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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떡씨 May 23. 2019

[글로그 15] 대작가의 고뇌

아이디어는 안 나오고 헛구역질만 나왔다

'무언가'가 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일 수록 그 '무언가'로 불리게 되면 격하게 손사래를 친다. 예컨데 


 "아이구 박사님~" 


 "아하이 참 아직 졸업논문 심사 중인데 뭔 소리야~" 


같은 경우다. 본인의 겸손을 드러내는 행동이기도 하고, 혹시나 '무언가'가 되지 못 했을 때의 창피를 줄이기 위함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언가'가 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경우엔 오히려 '무언가'라는 호칭을 더 당당히 사용할 수 있다. 내가 대작가라고 번연히 말하고 다니는 이유다.




대작가 빵떡씨의 하루는 카톡으로 시작된다. 동생방, 대학 동기방, 대외활동방, 가족방, 고등학교 친구방 등등의 단체 카톡방을 열어 '퇴근하고 싶다' '왜 아직 화요일이냐' 같은, 어제도 하고 지난 주에도 하고 지난 달에도 했던 푸념을 반복한다. 내가 '나는 여기서 이러고 있을 사람이 아닌데' '어서 대작가로 유명해져야 하는데' 같은 얘기를 하면 지인들은 '맞다 맞다 빨리 인플루언서가 돼라' '그래서 나를 고용해라' 하며 맞장구를 친다. 얘들은 인생에 희망이 없다 없다 이제 내게 기대를 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착해 빠진걸까. 




동생 효석은 내 대작가 놀이의 가장 좋은 제물이다. 걔도 죽도록 일하기 싫어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내 장단에 맞춰서 놀아준다. 우리는 카톡을 하며 이미 대작가 빵떡씨의 싸인회도 기획해 놓았다.


 '나는 책 10쇄를 찍으면 싸인회를 열 거다'


 '힙하고 가까운 연남동에서 여는 게 어떠실런지요 대작가님'


 '아니 나는 우리 집 앞 카페에서 할 거다'


 '팬들이 찾아오기 힘들 텐데요... 교통편도 줮 같아서..'


 '대작가의 친필 싸인을 받기란 원래 힘든 것..'


 '아하...! 그렇구 말구지요 대작가님'


 '그러고 <세바시>에 나가서 강연도 할 거다'


 '오옷... 오피니언 리더들만 나간다는 세바시..!'


 '여러분, 좋아하는 일을 하십쇼! 열정!! 카르페디엠!!! 현재를 살아라!! 하면 이제 관객들이 눈물줄줄 콧물줄줄 흘릴 것이다'


 '맞습니다! 밀레니얼 세대를 위해 좋은 말씀 전해주시지요'


 '하 일하기 싫다'


 'ㅇㅇ.. 빡치네...'


현타가 오면 급작스럽게 역할극을 마무리 한다. 나는 대작가가 되면 효석을 월급 300만 원에 고용하겠다고 약속했다. 월급이 많네 적네 싸우다가 존나 의미 없어서 관뒀다.




대작가의 고뇌1. 달리기


대작가의 삶은 녹록치 않다. 명작을 탄생시키려면 그 만큼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창작의 고통을 잊기 위해 달리기를 해보기로 했다. 왜 하필 달리기냐 하면, 무라카미 하루키도 매일 달리고, 이슬아도 달리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했다. '힙한 작가라면 모름지기 달리기를 해야 하는군' 나는 마라톤 경험자인 효석을 데리고 홍제천에 나갔다. 홍제천은 산책로가 잘 닦여 있어 뛰기에 아주 좋다. 효석은 가볍게 5km를 뛰자고 했다. 나는 가볍게 끄덕였다. 우리는 홍남교에서 출발했다. 0.5km 정도 뛰었을 때였다.


 "동생아.. 헉... 이제 된 것 같다"


 "?"


 "ㅎ헉.. 이 정도 뛰었으면... 하... 작가 느낌 충분한 것 같아"


 "개소리야 너 5m 뛰었어"


 "아니.. 헉... 헉.. 시발... 창작의 고통 없어진 것 같아... 응..? 동생아.. ㅎ억..헉... 이게 더 고통스러운데.. 헉... 동생아?"


사실 효석은 특공수색대 출신으로 포기를 모르는 사나이다. 그는 대작가라면 이 정도는 뛰어야 한다는 둥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하며 멈춰 선 나를 퍽퍽 찼다. 나는 당장 대작가 포기 선언을 했다.


 "나는.. 헉... 회사원이야.. 헉헉... 자까 아냐..헉..."


 "포기하지 않습니다!! 고개 들고! 정면 보고!! 헉헉거리지 않습니다!! 팔 떨구지 않습니다!!"


효석은 직업 군인을 했어야 하는게 아닐까. 그는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어쩌구 하는 무시무시한 노래를 부르며 나를 완주시켰다. 나는 집에 오는 내내 히드라처럼 침을 뱉었다. 집 방바닥에 뻗어서도 아이디어는 안 나오고 헛구역질만 나왔다.




대작가의 고뇌2. 교훈


나는 평소에 겪은 재미있는 일을 글로 옮기길 좋아한다. 달리 쓸 소재가 없기도 하다. 나는 약간 재미있는 일을 존나 재미있는 일처럼 부풀리기 위해 야부리와 비속어를 적절히 섞어 가며 쓴다. 이때 거의 희열을 느낀다. 낄낄거리며 쓰다 보면 에피소드를 풀어내는 부분은 후딱 지나간다. 문제는 글을 마무리할 때 생긴다. '이런 지랄 저런 지랄을 하고 놀았다' 다음에 올 '그래서 나는 이런 것을 느꼈다'가 떠오르질 않기 때문이다. 글에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는 건 일종의 강박이다. 일기 써서 검사 받던 초등학생 때부터 '오늘도 즐거운 하루였다'가 될 지언정 느낀점을 뭐라도 한 줄 써야 한다는 주입식 교육을 받은 결과다. 뭔가 교훈적이고.. 통찰력 있고... 인사이트가 있고.. 같은 말이구나 아무튼... 그런 내용으로 마무리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느낀점 같은 건 없다. 이 때부터 어거지로 좋은 말을 갖다 붙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추억은 소중하다...' '역지사지는 중요하다..' '배려하자..' 위에서 실컷 쌍욕 해놓고 배려하라니... 일단 읽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으면서.. 어불성설이다. 


메시지를 생각하고 그 메시지를 잘 전달할 스토리를 짜는 게 순서인 것 같은데, 나는 재미있으면 일단 쓰고 거기에 메시지를 끼워 맞춘다. 아다리가 안 맞는다. 하지만 이것은 어떤 혁신이 아닐까. 앞 뒤가 안 맞는 글! 읽어봤자 건질 게 없는 글! 전에 없던 새로운 글! 역시 대작가는 혁신적이어야 한다. 너무 혁신적이라 아무도 안 읽는다는 단점이 있다.




대작가의 고뇌3. 인권침해


일상 얘기를 쓰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지인들이 글에 많이 나온다. 회사 일기를 쓸 땐 대표부터 팀원까지 돌아가며 소재 거리가 돼 주었다. 물론 그들은 이 사실을 모른다. 글로그를 쓰고 부터는 하우스 메이트인 동생이 거의 매번 나온다. 다른 지인들은 가명으로 쓰지만 동생은 빠꾸 없이 실명으로 나간다.




최근 '슬픈 젖꼭지 증후군' 에피소드에도 동생이 등장했다. 그 글에서 우리는 젖꼭지 만지는 동생과 야동 보는 누나로 그려진다. 나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웃기는 데 환장해서 이따금 자폭을 한다. 나는 그 글을 업로드 하고 바로 동생에게 읽어보라고 했다. 왠지 아구창도 먼저 맞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동생은 심드렁하니 글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얼굴이 급격히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나는 잠시 혼자 젖꼭지를 매만지는 효석에 대해 생각했다' 부분에 다다른 것 같았다. 효석은 땅을 치며 울부짖었다. 


 "인권!!! 내 인꿔언!!!!!!" 


칸트가 말하길 인간은 날 때부터 천부인권을 갖는다고 했다. 효석은 방금 그것을 상실한 기분을 느낀 것 같았다. 나는 효석이 가슴을 쥐어 뜯으며 비통해 하는 모습이 너무 웃겨 옆에서 거의 울었다. 나는 눈물을 훔치며 효석을 위로했다.


 "동생아 어차피 내 글 읽는 사람 좆도 없단다" 


하지만 그는 본인이 묘사된 모습에 꽤나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나는 大작가의 大아량으로 효석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대작가의 글의 소재가 되는 것은 그리 흔한 기회가 아니란다.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까지 말하고 방을 뛰쳐나와야 했다. 효석이 나를 걷어 차려 했기 때문이다. 나도 본의 아니게 지인들을 희화화해 미안한 마음이다. 사실 본의 아닌 건 아니다. 아무튼 내 글은 분명 그들이 후대에 알릴 만한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물론 젖꼭지를 만졌다는 것은 후대에 알리기에 조금 민망스럽겠지만...




+ 전세로그 05. 23 

효석과 5km 뛴 날. 앞으로 이런 날은 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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