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가 왜 죽자사자 호그와트 가는지 알 것 같다
날짜 : 2019년 2월 17일 일요일 | 날씨: 별로 안 춥ㄴ 하자마자 추워지는 마법 같은 날씨
동생이랑 전세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나는 셰어하우스 생활을, 동생은 네 시간 통근을 청산하기 위함이었다. 우리 회사는 종로에 있고 동생 회사는 상암에 있다. 서로 자기 회사에 단 1키로라도 더 가까워지려다 형제와 양심을 다 잃을 뻔했다. 내가 전세를 구한다니 홍대 다니는 애가 싼 전세집 찾다가 김포공항까지 갔다는 얘기를 해줬다. 그때 진짜 유쾌한 친구라고 처웃었는데 내가 왜 그랬을까 진짜 처맞을라고. 오늘의 이야기는 없는 돈으로 전세를 구할 때 생기는 일이다.
첫 번째 본 집은 옥탑이었다.
'깔끔하고 버스정류장 가까운 8천 투룸'이라는 미션에 부동산 아저씨는 "쓰흐으으으읍...흐아아"하며 그 일대 미세먼지를 이산화탄소로 치환하길 반복했다. 미간이 후룹라이드를 타기 좋게 파였을 때 부동산 아저씨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여기가 맨 윗층이라서 천장이 쬐해애끔 낮은데, 아니 많이 말고 쬐애끔, 쨰~~끔"
부동산 아저씨가 가는 내내 밑밥을 까는게 존나 수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에 나오는 다락방 같은 집이었다. 모모는 요괴보다 목디스크를 조심했어야 했다. 아주 못 살 건 없어보였는데 다만 대가리를 썰어서 옆구리에 끼고 다녀야 할 뿐이었다. 그 전에 아저씨 목부터 썰어야겠다는 굳아이디어가 떠오르기에 얼른 떨쳐버렸다.
8천이면 집이 아니라 사육장이라는 걸 깨닫고 예산을 상향조정했다. 아저씨는 1억짜리 집이 있다며 우리를 데려갔다. 단위가 바뀌니 이제 좀 인간이 살 만한 구색이 나왔다. 평수도 나쁘지 않고.. 채광이랑 수압도 관찮고... 근데 화장실이.. 화장실이...? 아저씨는 서프라이즈 고백을 준비한 남자친구처럼 짜잔~ 하며 계단 밑 문을 열어제꼈다. 변기가 계단 밑에 박혀있는 XS사이즈 화장실이었다. 허리를 펴고 똥을 쌀 수가 없잖아... 로뎅은 이런 변기에 앉아 생각하는 사람을 고안했을까. 이 자세로 똥을 싼다면 장까지 살아가는 유산균을 아무리 처먹어도 구부러진 장에서 길을 잃고 다 디질것이다...
아저씨에게 졌지만 잘 싸웠다는 미소를 남기고 다른 부동산으로 갔다. 두 번째 부동산의 아주머니는 당장 육천에 십오 짜리 투룸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동생과 나는 '오 서울에 그런 혜자한 곳이?'라는 기대보다 '얼마나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이기에'하는 궁금증에 따라갔다. 아주머니는 부동산에서 세 발짝 걷더니 바로 옆 창고 문을 열어주었다.
'맙소사 창고가 아니라 집이었어......'
해리포터가 살던 두들리네 벽장 같은 집이었다. 인간이 여기서 살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마법이다... 문을 여니 해리포터 대신 방이 바로 튀어나왔다. 현관문에서 길까지 나오는 시간이 0.1초라 출근시간이 줄어드는 장점이 있었다.
이런 하자 있는 집에 가면 부동산 아주머니들의 쉴드용 멘트가 아주 들어줄만 하다.
"이 계단 올라가다 다치는 거 아니에요?"
"어머어 술 안 먹으면 되지이~"
"방이 너무 좁은데요..."
"책상 밑에 발 넣고 누우면 따악~ 맞아"
"방에 기둥이 있어요...!"
"피해다니면 되지!"
배에 구멍 뚫고 자라고 하진 않으시네요... 욕지기처럼 치미는 감사함을 꾹꾹 눌렀다. 묘하게 내 시선을 피하는 모습에서 부동산 아주머니의 한 줌 남은 양심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집들을 스무 군데 쯤 보고 나면 '문 달린 곳이면 어디든 계약하겠다'는 마음과 '아무데도 마음에 안 들어 죽고 싶다'는 양가감정이 든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자, 노트북을 사면 옵션을 본체에 맞춘다. 밥을 먹을 때도 디저트를 메인디쉬에 맞춘다. 핸드폰을 살 때도 케이스를 본체에 맞춘다. 무엇이든 싼 것을 비싼 것에 맞추는 게 순리다. 그러니 싼 나를 비싼 집에 맞추는 게 인지상정!(유레카) 값싼 인간인 주제에 내게 맞는 집을 고르려 하다니, 건물님께 몸을 맞춰야지 례끼 이놈.
이 짓을 몇 주 반복하고 결국 계약을 하긴 했다. 화장실 정도만 내 돈으로 사고 나머지는 신한은행이 사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