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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치지 말아야 할 것

by 초이조


타국에서의 1년 살기는 생각만큼 달콤하고 아름답지 않음을 느끼는 중이다. 여행이었다면 아름다운 것만 보고 맛있는 것만 먹었겠지만, 생활한다는 건 스쳐 지나감이 아니라 현실이라 그런지 생각과는 많이 다르다. 행정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것도 많고 이것저것 챙겨야 할 것도 많고... 거의 한 달째 쇼핑만 주야장천 하고 있다. 사면서도 '이거 한국에 있는 건데 꼭 필요한가?', '1년 동안 열심히 쓰면 되지' 고민만 수십 번 하다가 결국엔 결제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사실, 물건을 사는 건 그렇게 어렵거나 힘들지 않다. 돈만 있으면 되니깐. 그런데 행정 절차는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다. 독일에 와서 거주허가를 받아야 한다. 거주허가란 체류법에 의거해서 그 나라 외국인관청에서 발급하는 체류증이다. 이를 위해서 한국에서부터 제출 서류를 여러 번 확인하고 꼼꼼히 준비해서 왔다. 그런데 이 무슨 일인가. 제출한 서류 중에 학위증명서에 있는 학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나빈이지 뭔지 하는 곳에서 내가 나온 학교와 학위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전혀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던 부분에서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해 버렸다. 연락을 받은 당일은 멘털이 제대로 흔들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밤을 지새웠다. 자는 것조차 사치라고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루가 지나도 마음은 여전히 불안하고 머리는 복잡했다. 그 와중에 약속된 일정이 있어서 기차를 타고 움직일 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이 불안감을 감추기 위해 자리에 앉자마자 스마트폰을 켜고 이리저리 나와 같은 상황이 있는지, 방법이 없는지를 찾아보다가 문득 차창 밖을 보았다.


창 밖에는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눈이 흩날리고 있었고 고요한 전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도심에서는 볼 수 있는 드넓은 땅과 이쁘게 만들어진 독일 집들이 보였다. 그렇다. 한 손만 한 스마트폰 화면에만 집중하고 있는 사이에, 기차는 독일의 아름다운 시골길을 열심히 달리고 있었고 나는 그 모든 걸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아무리 찾아본다고 한들 당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데도 말이다.


조급함과 불안함에 휩싸여 정작 눈앞에 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이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폰은 주머니에 넣어두고 지나가는 경치를 한동안 멍하니 바라봤다. 몇 분 정도 시간이 지나자 거짓말처럼 마음이 차분해지는 걸 느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되겠다는 생각도 정리가 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단지 지나가는 경치를 바라보았을 뿐인데도 말이다. 눈앞에 있는 아름다음을 놓치며 나는 대체 무슨 짓을 한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곳에서 살아가는 건 새롭게 태어나는 것과도 같다. 익숙하고 당연한 것들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왜?라는 의문을 품지 않고 당연시했던 것들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 오면 언제 무슨 일이 갑자기 생길지 모르는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내 의지로 바꿀 수 없는 것에 애쓰다가 정작 눈앞에 소중한 것을 놓치는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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