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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효석 Dec 10. 2021

습관의 힘


2011년 5월쯤. 폴란드의 구 수도였던 크라코프를 여행하던 때의 일이다.


가난한 배낭 여행자였던 나는 운좋게 동갑내기 부부가 살고 있는 작은 아파트의 빈 방에서 며칠간 머물 수 있게 되었다. 폴란드는 역사와 전통이 있는 멋진 국가이지만 경제가 썩 좋은 나라는 아니다. 게다가 그 친구는 그런 나라에서도 어렵게 살고 있는 30대 초반의 청년이었다. 그의 직업은 인근 공장에서 생산직을 하고 있었고 아내는 따로 일을 하지 않고 살림을 하며 보내는 평범하지만 넉넉하진 않은 가정이었다. 우리는 나이도 같고 해서 금방 친해졌고 매일 각자의 일과를 하고 저녁에는 함께 차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내가 그 집에 가서 보고 처음 놀랐던 것은, 굉장히 허름한 아파트이고 낡았지만 거실엔 푹신한 소파와 마주보고 있는 오디오 세트가 있었고 한쪽 벽면은 책과 음반들로 가득 차 있었다. 클래식은 돈이 있는 사람이 하는 취미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던 내 스스로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밤마다 차를 마시며 그가 추천해준 음악을 그의 해설과 함께 듣곤 했는데 나 역시 오랫동안 음악 애호가였지만 그처럼 탁월하게 음악과 역사를 설명하는 친구를 보지 못했다. 가장 기억나는 것은 런던 심포니가 연주한 명반 고레츠키 교향곡 3번이었는데, 이곡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으로 유명한 작품으로서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시, 아우슈비츠 포로소용소 벽에 칼로 새긴 시를 가사로 만든 노래 등이 포함된 작품이다. 미국 빌보드 클래식 차트에서 31주 연속 1위, 75주간 차트인, 영국 베스트 음반 차트에서 모든 장르 통털어 전체 6위, 한국에서도 3만 5천장이 팔린 그야말로 현대 음악의 전무후무한 작품이다. 


그 친구의 집은 쉰들러리스트의 주인공 오스카 쉰들러의 공장 옆에 있었는데, 폴란드의 역사를 가사로 삼은 폴란드 작곡가의 작품을 폴란드인 친구의 설명과 함께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영광이었다.


그는 그렇게 매일 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음악앨범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아낌 없이 나누어주었고, 나중에는 미술, 재즈 등 다양한 분야에서 놀랄만큼의 지식을 보여주어 설명 그 자체보다는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해박할 수 있을까 감탄하며 그 시간을 보냈다.


내가 그 집에서 머문 마지막 날, 나는 나의 부끄러운 편견을 숨기며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 많은 것들을 다 알고 있냐고 말이다. 그 이면에는 대학도 나오지 않은 가난한 공장 노동자가 내 주변의 엘리트 음대를 졸업한 이들보다 훨씬 더 해박함에 대한 부끄러운 놀라움이있었음도 사실이었다.


그의 답은 간단했다. 어려서부터 즐길 거리가 없어서 일과를 마치면 매일 저녁 음악을 듣고 책을 읽었다고 한다. 말은 쉬워 보이지만 하루에 서너시간씩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 생활을 근 20년간 "매일"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거기서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그는 돈을 벌어 월급을 쪼개 책을 사서 읽고 있었다.


내가 그때 깨달은 바를 가지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무언가 하나를 정해서 10년간 노력했으면 지금 한 분야에서는 그만큼의 해박함을 갖추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10년 뒤에 똑같은 후회를 다시 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새로운 도전과 습관을 반복해야하지 않을까. 매년 연말이 되면 그 친구가 생각난다. 이게 진짜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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