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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Q May 23. 2024

옳음과 친절함 중에 선택을 해야한다면......

앞차의 범퍼와 종이 한 장 차이 간격, 옆 차선에선 양보란 없다는 기세의 8톤 트럭이 바짝 쫓아오고 있었다. 미하엘 슈마허를 빙의한 택시 기사님은 환상의 칼치기로 8톤 트럭 앞으로 끼어들었다. 뒷좌석에서 슬그머니 속도계를 보니 시속 146km였다. 미친 듯이 속도를 내며 신호와 과속방지턱을 무시한 채 달리는 택시기사님이 슈퍼히어로처럼 느껴져 눈물이 찔끔 나올 뻔했다. 



생존수영이라는 프로그램을 다녀온 뒤부터 아들은 열이 나고 속이 안 좋다고 했다. 엄살이 심한 녀석이라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꼭 엄살만은 아니었나 보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오는데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아프다며 학원도 빼먹고 집에서 쉬고 있던 아들의 전화였다. 으앙 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말을 하는 통에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대충 열이 나고 속이 안 좋아서 죽을 것 같다고 했다. 얼마나 야단스럽게 울던지, 엄살쟁이인 걸 아는데도 마음이 편칠 않았다. 

"아빠, 빨랑와. 나 죽을 것 같아."

'울고 불고'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장 적확하게 표현하는 음성이 있다면 아마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직장 회식이 있던 날이라 아침에 후배 차를 얻어 타고 온 터라 차도 없었다. 전화를 끊지 말아 달라는 아들의 간절한(?) 요청에 통화를 하면서 택시를 잡아탔다. 수화기에서는 아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나는 달래기에 급급했다. 

"응~ 아빠 금방 가. 방금 택시 탔어. 조금만 기다려~"

딱히 택시기사님에게 빨리 가 달란 말씀을 드리지 않았는데, 통화 내용을 들으신 기사님께서 상황을 파악하신 듯했다. 기사님은 풀액셀을 밟으셨다. 관성의 법칙을 증명이라도 하듯 내 몸은 택시보다 한참 뒤에야 속도에 몸을 실었다. 탑건: 매버릭에서 10G의 중력가속도를 버티는 느낌이랄까...... 는 좀 오바고. 어쨌든 엄청난 속도로 달리기 시작하셨다. 룸미러로 비친 기사님의 눈빛은 '고든 국장의 긴밀한 첩보를 들은 배트맨'의 그것이었다. 


사거리에서 신호가 걸리면 우회전을 해서 다시 유턴을 해 신호를 무력화시켰다. 과속 방지턱을 넘을 땐 쇼크업소버가 나가진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좌회전 신호에 차들이 길게 대기하고 있자 맨 앞 차 앞으로 끼어들었다. 차들이 빵빵 거리고 불만을 토로했다. 속으로 이렇게 까지 할 일인가? 이 정도면 우리 아들이 엄살이면 속죄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지는 거 아닌가 싶었다. 내가 부탁드리진 않았지만 어쨌든 수많은 위반들로 평소 출퇴근 30분 거리를 18분 만에 주파했다. 단 한마디도 하지 않으시던 기사님께서 집에 도착하자 딱 한마디를 하셨다.

"어서 들어가 보세요~"

속도위반과 교통 체계 교란 속에서 만들어낸 18분이었기에, 감사하단 말씀을 드려야 하는 것이 적절한지 몰라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러다 번뜩, 내가 좋아하는 영화의 명언이 생각났다. 옳음과 친절함 중에 선택을 해야 한다면 친절함을 선택하라. 택시 문을 닫기 전에 감사함을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해요~ 복 받으실 거예요. 기사님!"

기사님은 별 거 아니라는 듯 한쪽 눈을 찡긋하셨다. 그때는 정말 슈마허보다 배트맨보다 더 멋있어 보였다. 


끼어든 차량들과 우리나라의 교통법 체계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하지만 총알택시 기사님의 따뜻한 마음엔 여전히 감사를 드린다. 혹시 과속 딱지가 날아왔으면 제가 내드릴게요. 복 받으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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