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데이 스니커즈.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는데요, 처음 산 스니커즈는 다름아닌 컨버스였어요. 척테일러였고 새빨간 로우톱 모델이었죠. 족히 두 사이즈는 큰 제품으로 샀거든요. 아, 그때는 그게 유행이었어요. 크게 신는 거. 끈을 꽉 졸라매면요 신발 앞코가 위를 향해 살짝 들려요. 지금 생각하면 진짜 이상한데 말이죠. 엄마는 ‘곤돌라신발’이라고 했었죠. 네 맞아요. 이탈리아 베니스에 가면 볼 수 있는 그 배요. 그것도 앞이 위를 향해 들려 있잖아요. 어쨌든, 그걸 꽤 오랫동안 신고 다녔어요. 그때 제 별명이 깔롱쟁이였거든요. 사실, 국민… 아니 초등학생 때 나이키도 신고 프로스펙스도 신고 그랬는데, 알잖아요. 그 신발 이름이 뭔지 알게뭐야. 안 그래요? 무슨 병이 도졌나봐요. 어느 날 정신 차리니까 처음 샀던 컨버스부터 지금 신는 신발까지 단 하나도 버린 게 없더라고요. 무슨 박물관에다 전시해도 될 것 같아. 어휴, 말도 마세요. 한 400켤레는 됐던가? 엄마가 죄다 내다 버리기 전까지는 그랬어요. 지금은 대충 300켤레는 될 거예요. 신발 모으는 걸 자랑처럼 생각했던 건 아니에요. 습관처럼 사고 처박아두는 게 일상이 되면요. 무감각해져요. ‘내가 지난달에는 뭘 샀지?’ 하고 기억을 떠올려봐도 가물가물해요. 치매가 오려나 싶다니까요.
네? 왜 스니커즈를 그렇게 신느냐고요? 지금 장난해요?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거예요? 어처구니가 없어서…. 스니커즈를 신는 데는 이유가 필요 없어요. 신어야 하니까 신는 거고, 한 달이 멀다 하고 ‘기깔’ 난 것들이 쏟아져 나오니까 사는 거예요. 지금 신발 신고 계시죠? 그거랑 같은 이유예요. 거 봐. 나이키 신고 계시잖아요. 질문 자체가 아이러니하다고 생각 안 하세요? 구두요? 제 돈 주고 구두를 사본 적은 없어요. 아, 있었나? 뭐 있긴 있네요. 뭐라고요? 그러니까, 다른 신발은 안 신느냐는 말이죠? 에이,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물어 봤어야죠. 오해하잖아요. 구두가 있긴 해요. 1년에 거기 발을 한 번 넣을까 말까 하긴한데…. 거의 신을 일이 없죠. 결혼식이요? 웃어도 돼요? 결혼식 갈 때 신는 스니커즈가 있어요. 반대로 장례식장 갈 때 신는 것도 있고요. 제가 슈트가 없어요. 딱히 입을 일도 없고. 대신에 블랙이나 네이비 컬러 재킷은 몇 벌 있죠. 거의 똑같이 생긴 팬츠도 컬러 별로 몇 벌 갖고 있으니까 경조사 때 입을 옷이 없어서 난감한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제 스타일대로 입고 전체 분위기에만 맞춰서 신발을 선택하곤 해요. 음, 주로 화이트 아니면 블랙이죠 뭐. 단순한 걸로. 화려하지 않게요. 아, 말 나온 김에…. 비 올 때 신는 스니커즈도 있어요. 다양하게 있는데, 주로 ‘레자’로 된 걸 신어요. 진짜 가죽은 비 올때 신기가 좀 그러니까 선택은 역시 레자죠.
한 번 그런 적은 있었어요. 예상치 못하게 비를 맞게 된 경우요. 얼마 전이었나, 아디다스 오리지널스에서 퍼렐 윌리엄스 협업으로 ‘스탠 스미스 휴’라는 스니커즈가 나와서 샀거든요. 근데 이게 니트야. 지인들이랑 영화를 보고 나왔는데 밖에 비가 미친듯이 퍼붓는 거예요. 하필 그날 또 차를 영화관 바깥에 있는 공영주차장에다 주차해놨었어요. 차까지 거리는 한 100미터 되려나? 뭘 어떡해요. 뛰었죠. 제가 그래도 100미터 달리기하면 한 13초에 뛰거든요. 말이13초지. 13초 동안 억수 같이 퍼붓는 비를 맞는다고 생각해봐요. 그날 그 신발 처음 신었는데…. 다젖었죠 완전. 우산을 썼어도 다 젖었을 거예요. 알죠? 네,아무튼 그랬어요. 아, 눈 올때 신는 신발도 있어요. 주로 컨버스를 신는데 꼭 어그부츠처럼 안에 털도 달리고 바깥에 고무로 빙 둘러져 있어서 젖지도 않는 제품이거든요. 옷 선택이 좀 난감해져서 문제지만요. 한마디로, 1년 내내 스니커즈만 신어도 크게 문제 될 일은 없어요.
결혼할 때요? 무슨 말이에요, 아까 얘기했잖아요. 네? 제가 결혼할 때요?생각해본적은있어요.그래도전스니커즈신을거예요. 신랑 입장 할 때,무슨키높이깔창잔뜩 넣은 구두가 아니라 좀 멋들어진 스니커즈로 하나 하려고요. 턱시도도 거기에 맞춰서 보통 사람들이 입는거랑은좀다르게해서요. 아휴, 그게 ‘간지’예요. 이분 뭘 모르시네. 시대가 변했잖아요. 제 주변에 스니커즈에 미친 인간들이 얼마나 많겠어요. 그렇게 결혼식 한 사람도 있어요. 당연하죠! 그게 그리 문제 될 일은 아니잖아요. 뭘 좀 모르는 사람들이 TPO, TPO 따지려들던데, 제가 뭐 야구모자 푹 눌러 쓰고 간 것도 아니고 ‘쪼리’ 신고 간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예요? 안 그래요? 그리고, 꼭 그런거 따지는 사람들이 입고 온 거 보면 영 못 봐주겠더만. 하, 뭐그랬다고요. 그쪽이 그렇다는 것도 아니고요. 아차, 말이 길어져서 까먹었는데. 질문이 뭐였죠? ‘왜 스니커즈를 신느냐고요?’ 질문 바꿔요. 아니, 이상하잖아. 쉼 없이 떠들었는데, 그건 질문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라니까요. 편하고 어쩌구저쩌구하는 얘기가 듣고 싶었던 거예요? 이분 웃기시네 진짜. 불변의 법칙 중 하나가 있는데요. 원래 예쁘고 멋지고 아름다운 것들은 불편한 법이에요. 몰랐어요?
<블링> 10월호에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