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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실수

플라스틱도 한 수 접어주는 쓰레기 같은 마인드...

by 빵떡씨

날짜 : 2019년 3월 15일 금요일 | 날씨 : 비 조금 미세먼지 조금 추위 조금... 조금씩 모여 최악이 되는 신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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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도 계속되면 더이상 실수가 아니다. 맞는 말이다. 이 정도로 실수를 하면 능력이 없는 것이다. 나는 대리님이 끙끙 앓고 팀장님이 살 빠질 만큼 실수를 자주 한다. 특히 메일을 못 쓰는 분야에 특화돼있다. 파일을 잘못 첨부하고, 아예 빼먹고, 내용을 쓰다 말고, 참조를 잘못 걸고, 링크를 잘못 쓰고, 이미지가 깨지고......



이게 다 팀장님이 날 너무 오냐오냐 키워서 그렇다. 내가 실수를 했을 때 팀장님이 빡세게 혼냈다면 이 지경이 되진 않았을 텐데! 어릴 때 읽은 동화 중에 잦은 도둑질로 감옥에 간 아들이 면회 온 어머니에게 "어머니께서 혼내셨다면 전 도둑이 되지 않았을 거에요!"라고 말하며 얼굴에 침을 뱉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꼭 나 같아서 갑자기 생각났다.



한 번은 파일을 잘못 보내서 시말서를 쓴 적이 있다. 사건의 경위는 이랬다. 내가 이벤트 당첨자를 뽑아 리스트를 작성함 --> 중복 당첨자가 있어서 리스트를 수정함 --> 클라이언트에게 리스트를 보냄(이때 수정 후 리스트를 보냈어야 하는데 수정 전 리스트를 보낸 것) --> 당첨자 발표 --> 클라이언트에게 보낸 리스트와 발표된 리스트가 다르다는 걸 알게 됨 --> 클라이언트 화남 --> 시말서.



돈을 날리거나 고객사를 욕먹인 건 아니지만 아무튼 클라이언트가 화가 났다는 게 중요했다. '이게 시말서를 쓸 만큼 큰 잘못인가'. 동화 속 도둑처럼 클라이언트 얼굴에 침을 뱉고 싶었으나 내가 잘못 한 건 사실이니 얌전히 시말서를 썼다. 시말서 양식을 출력해 4b 연필로 사각사각 쓰다가 팀장님이 컴퓨터로 쓰는 거라고 해서 구겨버렸다. 오우 개쪽팔려...



사실 시말서를 쓰긴 했지만 저런 실수는 애교 정도고(주관적 판단) 진짜 큰 실수는 따로 있다. 지난 일기에 썼던 것처럼 나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관리 한다. 페이지 팔로워를 늘리기 위해 주기적으로 광고를 돌린다. 페이스북 피드를 넘기다 보면 개짜증나게 뜨는 기업 페이지 광고가 그거다(물론 여러분은 페이스북을 버린지 오래겠지만). 페이스북 광고는 예산이랑 타겟, 광고 기간 같은 걸 입력하고 집행하면 된다. 내가 광고 돌리는 걸 맡은지 얼마 안 됐을 때, 십쫄보였던 나는 광고를 돌리기 전에 두 번 세 번 꼭 다시 봤다. 특히 광고 예산은 속으로 일십백천만... 세어가며 맞게 썼는지 몇 번을 확인했다.



그 재수없는 날도 마찬가지로 몇 번이고 금액을 확인했다. "총예산... 일십백천만십만... 삼십마넌.. 기간... 일주일... 일십백천만십만......" 아기동자 접신 직전처럼 중얼거리며 광고를 체크했다. 광고를 돌린지 4일 정도 지났을 때 광고가 잘 되고 있나 확인하려고 관리자 페이지에 들어갔다. 근데 오우 팬이 엄청나게 늘어있었다. 당시 페이지 팬이 19만 얼마얼마로, 20만이 넘을 듯 안 넘을 듯 넘지 못 했었는데 20만이 훌쩍 넘은 것이다.



'이것은 모두 광고를 잘 돌린 나의 덕이다.'


'클라이언트는 내게 조공을 바치러 와야 한다.'


'아직 광고비가 10만 원밖에 소진되지 않았는데 팬이 이렇게 많아졌다니'


'기획 천재! 마케팅 지니어스!! AE계의 마윈!!!'


'근데 이게... 이게 왜.. 일십백천만십만백만... 왜 소진 비용이 100만 원이지?'


'...?'


'10만 원이 아니야..?'


'... 모가 잘못 나왔나'


'총예산이 삼십마논인데 어떻게 백마넌을 써?'


'왜지..?'


'왜......'


' 오... 오오......'


' 아.....!'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을 때의 그 짜릿함! 페이스북 광고 예산은 '총예산(총 광고 기간 동안 쓰는 비용)'과 '일일예산(하루 동안 쓰는 비용)'으로 나뉘는데, '총예산' 30만 원으로 설정해야 할 것을 '일일예산' 30만 원으로 설정한 것이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30만 원을 써야 할 것을 하루만에 30만 원을 써버린 것이다. 그렇게 4일이 지나 소진한 광고비가 100만 원을 넘은 것.



등부터 서서히 서늘한 기운이 뻗쳐오기 시작했다. 파스를 붙힌 것처럼 화끈거리고... 갱년기 증상처럼 체온조절이 안 되고.. 머리가 어지럽고 귀가 먹먹하고... 눈이 잘 안 보이고.. 창에 결로가 생기듯 겨에 땀이 촉촉히 맺히고...... 나는 키보드 자판을 뽑을 것처럼 쥐어 뜯었다. 그대로 일어나서 퇴사를 할까... 삶을 마감하는 방법은...... 두려움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럴 때 이성은 가장 먼저 '상사에게 알리지 않고 해결하는 방법'을 생각한다. '없었던 일처럼 덮어버릴 수 있다면...' 초위기 상황이 되자 시냅스로 배를 긁던 뉴런들도 벌떡 일어나 뇌를 굴리기 시작했다. '내 돈으로 메울까' '70만 원인데..? 7만 원도 없잖아...' '내가 돌린 광고 아니라고 할까' '광고 돌린 사람 IP 다 뜨는걸..' '지금 못 본 척하고 나중에 혼날까' '그럼 나중에 200만 원이 넘게 나갈 텐데..?' 생각할 수록 망픨이 또렷이 느껴졌다.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다'. 나는 오히려 침착하고 겸허한 마음이 되었다. 싯다르타는 죽기 전에 '고개 돌리지 말고 너의 무상을 똑바로 보아라'라고 말했다. 그 가르침에 따라 나는 내가 싼 똥을 똑바로 보기로 마음 먹었다.


"팀장님, 제가 좆됐.. 아니.. 작은 실수를 했습니다..."



나는 2년 차가 된 후론 웬만한 일엔 굽신거리지 않았다. 주로 '뭐.. 자르던가...'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회사 돈을 털어먹은 건 얘기가 좀 다르다. 돈에 혈안된 회사가 나를 가만 둘 리 없다! 나는 두려웠다. 상상 속에선 이미 고소까지 당했다. 나는 파티션 뒤에 숨어 수줍게 팀장님을 불렀다. 팀장님은 탕아가 조아리고 있으니 기분이 쎄해지신 것 같았다. "왜... 빵떡씨 무슨 일이세요... 왜이러세요......" 치한을 만난 시민처럼 왜이러세요를 되뇌이는 팀장님에게 자초지종을 불었다. 내 얘기를 듣는 그의 눈빛에서 재소자의 사회화를 포기한 교도관의 심정을 읽을 수 있었다.



에 그래서 어떻게 됐냐면 초과된 광고비 70만 원은 회사에서 메웠고, 페이스북 광고 돌리는 일은 대리님에게 넘어갔다. 그리고 의도치 않게 페이스북 팬 20만 명을 넘긴 클라이언트는 나의 실수를 질책했지만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나는 생각했다. '페이지 팬도 늘었구.. 내 일도 줄었고... 그렇담 결과적으로 좋은 일이 아닐까?' 플라스틱도 한 수 접고 갈 쓰레기 같은 마인드... 역시 염치와 고마움을 모르는 인간은 거두는 것이 아니다. 나 같은 사원을 팀원으로 둔 팀장님의 막막한 앞날에 애도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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