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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웃기지 못하는 이유

by GQ

별수 없다. 지금도 녹화가 끝나면 곧바로 PD에게 전화를 건다. "이 부분은 과했어요." "저 표현은 비하하는 것 같아요." "그 장면은 편집해주세요." 집에 돌아와 생각해보면 마음에 걸리는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웃음 하나가 상처가 되고, 농담 하나가 차별이 될 수 있다.

-삶이라는 완벽한 농담 中-


옛날에 방영되었던 무한도전이나 전원일기는 재방송을 종종하지만, 과거 개그프로는 재방송이 없다. 뭐 올드한 개그라 경쟁력이 없기도 하겠지만 반인권적인 소재가 난무했던 탓도 있을 것이다. 그 시대엔 개그맨들이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흑인 흉내를 냈고, 비만과 못생김이 개그의 소재였고, 성소수자를 조롱했고, 폭력이 슬랩스틱으로 포장되기도 했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20대 때만해도 술자리에서 웃길 수만 있다면 세상의 모든 소재를 다 갖다 쓸 정도로 반인권적인 토커였다. 누군가는 후진적 개그와 무지의 산물이라고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게 그게 문제인지도 모르는 시대였을 뿐이다. 아무리 진보적인 생각도 사회적 통념을 뛰어넘기는 쉽지 않다. 그냥 그런 시대에 우리가 살았다.


시대가 변하고 조심할 것들이 많아졌다. 술자리에서 실컷 떠들고 나서 집에 와서 이불을 덮으면 마음에 걸리는 구석들이 자꾸 떠올라 마음 편히 잠이 들지 못했다.


누구도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재밌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 이후로, 나는 꽤 과묵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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