 그 배꼽까지 오는 나무 있지 않은가 탈모 있는 브로콜리처럼 생긴 나무. 그걸 냅다 깔아뭉개버렸다. 브로콜리들은 피로한 가장처럼 풀썩 누웠고 우린 가장의 뱃살을 간신히 버티는 밸트처럼 비명을 질렀다.
브로콜리 학살 사건의 원인은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것을 발이 미끄러져 엑셀을 밟은 탓이었다. 엄하게 죽은 브로콜리들은 다같이 뒤지자는 심경으로 바퀴에 악착같이 엉겨붙었다. 차는 속 안 좋은 뚱보처럼 부릉거리기만 하고 움직이질 않았다. 그때 주변의 사내들이 신통치 않은 파티원을 구제해주려는 힐러처럼 스멀스멀 다가왔다. "앞으로 스을쩍 뺐다가 뒤로 밟아보쇼" "자아 하나두울셋 하면 밀게요" "아니 거 앞으로 스을쩍 빼라니께" 내 경험 상 남자들은 차에 대해서라면 홀린 듯 다가와 도와주곤 한다. 탈 것에 문제가 생기면 공동체 생존 가능성이 낮아지니 함께 해결하는 방향으로 진화한 걸까, 하는 진화론적인 생각을 움찔거리는 차 안에서 했다. 차가 탈출하자 진화한 사내들은 각자의 라인으로 표표히 흩어졌다.
우리 가족은 성묘 갔다가 그 자리에 묻힐 뻔한 위기를 모면하고 외가로 향했다. 우리 외가는 연희동에 있다. 남들이 논 밭을 헤치고 파란 기와집을 지나 외가에 도착할 때 우리는 홍대의 딘드밀리 패션 젊은이들을 헤치고 연트럴파크의 '안녕, 낯선 사람' 카페를 지나 외가에 당도한다.
연립주택인 외가에는 한 가지 룰이 있다. 1가구 1주차. 외할아버지는 몇 년 전에 차를 처분해서 주차해 놓은 차가 없다. 그래서 우리 가족이 가면 빈 자리에 우리 차를 주차할 수 있다. 이번 설에도 크고 늙은 애마를 파킹한 후 집에서 가족 단체로 뭉그적거리고 있었다. 그때 우리 가족의 행복을 깨는 벨소리가 울려퍼지는데...
차를 빼달라는 전화였다. 우리는 의아했다. 다른 차를 막지도 않았는데 왜 차를 빼달라고 할까. 외할아버지, 아빠, 동생은 홀린 듯 마당으로 내려갔다. 역시 진화론이 맞는...... 차 문제는 수컷 고등 생명체들에게 맡겨두고 나와 엄마와 외할머니는 강정을 먹으며 설 특선 영화를 마저 봤다. 남주가 사랑을 고백하는 찰나 남주 목소리에 오버레이 되는 아련한 외침이 있었다.
'내 마음.. 이제 알아줄래...? 너는 나의...... 개애섀끼야!!!!!'
우리는 강정을 던지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우리가 나갔을 땐 이미 동생까지 가세해 싸움이 봄날 벚꽃처럼 한창이었다. 피차 탈모인들인지라 머리채 잡는 상황만 겨우 면한 듯 보였다. 전말은 이랬다. 우리 차를 주차한 곳 안쪽에 오토바이 하나가 짱박혀 있었다. 사실 거긴 오토바이를 주차할 수 없는 곳이다. 오토바이 아저씨는 오토바이를 빼기 위해 우리 집에 전화를 했고 아빠는 차를 빼주러 나갔다. 그때 오토바이 아저씨가 왜 큰 차를 여기 세워두냐는 둥 차가 못 들어오게 말뚝을 박겠다는 둥 시발시발 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말씀하시곤 했다. 불의엔 눈 감아도 불이익엔 눈 감지 말아라. 우리 아빠는 누굴 때리거나(그럴 힘이 이제 없다) 시비를 거는 성격은 아니지만 누군가 인생에 태클을 건다면 태클 건 다리를 곱게 돌려보내주진 않는다. 오토바이 아저씨에게 사람 보는 혜안이 없던 것이 통탄스럽다. 그랬다면 아저씨는 욕을 적당량만 먹을 수 있었을 텐데.
<성난 황소>는 마동석이 아내가 납치되자 성이 나서 황소처럼 다 때려 부수는 영화다. 우리 아빠는 마동석과 같은 근력과 골격은 없으나 마음만은 마동석의 그것과 같아서 화가 나면 굉장한 헐리우드 액션을 선보인다. 그 날도 좌충우돌 씩씩거리다가 마당 저편으로 호다닥 달려가더니 물이 든 통(약수터에서 많이 보는)을 들고 뛰어왔다. 위협 수단으로 가져 온 거 같은데 그 정신 없는 와중에 물통이 거기 있는 건 또 어떻게 기억했는지 아빠의 공간지각능력에 새삼 감탄했다. 물통은 동생에게 뺏겼고 아빠는 아쉬워 했다.
그러고도 아빠의 분노는 멈추지 않았고 엄마와 동생은 아빠를 저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빵떡 아빠 왜이래 진짜아!! 정신차려요! 아이고!!!" 나는 처음 엄마 아빠의 부부싸움을 목격한 6세 아이처럼 울면서 아빠를 말렸다. "아빠아!! 그만해애 참아 제바알!!!" 지금 생각하면 사실 울 것까진 없었다. 그 와중에도 우리 아빠는 딸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어서 분주히 욕도 하고 내 눈물도 닦아줬다.
"으응 그래그래 안 할게 아빠 안 할게, 울지마 진짜 안 할게에에이 개애섀끼야아!! 저 시발롬을 내가 조사ㅂㅓㄹ...(줄임)"
딸의 눈물을 닦던 손으로 남의 뺨을 치려 달려드는 아빠를 보고 기분이 애매해져 집으로 들어갔다.
아빠는 오토바이 아저씨가 사과하기 전까지 차를 한 바퀴도(?) 빼 줄 수 없다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 와중에 누가 신고를 했는지 경찰차도 왔다. 결국 오토바이 아저씨가 어거지로 사과 하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 되었다. 차분하고 이성적인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우리가 아빠의 쇼맨십에 말린 게 아닐까 싶다. 시비 붙은 친구가 "야 놔봐 놔보라고"해서 진짜 놓으면 딱히 아무 짓도 안 하는 것처럼, 그냥 놔뒀다면 화는 나지만 누굴 때릴 만큼 대담하진 않은 아저씨들끼리 쉬익거리다 말지 않았을까. 아무래도 그랬을 것 같아 분하다.
우리는 고등 생명체답게 곧 이성을 찾고 민망해졌다. 공기가 식은땀을 흘리는 느낌이었다. 다같이 오토바이 아저씨 욕을 주절거리다 찜찜하게 외가를 떠났다.
누군가 공자의 제자에게 공자가 왜 성인이냐 묻자 제자는 '공자께서는 너무 심한 일은 하지 않으셨다'고 했다. 그렇다. 너무 지나치다 싶은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우리를 성인에 가깝게 만들어 준다. 우리 모두 이 말을 명심하고 감정적으로 극단에 치우치는 것을 경계하도록 하자. 무엇보다 주차는 제 자리에 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