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

by GQ

일요일 늦은 저녁, 엄마가 잠자리에 든 것을 확인하고 간병인과 자리를 교대했다. 당분간 주말에는 내가 엄마를 맡고 주중에는 간병인이 맡기로 했다. 한밤중에 운전해서 희령으로 돌아가면서 나는 엄마를 내내 간병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애썼다.

-밝은 밤 中-

동네 한량이셨던 아버지는 어느 때부터인가 소처럼 일하셨다. 엄마는 늘 "니네 아빠는 소 같다"고 말씀하셨다. 아마 빚이 생기고 나서부터였던 것 같다. 소 같은 아빠 밑에서 나 역시 비슷한 처지가 되었다. 등교 전에 농약을 주고, 하교하면 경운기에 시동을 걸었다.

전주로 고등학교를 온 건 일종의 도피였다. 평일엔 농사일을 피할 수 있었지만, 주말엔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했다. 아버지는 내가 오면 해야 할 일들을 꼼꼼하게 미뤄두셨다. 고3이 되어서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꼭 그것 때문에 공부를 못 한 건 아니었지만, 언젠가 아버지가 "난 네가 당연히 서울대에 갈 줄 알았다."라고 말씀하실 때는 목구멍까지 할 말이 차 올라왔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긴 방학 내내 시골집에 머물며 일을 했다. 외딴 섬에 노예 생활을 하는 것 같았다. 다른 친구들처럼 여행도 가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연애도 하고 싶었다. 새벽 기도를 다녀오신 아버지는 자고 있는 날 늘 다그치듯 깨우셨다. "해가 중천이다. 잠이 사탄이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전주로 향할 때는 홀가분함보다 죄책감이 더 컸다. 내가 농약 줄을 안 잡으면 아버지 혼자 어떻게 농약을 주시지? 경운기를 1단 저속으로 놓고 운전대를 잡지 않은 채, 혼자 석회를 뿌리시다가 사고가 나면 어쩌지? 배추 모종을 나르는 일손이 부족해서 일이 더뎌지면 어쩌지?

아이를 낳고 나서야 농사를 도우러 가는 일이 줄었다. 사실 진작 그랬어야 했다. 일을 많이 한다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골병만 나고 빚은 줄지 않았다.

연세가 많이 드신 부모님이 자주 편찮으시다. 자식으로서 해야 할 도리와 내 삶 사이에서 고민을 해야 할 순간이 있다.


여전히 내 죄책감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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