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네이버 디자인센터 입사 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꽤 오래 시간 방황했다. 큰 회사 경험이 없었기 때문인지 조직 문화나 일하는 방식 모든 것이 낯설었다.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이 시기에 내게 맡겨진 프로젝트가 바로 ‘음악감상회’였다. 처음 내게 주어진 일은 음악감상회 현장에 설치하는 사인물을 보수하는 작업이었다. 검고 커다란 철제로 된 이 구조물은 스탭들이 들고 다니기에 크고 무거웠다. 기존에 퇴직한 디자이너가 만들어놨던 것을 조금 손보는 것이라 어려운 작업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것을 핑계로 음악감상회가 있을 때, 네이버 뮤직팀을 따라 현장 구경을 갔다.
음악감상회 현장은 꽤 특이했다. 일단 비정기적이었고 장소나 형식에 제한이 없었다. 뮤지션의 색깔, 음악 무드에 따라 카페를 빌리기도 했고 갤러리에서 진행하기도 했다. 윈터플레이는 이층 버스를 빌려 서울을 투어 했고 이한철은 본인의 집에 관객을 초대하기도 했다. 이미 진행 중인 프로젝트 중간에 투입되어 초기 기획의도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 행사의 취지는 단 몇 명의 팬들이 소규모로 모여 아티스트와 같이 음악을 듣는 콘셉트라고 생각했고, 그 중심에 공감과 소통이 있었다. 그 잔잔함과 소소함, 그리고 진솔함이 당시 내게는 큰 충격이었다. 요조는 찾아준 팬들의 고민을 상담해주었고 가을방학이 신보가 나왔을 때는 말 그대로 정말 모두가 함께 앉아 조용히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음악을 감상했다.
원래 음악 관련 디자인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행사 자체가 신선했고 그 잠깐의 외출은 왠지 모를 해방감을 주었다. 뮤직팀 스탭들과 이야기도 잘 통했고 현장 자체가 재미있어 매 회 음감회마다 포스터를 만들어 하나의 히스토리로 아카이빙 하자고 제안했고, 그 제안은 어렵지 않게 받아들여졌다.
포스터는 아티스트 이미지를 흑백으로 통일감 있게 사용하고, 네이버 뮤직 서비스 에셋으로 사용되던 삼각형 패턴을 음악과 어울리는 컬러로 변형해 디자인했다. 아티스트와 네이버뮤직 두 아이덴티티의 발란스를 적절하게 유지하고 포스터 디자인을 하나의 템플릿으로 활용하기 위한 시도였다. 상황에 따라 엽서, 스티커 등 간단한 굿즈도 제작했다.
당시 이 프로젝트를 기획했던 김홍기(스페이스오디티 대표)님의 말을 빌리면, 음악감상회는 이렇게 코멘터리 형식으로 시작했지만 점차 노래를 틀고 같이 듣는 것보다 차라리 노래를 하는 것이 편하다는 뮤지션의 요청이 있어 라이브가 추가되었고, 결국에는 생중계로 조용필, 이문세, 제이슨므라즈까지 참여하는 큰 행사로 성장했다.
어찌 보면 음악감상회는 자극적이고 인위적인 형식을 벗어나 소소하게 대중과 일상적인 것들을 나누거나, 잔잔한 소통을 추구하는 채널, 인플루언서들이 늘고 있는 요즘 트렌드와 또 그것을 선호하는 대중들의 모습과 닮았다. 예전엔 베일에 싸인 듯 신비한 이미지와 닿을 수 없는 먼 곳에 있는 듯한 스타들이 인기를 끌었다면 최근에는 소소하고 담담하게 자기 일상을 소개하는 브이로그, 길고양이가 먹이를 먹는 순간을 기다리는 도둑고양이TV, 실시간으로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개인방송 등 직접적으로 팬들과 공감대를 형성한 스타(인플루언서)들이 더 크게 사랑받는다. 아마도 팍팍한 삶에 서로 공감과 위로를 받고 싶은 니즈가 반영된 것이 아닐까?
당시 나에게도 공감과 위로가 필요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