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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by GQ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잊혀진 약속들. 지키지 못한 채 사라져버린 약속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中-


약속을 잘 하지 않는 편이다. 지키지 못할 것 같은 두렴움 때문이다. 약속을 어겼을 때 상대방이 느낄 실망감과 나 자신에게 느낄 실망감이 지나치게 큰 무게로 느껴진다. 안다. 과잉이나 강박이라는 것.


요즘은 예약 없이 갈 수 있는 미용실이 사라져가고 있다. 예전엔 아무 때나 찾아가도 괜찮았다. 혹여 손님이 있으면 소파에 앉아 여성 잡지를 반쯤 뒤적이다 보면, 내 차례가 오곤 했다. 내겐 예약도 약속이다. 예약을 하는 일은 늘 부담스럽다. 예약이 싫어서 미용실도 안 가게 되고 몇 년간은 혼자서 머리를 깎았다. 이제 어쩔 수 없이 미용실은 가지만, 지금도 여전히 예약을 해야 하는 음식점은 되도록 가지 않는다.


사람들과의 약속은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지키려고 한다. 다수의 모임일 땐 모호한 태도로 약속을 피하기도한다. '갈 수 있으면 갈게' 따위의 말로.


로또에 당첨되면 1억은 너에게 주겠노라는 장난같은 약속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 혹여 로또에 당첨되면 지키지 못한 나에게 실망할 것 같아서다.


'혹여 로또에 당첨되면 이라니'…. 참 부질없는 강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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