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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떡씨 May 20. 2019

[글로그 14] 효녀는 어려워

왜 고등학교 기술 가정 시간에는 이런 것을 가르쳐주지 않았는가

 -가족 단톡방(4)-

 모친 '이번 주 금요일 회사 끝나고 본가로 집합'

 나 '토요일에 서울에서 약속 있는데..'

 모친 '집합'

 나 '...'

 모친 '금요일 저녁에 왔다가 토요일 오전에 가도록'

 나 '...'

 모친 '대답?'

 나 '넨...'

 모친 '효석은?'

 숨쓰* '여부가 있겠습니까...'

(*숨 쉬는 쓰레기의 줄임말)


부모님은 종종 오이도 본가로 동생과 나를 소집하신다. 자식새끼들이 집에 발길이 뜸하다 싶으면 한 번씩 부르신다. 하지만 그 '뜸하다'는 기준도 몇 개월이 아니라 약 2주 정도이기 때문에 우리는 수시로 불려가곤 한다.


물론 동생과 나는 오이도를 좋아한다. 시골 고향집에 온 듯한 평화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집에 가면 오전엔 거실에 누워서 <나 혼자 산다> - <전지적 참견시점> - <코미디 빅리그> 재방송을 몰아 본다. 오후에는 슬리퍼를 끌고 엄마 아빠랑 이마트에 장을 보러 간다. 맥주나 꿀꽈배기 같은 걸 카트에 슬쩍슬쩍 담으며 따라다닌다. 집에 오면 엄마가 저녁으로 돼지김치찜이나 콩비지찌개 등을 만든다. 서울 자취방에선 구경도 못 하는 메뉴다. 나는 주방을 맴돌며 냉장고에서 갓 나온 차가운 햄이나 두부를 손으로 주워먹는다. 엄마는 "먹지마! 그거 배아파! 이거 간이나 좀 봐" 하면서 찌개 국물이나 익은 고기를 입에 넣어준다. 나는 숟가락이 앞니를 스치자마자 "오오 대박 개맛있어!" 정도의 리액션을 보인다. 물론 실제로도 맛있어서 동생과 나는 100% 확률로 폭식한다. 우리는 설거지나 청소 정도의 노동만 제공하면 이 모든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솔직히 엄빠 집만큼 혜자한 곳이 없다.


하지만 혜자로움과는 별개로 매주 오이도에 내려가긴 어렵다. 주말엔 영이도 만나야 하고 몇 안 되는 친구들도 봐야 하고 따로 할 일도 있고... 이거 저거 몰아서 하려다 보니 주말은 땅에 떨어진 포카칩처럼 조각조각 나곤 한다. 딱히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라 더 빡친다. 지난 주말엔 정말 나노 단위로 움직였다. 엄빠의 소집 명령에 금요일 저녁엔 오이도에 가고 토요일 오전엔 서울로 올라가 영이를 보고 일요일 낮엔 할 일을 하고 저녁엔 친구들을 봤다. 이 정도면 업무 스케줄보다 더 빡세다. 애초에 주말이 3일이면 이런 불상사가 없을 텐데...


이건 마치 하나의 파이를 다수의 사람들에게 조금씩 나눠주다 보니 누구 하나 만족스럽지 못 한 것과 같다. 내 파이의 경우 영이와 엄빠에게 가장 많이 분배된다. 그럼에도 모두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파이에 대한 양측의 주장은 대략 이렇다.

영이 측: 집에 매 주 갈 필요는 없다. 격주로 가도 된다.

엄빠 측: 시간 날 때 집에 오는 게 아니라 시간을 내서 와라 + 할머니가 금요일 저녁 마다 너네를 얼마나 보고 싶어하는지 아냐 + 애미는 갱년기다 이자식들아 + 애비는 빈집증후군에 걸린 것 같다 + 에 그리고 또...(생략)

줄다리기의 줄이 되어 양쪽에서 잡아 당겨지는 느낌이다. 심리적으로 홀쭉해진다.


특히 집에 내려가지 못 하는 주말이면 나는 깊은 부채감에 시달린다. 내가 당장 부모에게 해줄 수 있는 건 같이 시간을 보내는 일뿐이다. 그런데 그마저 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 하면 부모를 극진히 생각하는 효녀 같은데 사실 아무 것도 안 하고 그저 죄책감만 느낀다. 효도는 아가리로만 하는 편. 할 일은 안 하면서 '아 해야 되는데'만 나불거리는 것과 비슷하다. 개천의 사금만큼 잔류하는 소량의 효심도 엄빠의 '퇴근했으면 퇴근했다고 카톡을 해야지'라는 잔소리에 입 속의 살치살처럼 사르르 녹아버린다.


집에 내려오면 이러한 효심 파괴 모먼트가 끊임 없이 이어진다. 범인은 주로 할머니다. 금요일 저녁에 오면 "뭐 한다고 이렇게 늦게 오냐" 토요일 오전에 오면 "어제 오지 뭐 한다고 토요일에 오냐" 다시 서울에 간다고 하면 "너는 부모보다 중헌 게 없는디 뭐 한다고 냉큼 올라가냐" 등등 다채로운 '뭐 한다고' 시리즈로 손주들을 질책하신다. 이 질책은 우리 엄마에게도 이어진다. 주로 "애들 과일 좀 맥여서 보내지" "애들 저녁 좀 맛있는 거 해 맥이지" "애들 떡 해온 것 좀 들려보내지" 등등 먹거리에 대한 내용으로 발현된다. 어르신의 손주에 대한 집착과 먹거리에 대한 집착이 합쳐지면 어떤 자손들은 비만으로, 어떤 자손들은 노동으로 고통받는다.


그나마 자식들의 독립에 가장 겸허한 사람은 엄마다. 아빠와 할머니가 자식들에게 서운함을 티내는 편이라면 엄마는 자식들이 뜻 대로 되지 않음을 받아들이는 편이다. 아빠와 할머니가 자식놈들 언제 오니 왜 안 오니 할 때도 엄마는 "때 되면 오겠죠"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두세요"라고 말하곤 한다. 자식들은 붙잡으면 붙잡을 수록 오히려 떠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사실이긴 하다.

엄마는 언젠가 "너희를 짝사랑을 하는 기분이다"라고 한 적이 있다. 머리로는 자식들에 대한 서운함을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마음이 그렇지 못한 날이었던 것 같다. 나는 아무리 해도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엄마를 사랑할 순 없어서 잠자코 듣기만 했다. 원래 서운한 티를 내는 사람보다 안 내는 사람의 속이 더 못 쓰게 되는데 엄마의 속이 그랬나보다.


아빠의 경우 속절없는 딸 바보에 속한다. 내가 기숙사에 들어가던 날에도, 셰어하우스에 들어가던 날에도, 전세집에 들어가던 날에도 아빠는 주인 잃은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지었다. 요즘엔 내가 오이도에서 서울로 올라 갈 때 비슷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가끔 아빠는 무슨 낙으로 살까 생각한다. 아빠는 술담배도 안 하고 취미생활도 없기 때문이다. 사실 무슨 낙으로 사는지는 뻔하다. 나와 동생을 보는 낙으로 살겠지. 하지만 나는 모르는 척 "아빠 티비 그만 봐~ 아빠는 왜 취미가 없어?"라고 묻는다. 취미생활 할 돈이랑 시간으로 키워놨더니 이딴 소리나 하는 딸래미를 보면 아빠는 어이가 약간 털리겠지.

언제 한 번 등본을 떼느라 가족들의 이직 내역을 쭉 본 적이 있다. 아빠는 경산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시흥으로 시흥에서도 몇 차례에 걸쳐 이직을 했다(물론 엄마도 만만치 않았다). 이전 회사의 퇴사와 다음 회사의 입사 사이는 길지 않았다. 대부분 우리를 키우기 위해 했을 이직들. 나는 그 등본을 보며 생각했다.

'애 낳지 말아야지'


나는 이 모든 마음들을 모르는 척한다. 손주들을 하루라도 더 보고 싶은 할머니의 마음과 서운해도 티 내지 않는 엄마의 마음과 자식 보는 낙으로 살아온 아빠의 마음을 나는 모르는 척한다.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부모의 고생을 덜 알고 있는 척한다. 더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차라리 철없는 자식새끼 포지션을 취한다.

나에 대한 부모의 마음과 날 키우기 위해 그들이 했던 고생을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부모가 내게 바라는 것은 그리 크지 않다. 집에 자주 오고 연락 자주 하고 회사 성실히 다니고 명절이나 어버이날엔 다만 얼마라도 용돈 챙겨드리고. 하지만 나는 그것조차도 잘 해낼 확신이 없다. 그래서 그냥 다 쌩 까는 방법을 택했다.


아, 왜 고등학교 기술 가정 시간에는 이런 것을 가르쳐주지 않았는가. 너희는 약 7~8년 후에 집에서 독립을 할 것이고... 그때 너희의 부모는 아마 갱년기일 것이다... 너희가 벌어들이는 수입은 얼마 없을 것이며.. 그저 부모에게서 자유롭고 싶은 마음뿐일 것이다... 이때 부모와 잘 지내려면 이러저러해야 한다...

왜 이런 꿀팁은 안 알려주고 염병할 반바지 만들기나 수행평가로 내줬을까. 반바지 입구 막아서 F 받은 거 생각하니까 아직도 수치스럽고 그렇다.


+전세로그 05. 20

(남의 집) 전세로그. 친구가 행복주택에 당첨 돼서 놀러가 봤다. 원룸인데 진짜 넓고.. 신축이라 모든 것이 새것이었다. 나는 우리 집을 사랑하지만... 그래도 쪼꿈.. 쪼옦꿈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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