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중희 Aug 02. 2017

내게 너무 먼 제주

제주도와 인연 없는 한 남자의 넋두리

초등학교 6학년 때였나. 한겨울의 제주도가 마산보다 춥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 훨씬 남쪽인데 왜 춥지? 전날 동대문운동장 인근의 한 호텔에서 룸서비스로 시켜 먹은 ‘함박 스테이크’가 완전히 소화되지 않았던 게 단단히 한몫했을 거다.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며 아래가 아닌 위로 노란 액체가 나올 때까지 헛구역질을 해댔으니까.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고 어디론가 향하는 관광버스 안에서 나는 정신없이 곯아떨어졌다. 제주항에서 배를 타고 전라남도 해남까지 물을 저어나갔다. 제주도의 첫 번째 기억. 추위와 멀미, 그리고 초등학생이 겪기엔 너무나 심했던 두통. 수학여행지가 제주도로 결정 났을 땐 모두가 교실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불국사와 다보탑은 한참 전에 질려버린 참이었다. 통영에서 배를 탔고, 우린 널찍한 공용 객실에서 고스톱을 쳤다. 역시 의지와 상관없이 관광버스에 몸을 실어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유명한 관광지에서 기념사진을 남기기 바빴다. 당시에 드라마 <올인>이 크게 히트하고 난 후라 섭지코지는 개중에 가장 인산인해였다. 용머리 해안을 갔으나 그곳이 제주도 어디에 붙어 있는지는 크게 관심 없었다. 북쪽에 있으면 어떻고, 남쪽에 있다 한들 어떠랴. 한라산에 오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곳이 성산 일출봉이었나. 구름이 무척이나 낮았었는데. 성인이 된 후로 나와 제주도의 인연은 아주 딱 가냘픈 몸매의 여인만큼에 지나지 않았다. 꽉 채워지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품으면 어딘가 허전한. 하지만 놓고 있으면 안고 싶은 그 정도. 십여 년 만에 방문한 제주도는 어젯밤에 싸운 애인의 눈물처럼 하염없이 비만 내렸다. 북에서 동으로, 동에서 남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는 그렇게 자꾸 젖어만 갔다. 비취색 바다는 온데간데없이 거무튀튀한 흑색의 모습만을 보였다. 누가 제주도를 아름답다 했나. 고개를 가로저었다. 김녕해변은 황토색, 바람은 끈적한 회색, 지천으로 널린 현무암은 깊은 심연의 흑색. 

표선 해변

출장차 향한 제주도에서 나는 호텔에서 벗어나지 않기로 했다. 해가 뜨면 수영장에 나갔다가 속없이 불어오는 바람이 차갑게 느껴질 때면 셔츠로 온몸을 감싸고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애인의 등에 가로세로로 난 새하얀 자국에 가볍게 입술을 가져다 대는 것으로 시작해 서로의 체온을 올리기 바빴던 것 같고. 일주일간 머물렀던 제주도에서 나는 무엇을 보았나. 호텔방에서 저 멀리 보이던 약 2cm 폭의 바다. 손가락 한 마디도 채 되지 않던 새하얀 등대. 바로 옆에 있었음에도 발길 한 번 주지 않은 새하얀 해변. 애인의 매끈한 등과 아랫배, 그리고 곱게 자리했던 젖가슴. 왜 기억나는 게 그것밖에 없는 걸까.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며 어지러이 핸들을 돌릴 때, 그제야 나는 제주도를 보았다.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 그것과 맞닿은 검은 바다를 보는 게 구불구불하며 좁은 도로를 달리는 것보다 훨씬 신경이 예민해졌다. 어째서 나는 화창한 제주도를 단 한 번도 마주할 수 없는 건가. 왜 매번 울음을 그치지 않는 그녀의 몸에 올라서 있는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이런 것인가. 제주도를 사랑한다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그렇게 말하는가. 내가 본, 내가 느낀, 내가 말하는 제주도는 그들이 기억하는 모습과는 완벽히 다른 이면인데. 이곳의 매력은 어디에서 오나? 언제쯤 그녀의 수줍은 몸을 바라볼 수 있을까. 끓어오르는 정열을 다 바쳐 사랑할 수 있긴 한 걸까? 꿉꿉한 시트 위에서 몸을 일으켰을 때 애인의 등에 타고 흐르던 한 줄기의 땀방울을 보았다. 닦아내듯 어루만지자 가볍게 신음한다. 물을 잔뜩 머금은 스펀지처럼 온몸이 무겁다. 어제도 그랬다. 어제의 어제도, 몇 년 전의 어제도, 십몇 년 전의 어제도 그랬다. 메스꺼움이 가시지 않던 초등학교 6학년 때의 그 어제도 그랬다.


에디터 & 포토그래퍼 최중희

작가의 이전글 LA에서 라스베이거스까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