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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식 화장실

by GQ

언니는 할머니네 집을 좋아하면서도 할머니네 재래식 화장실에 가는 것을 나보다 더 두려워했어. 화장실에 갈 적마다 할머나나 나를 화장실 바깥에 세워두고 일을 봤어.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中-


어두워진 뒤 화장실에 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 집 화장실은 안채에서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어린 내게 그 마당은 끝없이 넓고 광활해 보였다. 밤이 되면 30촉 백열등 하나가 화장실을 겨우 밝혔는데, 그 빛은 은은하다 못해 음산하기까지 했다. 희미한 불빛은 어둠을 걷어내기보다 오히려 어둠을 도드라지게 했다.


형은 밤에 큰일을 보러 갈 때면 작은 누나나 나를 꼭 데리고 갔다. 화장실 바깥에 우리를 세워두고도 쉬지 않고 확인했다. "너 가면 안 돼~", "보면 안 돼~"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집 재래식 화장실엔 문이 없었다. 이것은 확인이나 다짐의 차원에서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어둠 속 소름끼치는 정적을 깨려는 몸부림이기도 했다.


화장실 옆에는 양철 슬레이트로 대충 지어놓은 디딜방앗간이 있었다. 낡은 양철 지붕은 살짝만 바람이 불어도 덜컹거렸고, 그 소리는 마치 인기척처럼 느껴졌다. 방앗간 안에는 동네 사람들의 상을 치를 때 쓰는 상여를 보관했다. 죽은 자들을 실어 나르던 상여가 화장실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했다. 엄마 말로는, 처음 시집왔을 때 화장실에 가면 '쿵덕쿵덕' 방아 찧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불도 켜지지 않은, 아무도 없는 방앗간에서 말이다.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밤마다 형은 볼일을 보러 갔던 것 같다. 겁도 많은 사람이 왜 하필 규칙적인 배변습관이 들었는지 안타까운 노릇이었다. 형을 따라가 준 대가로 나는 50원씩 사례금을 받았다. 형은 돈이 어디서 났을까? 언젠가 명절에 들은 이야기로는, 엄마가 형에게 주기적으로 500원씩 용돈을 주셨다고 했다. 화장실 공포 해소용 동행자를 위한 사례금을 지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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