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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KE May 02. 2019

진짜 지구를 위한 디자인을 하고 싶다면!

친환경 디자인의 역설과 오류

지구의 날을 맞아 써보는 ‘친환경 디자인’에 관한 이야기. 날짜에 맞춰 4월 22일에 발행하려 했지만 늘 그렇듯 귀찮음 때문에 많이 늦어졌다. 내가 알고 있는 내용, 경험한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오히려 잘못된 정보일 수도 있고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디자이너로서 한 번쯤은 생각해볼 만한 문제라고 생각해 이슈를 던져보려고 한다.



“들어가며”


얼마 전 회사로 제안서가 하나 들어왔다. 임직원들이 사용하는 종이컵을 친환경 소재인 PLA코팅 소재로 바꾸자는 내용이었다. 경영지원 부서에서 나에게 검토를 해달라고 요청했고 나는 몇 가지 이유로 이 제안을 거절했다. 대신 머그컵과 텀블러 사용을 추천했다.


“정말 환경을 위한 소재일까요?”


1. 자연 분해성 검증 필요

PLA 소재는 특정 조건에서 180일 이내에 생분해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특정 조건이라는 것이 굉장히 까다롭다고 알고 있다. 우선 화씨 140도까지 가열할 수 있는 전문 산업용 시설이 필요하고, 자연 상태에서 분해되려면 100년에서 1000년까지 걸린다는 분석가들의 연구 결과가 있다.


2. 유전자 변형 옥수수 사용 

PLA 코팅에 사용되는 옥수수 전분은 대부분 유전자 변형으로 만들어졌다. 아직 유전자 변형으로 만들어진 옥수수가 환경과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 많이 연구되지 않았다.  


3. 재활용이 쉽지 않음

다른 재활용 소재와 따로 분리해서 버려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4. 높은 단가

PLA코팅 소재 종이컵은 일반 종이컵보다 3-4배 정도 단가가 비싸다. 개인적으로 '비용=에너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높은 비용, 많은 시간을 들인 친환경은 진짜 환경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친환경 잉크와 재생지 사용은 어떨까?”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친환경 잉크는 수용성 잉크와 콩기름 잉크다. 수용성 잉크는 수성 잉크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다량의 화학약품을 첨가한다. 또한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고온에서 출력하고 건조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때 높은 에너지가 소비되고 많은 양의 탄소가 배출된다.


콩기름 잉크 역시 완전한 친환경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콩기름 잉크는 일부 석유 용제만 콩기름을 사용하고 다른 첨가물들은 유해 물질이 포함된 상태 그대로 사용한다. 가용되는 콩기름의 비율 역시 업체마다 다르다는 것도 문제다. 또한 콩기름 잉크는 솔벤트 잉크와 같은 기계를 사용한다. 콩기름 인쇄 시 기존 잉크 잔여물을 닦아내야 하는데 그것 역시 까다로운 작업이다.


재생지를 만드는 재생펄프는 천연펄프에 비해 많은 중금속이 포함되어있다. 따라서 종이에 붙은 다양한 이물질을 제거하는 과정에 다양한 유해 화학물질을 사용한다. 재생지 공장에서 발생하는 폐수 역시 천연펄프를 만들어내는 공장에 폐수에 비해 환경에 더 유해하다. 비목재펄프를 사용한 친환경 종이의 사용을 그 대안으로 볼 수 있지만, 가격이 비싸고 아직 주변에서 흔하게 접하기 여려운 단점이 있다.



“진짜 환경을 위한 디자인이란?”


사실 친환경이라는 소재, 단어를 접할 때마다 과연 우리가 만드는 것 중에 진짜 친환경이 있을까?라는 생각부터 든다. 무엇을 만들어낸다는 것 자체가 환경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친환경 제품이라고 나오는 에코백, 텀블러 등도 결과적으로 앞으로 버려질 쓰레기다. 가능한 아껴 쓰고, 꼭 필요한 것들만 만들고 그것이 오래 사용될 수 있도록 하는 장인정신이 필요하다. D&D의 롱 라이프디자인, 꼭 필요한 것만 만들고 무의미한 가공을 하지 않는 무인양품 정신, 파타고니아의 DON’T BUY THIS JACKET 캠페인과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디자이너이다. 불가피하게 결과적으로 무언가를 계속 만들어내는 일을 한다. 책임감을 가지고 꼭 필요한 것인가 아닌가를 깊이 고민하고 스스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가급적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만들기로 결정했다면 제작에 불필요한 과정이나 가공이 없는지를 유심히 살펴봤으면 한다.  


아래 이미지는 내가 2013년, 2014년에 네이버에서 작업했던 다이어리 세트와 2016년 이베이에서 작업한 다이어리 세트다. 세 프로젝트 모두 크고 작은 환경을 위한 고민이 담겨있어 짧게 소개하려한다. 14년 제품은 잉크를 절약하는 에코 폰트를 사용했고 꼭 필요한 최소한의 곳에만 인쇄/가공을 한 것이 특징이다. 박스 포장을 버리지 않고 탁상 캘린더로 재사용할 수 있게 제작했다. 15년 다이어리 세트는 돌가루 성분으로 만든 친환경 비목재펄프를 사용했고 박스 대신 재사용이 가능한 파우치로 포장했다. 이베이 다이어리 세트는 로우로우(RAWROW)와 협업해 박스 대신 가방을 만들어 스테이셔너리를 담아 포장했다. (*해당 프로젝트에 관한 내용은 여력이 된다면 자세히 정리해 다시 공유하려 계획하고 있다...여...력...이....된다...면...)



“마치며”


예전에 기아, 가뭄, 홍수 등 자연재해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나눔을 실천하기 위한 목적으로 책을 만든 적이 있다. 4명의 사진작가와 8명의 배우들이 제3세계 국가를 동행하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진집이었다. 그 생각과 마음에 동참하고자 낭비 없는 판형에 잉크를 35% 적게 사용하는 폰트를 사용했고 저공해 방식인 콩기름 잉크로 인쇄했다. 하지만 이제서야 말하지만, 사실 책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 인쇄소에서 종이 결을 반대로 사용해 책 넘김이 불편하고 책 표지 접히는 부분이 터지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미 모든 인쇄물은 다 나온 상태였고 인쇄소에선 본인들의 실수이니 모든 인쇄물을 파기하고 다시 찍어주겠다고 했다.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그냥 진행을 하자고 했다. 종이의 넘김이 조금 불편한 건 아쉬운 부분이었지만 예민하지 않은 사람들은 인지하기 어려운 정도였고 표지가 조금씩 터지는 현상은 계획에 없었던 코팅 작업을 추가해 잡았다. 아이러니 하지만 코팅 가공을 하는 것이 제작된 인쇄물을 파기하는 것보다 낫겠다고 판단했다. 인류와 환경을 위해 만드는 책의 목적에 대한 역설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instagram.com/kiwa_archive

behance.net/kiwa_work

에도 아주 간간히 작업물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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