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 머스탱으로 달렸다.
누군가는 “그 짓을 왜 해?”라고 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라스베이거스까지 운전해서 다녀오는 일. 이해는 간다. 없는 시간 쪼개서 오가는데 거의 10시간을 허비해야 하니까. 여행의 가치를 어디 두느냐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버리는 시간일 수도, 또 누군가에게는 귀중한 경험의 시간일 수도 있다. 나는 철저하게 후자에 가깝다. 오도 가도 못할 정도로 꽉 막힌 도로만 아니라면 전 세계 어디에서든 운전을 즐긴다. 오히려 자동차광보다 레이싱광에 가깝다. 1년에 몇 번은 서킷에 가니까. 2L 이상의 엔진을 탑재한 자동차라면 오케이다. 미국이니까 머스탱을 빌렸다. 2012년식 3.7L 6기통 엔진에 배기음이 매력적인 전형적인 아메리칸 머슬카. 그르릉거릴 정도는 못 돼도 운전석에서 즐기기에는 충분했다. 약 450km에 달하는 두 도시를 잇는 구간은 전혀 어려울 게 없는 쭉 뻗은 도로였다. 샌 안토니오 산을 한없이 올라 다시 아슬아슬하게 내려올 때면 창밖 분위기는 완벽하게 변화한다. 광활한 초원이 펼쳐지고 높은 나무는 없다. 시속 70~80마일 속도로 내리막길을 달리는 수백 대의 자동차를 보고 있노라니 나스카 레이싱이 떠오른다. 아니, 누구에게는 <패스트 앤 퓨리어스>일 지도. 라스베이거스로 향하는 15번 프리웨이 아래로 미국 최초의 대륙횡단 국도인 루트 66이 언뜻 보인다. 좀 더 오래 걸리더라도 거기로 갈 걸 그랬나. 내 버킷 리스트 중 하나인 아메리카대륙 횡단 여행의 절반이 루트 66인데. 샌 안토니오 산을 넘어 모하비 사막으로 본격적으로 접어들 때 <바그다드 카페>가 떠오르는 건 나만 그런가. 빅터빌을 지나 바스토에 도달했을 때는 이미 캘리포니아의 화창한 날씨 따위는 없다.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뜨겁고, 따갑다. 더운 숨이 낯설다. 바깥에서의 1분이 대중목욕탕 건식 사우나에서의 1시간쯤 될까. 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겠다 싶은 것은 기분 탓이 아닐 게 분명하고. 라스베이거스로 향하는 15번 프리웨이에서 과감히 내려 동쪽으로 머리를 틀기만 하면 바그다드 카페까지는 어떻게 가볼 수 있었을 텐데, 하며 달래는 진한 아쉬움의 커피 한 잔. 아이스 커피를 마시고 있었던 것 같은데 왜 이리 뜨겁나?
모하비 사막을 가로지르는 동안 스티어링 휠을 왼쪽으로 혹은 오른쪽으로 크게 꺾을 일은 없다. 불타는 지평선, 초록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누런 대지가 시야 너머까지 펼쳐진다. 도로 오른편에 표시된 제한 속도는 시속 75마일인데, 내 속도는 지금 시속 90마일인가. 뒤에서 상향등을 깜빡이며 달려드는 흰색 카마로는 시속 100마일쯤 되려나. 우습게도 내비게이션은 여전히 캘리포니아다. 네바다 주로 넘어가기 전 마지막 관문이자 주유소는 시마 광산으로 향하는 초입에 있다. 보닛을 열어 엔진을 식혀야 할까. 바로 옆에 주차한 빨간색 닷지 픽업 트럭은 태양을 마주하고 있다.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날씨에 과연 엔진을 식힐 수 있을지는 대단히 의문스럽긴 하다만. 라스베이거스는 첫 번째이자 마지막 카지노 리조트인 프림으로 접어들면서 시작된다. 그 유명한 라스베이거스 간판을 보려면 프리웨이에서 좀 더 일찍 내려야 한다. 매캐런 국제공항 활주로 뒤 국도를 달리면 된다. 기념사진을 남길 게 아니라면 굉장히 번거로운 일이다. 그러니까, 주로 라스베이거스로 향하는 장면이 포함된 영화만을 보고서 환상을 품으면 안 된다.
돌아오는 길은 조금 더 멀다. 왕복 차선이 딱 붙어있지 않은 탓에 일부 구간을 좀 더 돈다. 굽이치는 곡선 구간이 추가된 셈이다. 덕분에 정체도 겪는다. 수백 대의 차량 행렬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고 생각해 보라. 시속 50마일로 달리는 정체 행렬이다. 데스 밸리 언저리에 다다르니 비가 내린다. 차 유리창을 뚫을 기세로 맹렬하게 지상으로 돌진하는 빗방울은 한국에서 경험하기 힘든 아주 매서운 국지성 소나기다. 저 멀리 수 킬로미터 떨어진 사막 한가운데서도 비가 내리는 게 보인다. 땅은 젖자마자 마른다. 기온은 섭씨 42도다. 빅터빌에 다다랐을 때, 나는 프리웨이에서 내려 루트 66으로 갈아타기로 했다. 바스토에서 동쪽으로 난 루트 66에 비해 로스앤젤레스까지 드문드문 이어진 히스토릭 루트 66은 과거의 흔적을 찾기란 좀처럼 어렵다. 영화에서 쉽게 접하던 쩍 갈라진 아스팔트는 그 정도는 덜해도 여전히 오랜 세월을 보낸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옆으로는 철길이 따라 나 있고, 아래위로 파도 타듯 울렁이는 이 국도에 관광객은 드물다. 머스탱이 운다. 스티어링 휠을 기민하게 돌릴 일은 여전히 없다. 남은 힘을 쥐어짜듯 엑셀러레이터를 더욱 짓누른다. 짙은 바다색이 노란 색온도와 절대 대비된다. 멀리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는 그대로고 바깥 공기는 여전히 후텁하다. 저 멀리 로스앤젤레스가 보인다.
글 & 사진 최중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